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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진 Sep 22. 2016

그 남자의 메일

이별 뒤 메일을 보내는 그 남자

가끔, 지나간 시간 속의 사람들에게 

연락이 오곤 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나는 어찌 지내는지 안부를 묻거나

담담한 그리움 한 조각을 담아 

보내기도 하고

지난 시간 속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혹은 미처 하지 못했던 

사과의 말을 건네기도 하고

기억 한 자락을 꺼내 곱씹는 

쓸쓸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잊지 않고 소식을 전해줘서 

고마운 사람도 있고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니 

소름이 끼치는 사람도 있다. 

이미 다 지나간 과거니까 

다 같은 마음으로 반가워할 만큼

쿨한 사람이 아니라 

상대가 남긴 기억의 무게만큼 

반응하게 됨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오늘도 메일 한 통을 받았다. 

그가 직접 쓴 시 몇 편과 

그가 좋아하는 오페라와 

피아노 연주곡들도 함께 첨부되어 있었다. 


그의 메일은 그리움이었다. 

내 안에 남아있는 

그에 대한 감정은 뭘까 들여다본다. 

이미 사랑은 끝났고, 

시간은 지나갔다. 

그가 나에게 저질렀던 아팠던 순간들은 

이미 그저 추억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메일을 

그저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메일에 묻어있는 회귀본능이다. 


누군가와의 관계가 끝나면

나에게 보내는 메일

..... 처음이 아닌 

그의 버릇이 날 또 시험한다. 

그저 과거로만 남았다면 

아름답게 기억되었을지 모를

우리의 시간에 

자꾸 해작질을 한다. 


.... 결국 그는 나에게 그리움을 보냈는데 

나는 부끄러움을 받았다.

나는 왜 그를 사랑했던 걸까?

이유를 알 수 없어 부끄러워지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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