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매니큐어

그래도 배워야지 어떡해

by 진진

“내 머리가 이젠 못 쓰게 돼놨어. 자꾸 귀찮게 해서 미안해.”


휴대폰을 내미는 동네 할머니의 손엔 빨간 매니큐어가 앉아 있다. 열 손가락 중 제자리에 고루 앉은 데가 있나 봤지만, 빨간 매니큐어는 모두 간신히 손톱에 걸쳐 있을 뿐이었다. 떨리는 손, 흐릿한 눈으로 바늘만큼 작은 붓을 들었을 할머니를 상상한다.


‘마지막으로 매니큐어를 칠했던 때가 언제였지. 나도 이렇게 붉은 핏빛을 칠해본 적이 있었나.’


“카페트를 누르면 뭐라고?”


휴대폰을 쓰는 법을 알려달라고 재촉하는 할머니의 눈이 반짝인다.


“카페트? 아 키패드요! 이걸 누르면 할머니가 번호를 눌러서 전화를 걸 수 있어요.”


“아~ 그래 맞아. 자꾸 까먹어. 그래도 배워야지 어떡해. 그치?”


“맞아요. 언제든 물어보세요.”


“귀찮게 해서 미안해. 정말 고마워요.”


눈 한번 깜빡이면 잊어버릴 이 찰나를 살아가는 방법을. 그럼에도 배우려 하는 마음을. 할머니에게서 배운다. 언젠가 나에게도 흐릿한 눈으로 작은 붓을 붙드는 날이 올 것이다. 그때의 나에게 주고 싶은 온갖 따스함을 눈앞의 당신에게 꼭 전해야겠다고 하루하루 생각한다.


가을에 놀러 간 친구네 집 마당 한 켠에서 오래된 빨래판을 봤다. 어째선지 빨래판을 보자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손이 생각났다. 군데군데 트고 갈라진, 툭 치면 바스라질 것 같은 빨래판은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까. 차마 만져보지도 못하고 사진을 찍었다. 오늘 잡은 할머니의 손은 나를 보며 반짝이는 눈처럼 말랑했다. 눈으로만 봤던 빨래판의 푸석함과는 다른 따뜻함이 할머니의 손에는 있다. 할머니가 휴대폰 쓰는 법을 잊어버리듯이, 나의 일상도 찰나임을 나 또한 잊어버린다. 그럴 때마다 오늘 하루 소중히 대해야 한다고 말하듯, 할머니가 찾아온다. 매일 함께 사는 법을 배운다.


오늘도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12월 7일

먼저 손을 내미는 사람에 대해 생각하며.

진진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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