[한대음 D-3] 2025년이 선택한 — 이찬혁

2026 KMA 노미네이트로 읽는 2025년의 음악

by 이예진

월간 진지 | 2026 한국대중음악상 특집


영미권에 그래미가 있다면, 국내에는 한국대중음악상이 있다. 매해 2월, 노미네이트 명단을 훑어보는 일은 한 해의 음악을 되짚는 일과 닮아 있다. 어떤 이름이 반복되고, 어떤 장르가 확장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해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2026 KMA에서 다섯 부문에 이름을 올린 이찬혁은 2025년의 정서를 가장 넓게 점유한 인물 중 하나였다. 올해의 음반, 올해의 노래, 올해의 음악인, 최우수 팝 음반, 최우수 팝 노래. 최다 노미네이트인 전자음악가 Effie에 이어 가장 많은 부문에 오른 그의 존재감은 단순한 인기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2025년, 대중이 어떤 감정을 선택했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이기도 하다.


전작 <ERROR>를 기점으로 이찬혁은 데이비드 보위, 마이클 잭슨과 같은 과거 팝 스타의 재림을 연상케 하는 스타일로 등장했다. 어떤 생의 시작과 끝을 두고 영화적으로 서사를 만들어간 전작은, 기존 악뮤로서의 이찬혁과의 차별점과 더불어 서사의 흡인력으로 강렬하게 청자를 잡아당겼다.


2025년의 <EROS>는 보다 직접적으로 '사랑'을 정면으로 다룬다. 앨범 단위로 놓고 봤을 때 흡인력은 전작에 비해 다소 완만해졌다. 그러나 싱글컷으로 활동한 '비비드라라러브'와 '멸종위기사랑'은 분명히 귀에 남았다.


이찬혁, ‘비비드라라러브’ (c) Youtube

'비비드라라러브'는 앨범 제목에 걸맞는 질문을 던진다. “Where's the lala love?” 오르간 소리의 단조, 오페라를 연상케 하는 비극적 인트로, 극단 배우가 자신의 테마를 부르는 것 같은 드라마틱한 구성. 이 곡은 성별과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한국인이라면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관계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다음 트랙의 제목으로 귀결된다. '멸종위기사랑.'


이찬혁, ‘멸종위기사랑’ (c) Youtube

'멸종위기사랑'은 구조적으로 흥미롭다. 가사는 비극을 노래한다. "사랑의 종말이 왔다", "한 사람당 하나의 사랑이 있었대 / 내일이면 인류가 잃어버릴 멸종 위기 사랑." 그러나 사운드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흐른다. 가스펠에 가까운 코러스, 점층적으로 쌓이는 화성, 환희에 가까운 고조.


인지와 감정이 엇갈린다. 머리는 사랑의 소멸을 이해하지만, 귀와 몸은 여전히 사랑의 충만함을 경험한다. 이 곡의 재생 버튼을 누르는 청자의 생각은 "그래, 정말 멸종 위기 사랑이야"지만, 감정적으로는 '다시 사랑이 충만해지는 것 같아'로 이동한다. 문제와 해답이 하나의 트랙 안에 공존하는 구조다.


비극적인 문장 위에 희극적인 사운드를 얹는 이 방식은, 사랑을 신념이 아니라 일종의 ‘저항’으로 재배치한다. 끝난 것 같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이 곡이 2025년에 유효했던 이유는 시대적 맥락에 있다.


우리는 이미 사랑이 비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안다. 관계는 피로하고, 선택지는 많고, 알고리즘은 더 편하다. 연애를 하지 않는 것이 쿨해진 시대, 결혼은 리스크가 되고 사랑은 비용 대비 효율로 계산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연애 프로그램이 유독 인기를 끌었다. 콘텐츠는 욕망을 반영한다. 직접 관계를 맺기보다 타인의 서사를 관망하는 시대, 사랑은 일상보다 콘텐츠에 더 많이 존재한다.


AI 챗봇과 감정을 나누고, 연인처럼 대화하는 프롬프트가 공유되는 풍경도 낯설지 않다. 송길영이 말한 '핵개인'의 시대. 기업에서 개인으로, 공동체보다 생존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가운데 깊은 연대는 점점 부담이 된다. 사랑은 희소해졌다.


그렇기에 '멸종 위기 사랑'이라는 문장은 시대의 인식에 가깝다. 우리는 사랑이 위태롭다는 사실을 인지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사라지기를 원하지 않는다. 이찬혁의 노래는 바로 그 간극을 파고든다.


이찬혁, <EROS> 앨범 커버. © YG 엔터테인먼트


우리는 화성에 굶주려 있었다.


현재의 K팝은 크게 두 방향으로 양분되어 있다. 전자음 중심의 프로덕션이 지배하는 팝, 그리고 감정이 극단으로 치닫는 발라드. 그 사이 어딘가에서 화성이 풍성하게 쌓이는 음악은 점점 드물어졌다. '멸종위기사랑'은 이 지형을 정확히 읽고 들어온다. 곡은 처음부터 코러스로 운을 뗀다. "왔다네, 정말로." 망설임 없이, 화성부터. 전자음이 아니라 사람의 목소리가 겹겹이 쌓이는 방식으로.


화성이 강한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더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이것은 감각적 사실이기도 하고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다. 서양 음악에서 화성이 가장 발달한 것은 교회음악이었다. 바흐가 그토록 많은 작품을 쓸 수 있었던 배경에도 신앙이 있었다. 화성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함께 쌓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찬혁은 두 분 모두 목사인 목회자 집안에서 자랐다. 이 배경이 그의 음악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 가스펠에 가까운 코러스, 점층적으로 쌓이는 화성, 곡이 끝날수록 오히려 더 충만해지는 구조. 편곡 기술로 구현했다기보다 체화된 음악 언어에 가깝다. 특정 종교의 신도 여부와 무관하게, 종교음악은 그 자체로 치유의 문법을 갖고 있다. '멸종위기사랑'이 마음의 연고처럼 작동하는 이유 중 하나는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이 곡이 종교적인 방향으로만 치닫지 않는 것은, 악동뮤지션 시절부터 이어온 친숙하고 편안한 팝적 감각 덕분이다. 따라 부를 수 있는 매끈한 멜로디, 무겁지 않은 리듬감. 이 균형이 곡을 더 넓은 청자에게 열어놓는다. 무대 연출력이 강한 솔로 아티스트가 기근인 이 시대에, 그는 자신의 아티스트적 에고를 완전히 체화하여 가뿐하게 소화해낸다. 2025년에 이 사운드가 올드하기보다 신선하게 들린 것은 이러한 맥락들이 겹친 결과였다.


한국대중음악상은 종종 보편을 선택한다. 그리고 2025년의 보편은 '사랑'이었다.


계산과 가성비의 시대에 사랑을 외치는 일은 사치에 가깝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가 가장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지막 가치이기도 하다. 이찬혁의 노래가 2025년을 관통할 수 있었던 건, 그 사랑을 신념으로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사랑의 소멸을 선언하면서도, 그 소리를 가장 충만하게 표현했다. 믿음이라기보다, 저항에 가깝게.


그리고 그 중심에 이찬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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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진

projectjinj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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