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일상이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덥다고 너무 덥다고 저리 가라고 밀어 보내지 않아도.
머물고 떠날 때를 아는 여름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오늘도 아빠에게 카톡이 왔다. 매일 아침 네다섯 줄 남짓한 문장을 읽고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인용이 아닌 직접 쓴 글이었다. 어떻게 답을 보내야 할까. 고민이 길어진다. 만으로 3년이 넘었다. 아빠의 편도에서 발견된 암을 방사선 치료로 없애고, 다시 폐로 전이되어 스무 차례가 넘는 항암치료를 받았다. 지난 8월, 더 이상 항암의 효과가 없어 치료를 중단하기로 했다. 조금은 나아지기를 바랐다가, 그조차 욕심인가 싶어 이대로 유지라도 되길 바랐다가. 예상보다 좋지 않은 경과에 무너지기를 계속 반복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네.” 상담실에서 나온 아빠는 지친 얼굴로 말했다. 토닥이려고 만진 등에 날개뼈가 너무 선명해서 울음을 삼키느라 혼이 났다.
“아빠, 대체 이런 글은 어디서 찾는 거야?” 올해 봄, 몇 달째 카톡을 받다가 궁금해서 물었다. 의학지식부터 철학, 종교, 때로는 사진에 영상까지. 아빠가 보내는 메시지들은 다양한 분야이면서도 하나의 주제 의식이 담겨있다. ‘좋은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매일같이 좋은 삶에 대해 고민하는 톡을 보면 나도 힘내서 하루를 시작할 수밖에 없다. “아빠한테 항상 좋은 글을 보내주는 친구가 있어. 그 친구가 보내주는 것들이랑 아빠가 평소에 보는 좋은 것들을 보내는 거지.” 한 때는 답을 하기 귀찮았던 카톡에 담긴 의미를 알고 난 뒤로는 어떻게든 답장을 하려 노력하게 됐다.
간절히 살고 싶은 사람이 일상을 상실해 간다. 성실을 바친 직장을 잃고, 무거운 짐도 번쩍 들 수 있는 든든함을 잃고, 맛있음을 느끼는 감각을 잃고, 59년에 걸쳐 익혀온 지식과 기억도 잃어간다. 아빠가 한 가지씩 상실을 경험할 때마다 나는 그것들의 소중함에 대해 배운다. 하고 싶은 것을 즐겁게 할 수 있고, 먹고 싶은 것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일상이 얼마나 귀한지를. 이 이상한 삶의 괴리에 감사하기보다는 슬픈 날이 더 많다. 상실의 파도에 휩쓸려갈 것만 같은 밤을 보내고 아침이 오면 다시 아빠의 카톡이 온다.
‘지금 당장 웃어라.’로 시작하는 톡을 보고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은 의아함에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오는 날도 있다. 실없는 웃음도 웃음이라. 꼼짝도 못 할 것 같은 몸을 다시 일으킨다. ‘아침은 먹었어?’라고 묻자 ‘한참 전에 일어나서 과일이랑 두유 먹었다. 오늘도 좋은 하루-’ 답이 온다. 다시 하루를 살아낸다. 그저 그런 하루를 그럭저럭 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가 된다. 불안한 일상이지만 불행하지는 않다.
우리 가족의 안부 인사가 된 말이 있다. “너는 안 울었어?” 가족 앞에서 함께 우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혼자 우는 때가 많아지자 주고받게 됐다. 오랜만에 집에 온 남동생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래도 웃어야지 어떡해. 지금 아빠한테는 우는 것보다 웃는 게 도움이 되잖아.” 덩치만 큰 줄 알았던 동생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에게서 느꼈던 든든함을 처음으로 동생에게서 느꼈다. 어떤 것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전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부모님에게서 동생과 나에게로.
작년 8월, 처음으로 혼자서 여행을 갔다. 적은 시간과 예산으로 다녀온 2박 3일 뚜벅이 여행, 행선지는 친구에게 들어 알게 된 동해안 묵호였다. 묵호는 바위에 따개비가 붙은 것처럼 언덕 위로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바닷가 마을이다. 산과 바다가 가까이 있어 걷기 좋다. 굽이굽이 펼쳐진 언덕길을 혼자 헤매듯 걷다가 아빠의 목소리가 생각났다. 둘이서 차를 타고 가다 길을 잘못 들어섰을 때 들은 콧노래 소리. “잘못 들어왔나? 어디든~ 길은~ 이어져 있지~” 머릿속을 맴도는 노랫소리에 처음 걷는 길도 무섭지 않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들을 물려받았다.
오늘 아침 아빠의 글에는 다음 문장이 이어진다.
‘잠깐 머물다 금세 떠날 것을 알면서 호들갑을 떨며 아우성을 치는 우리는
언제 그랬냐고 반색을 하며 가을을 반기겠지~!♡’
떠날 때를 아는 여름은 이별을 준비하고, 우리는 다시 올 가을을 반길 것이다. 계절이 오고 가듯 사람도 오고 간다. 좋은 삶이란 오고 가는 계절을 만끽하는 것처럼 오고 가는 삶의 슬픔과 기쁨을 만끽하는 것. 슬픔은 슬픔대로, 기쁨은 기쁨대로 온전히 느끼며 서로에게 전하는 삶이 아닐까.
2024년 9월 2일
진진 씀
한여름에 쓴 글을 한겨울에 올리게 되었네요.
한걸음 나아가기 위해서 몇 번을 돌이켜보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한 발짝 잘 떼었다고, 잘 나아가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주고 싶은 겨울입니다.
여러분도 올해 힘들었던 어떤 순간들이 있으셨다면
힘들면 힘든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그 시간들을 잘 살아내었다고.
다독여주시는 겨울이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