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몰라도 괜찮아
읽고 쓰며 묻는다. 몸으로 실감한 진실한 표현인지. 설익은 개념으로 세상만사 재단하고 있지는 않는지.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지는 않는지. 앎으로 삶에 덤비지 않도록, 글이 삶을 초과하지 않도록 조심한다.
– 은유, <쓰기의 말들> 51쪽
“눈으로 확인했어요? 기록으로 남기는 건데. 짐작해서 그리면 안되지.” 성인이 되고 처음으로 호되게 혼이 났다.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난 뒤, 1930년대에 지어진 일본식 건물의 기록 작업에 참여했을 때다. 자문으로 오신 교수님이 내 도면을 보며 혀를 찼다. “최대한 직접 확인하고, 모르는 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흔들림 없는 교수님의 눈을 차마 마주 볼 수 없었다. 확인의 과정 없이 그린 도면은 개인적인 추측이지, 객관적인 기록이 될 수 없다. 건축물과 사람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로 마음먹고, 그날의 부끄러움은 평생 잊지 말아야 할 감정이 되었다.
객관적 사실을 기록으로 남길 때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대화에서도 ‘모름’은 중요했다. “진진은 모르는 걸 무서워하는 것 같아. 좀 몰라도 괜찮아.” 1년을 함께 일한 동료가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발가벗겨진 기분이었다. 모른다고 말하면 될 일을 애써 아는 것처럼 말하는 모습, 무엇이든 잘 알고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들켜 버렸다. 글쓰기에는 독이 되는 마음이었다. 다른 사람의 마음과 행동까지 안다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 일인가. 그날부터 물어보기를 연습하게 됐다. “몰라요. 왜 그런 거예요?” 물어보면 생각지도 못한 대답과 정보를 알게 될 때가 있다. 굳이 앎을 드러내지 않을 때 비로소 다른 삶의 이야기들이 흘러 들어오기도 한다.
아이들을 만날 때에도 “왜?”는 중요한 물음이 된다. “고래상어는 상어예요.”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왜?”라고 물어본 날, “고래는 위아래로 헤엄치고, 상어는 옆으로 헤엄치거든요.”라는 대답을 듣고 찾아보니 고래는 꼬리를 위아래로 움직여 헤엄치고, 상어는 꼬리를 양옆으로 움직여 헤엄친다. 고래상어는 상어과다. 20년 넘도록 몰랐던 지식을 7살 어린이에게 배웠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보고, 느끼고, 아는 사람들이 세상엔 많다. 이렇게 깨지며 배운 지식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마을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금씩 글로 쓰고, SNS에 올리기도 하면서 가끔은 무섭다. 관심받기 위해서 ‘남의 삶을 도구처럼 동원하고 있는지’ 재단해 본다. 멋지고 따뜻한 글로 일상이 포장되고 있지는 않는지. 내가 욕망하는 것이 무엇인지. 글을 쓰면서 무엇을 충족하고 싶은지 확인해야 한다. 어떤 날에는 한 페이지를 다 채우기도 전에 수시로 욕망하는 바가 변한다. 글을 써서 돈을 벌고 싶고, 인정도 받고 싶다. 그런 것들을 초월해 누군가 깊이 공감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 날도 있다. 글쓰기로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모든 다이어리의 첫 장에 은유 작가의 글을 써 붙여 두었다. 글쓰기를 연습하며 처음 이 문장을 읽은 날, 아는 것에 대해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사는 모습을 정직하게 담아내자고 마음먹었다. 사는 모습을 좋은 글로 써내려면 좋은 삶을 살아야 할 텐데.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부딪히고 깨지며 배우는 것. 내가 깨달은 좋은 삶을 사는 방법이다. 오늘도, 내일도 무지의 두려움을 내려놓고 “너는 그것도 모르냐!” 구박도 좀 들으면서 꾸준히 깨지다 보면 좋은 글을 쓰는 날이 많아지지 않을까.
2025년 1월 4일
지난여름 썼던 글을 되새기며.
진진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