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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Sep 16. 2022

내 아파트가 뭔가요?

시각의 차이



                     

                      내 아파트를 아시나요?

                     E T T O I 를 읽어보세요.

                   (정답은 글 속에 있습니다.)




(상황 1)

출근 시간대를 벗어난 도로는 한산하다. 뒷좌석에서 아들녀석은 귀에 버즈를 꽂고 음악 삼매경에 빠져있다. 엄마 옆 조수석을 사수한 딸아이는 창 밖 풍경을 보다 참새처럼 조잘조잘 얘기를 건내곤 한다. 한참을 달리고 있는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내 아파트가 뭐야?"

"어? 내 아파트?내 아파트가 뭐야?"

"저기, 그렇게 써있는데~~"

듣도 보도 못한 이름이다. 그럼 그 아파트 주민들은 주소를 말할 때, 내 아파트000동000호라고 말하나. 좀 웃기지 않나  하고 생각하며 딸아이가 가리킨 쪽을 바라보는데,

LH주택토지공사

헐~~~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상황 2)

주말에 아이들 가을옷을 장만하러 스타필드로 나섰다. 명절이 지난 후라 그런지 쇼핑객들이 무지 많다. 스타필드 특성 상 쇼핑견들도 상당히 보인다. 소형견, 대형견, 다양한 견종들을 보며 걷고 있는데, 딸아이가 묻는다.

"엄마, 티읕, 우, 우, 이응, 이 이렇게 써있으면 뭐라고 읽어야돼?"

무슨 소리일까? 넌센스 퀴즈니?하고 되묻는다.

"아니, 저기 그렇게 써있어."

그런 상표가 다 있나 싶어, 딸아이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보는데,

에뚜와 라는 유아용품 브랜드

헐~~~ 한참을 웃었다.





놀라웠다. 저걸 한글로 인식하다니!

그런데 더 놀라운건 두 상황에 등장한 네이밍이 모두 한글과 똑같은 알파벳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는 것이다. 난 한번도 알파벳 속에서 한글을 발견했던 적이 없어서 더욱 놀라웠다. 딸아이는 중학교1학년이다. 알파벳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가 아니다. 영어도 제법 잘 한다. 물론 저 배열들 중 R이나 Q, M, B 같은 철자가 하나라도 들어가 있었더라면 전체를 영어로 인식했을 것이다. 지금껏 당연히 그러하다고 받아들이고 넘긴, 내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방식으로 바라보는 딸의 시각이 놀라웠다. 사전지식과 고정관념에 지배되지 않은 말랑말랑한 뇌이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일상 속 사건들을 떠올려본다. 학습되어 만들어진 사전지식들, 이러이러하다고 고정된 관념들. 그 시각을 바탕으로 일어난 숱한 오해와 오류들. 내 안에 축적된 관념들은 얼마나 개인적이고 주관적인 것인가.



사람과 교류하다보면 빈번히 눈치보기를 하곤 한다. 이런 표정이니 이러할거야, 그러니 이렇게 해야지. 이런 상황일 때는 이렇게 하는게 좋을거야. 저렇게 말하면 이렇게 반응해야하지. 상대의 표정과 상황을 나의 필터로 해석하고 반응하게 된다. 물론 오랜 시간 동안 경험한 데이터를 분석하고 종합하여 뇌에 기록된 통계자료일테니, 확률적으로 눈치보기가 성공할 가능성이 높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판단을 고정하고 확언하기에는 개인의 감정과 상황이라는 것이 내 경험치 안에서 해석되는 예측가능 범주를 넘어서는 경우들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기분이 나빠보인다 하고 생각했는데 몸이 안좋은 것일수도 있고, 내 말에 기분이 나쁜가 생각했는데 사실은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기는 경우일 수도 있는 것이다. 나의 시각을 단일한 진실로 확신하는 순간, 실재하는 진실과 충돌이 발생할 수 있다.



남편과 대화를 하다보면 갑자기 조용해지는 때가 종종 발생한다. 나는 화두를 던지고 남편의 반응을 기다리는데, 남편은 묵묵부답이다. 여러 차례 그런 상황이 발생되니 서운하고 감정이 상하기 시작했다.

'뭐야 나를 무시하는거야? 내 말을 안듣고 있었구나. 내 얘기에 무심하구나' 등등의 해석이 뇌에서 작동하고, 그런 생각들이 서운함, 화라는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실재적 진실이 아닌 나의 자의적인 해석에 의해 발생된 오해라는 것이 곧 밝혀진다. 남편의 반응을 통해서이다. 나는 뇌리에 콕콕 새겨지는 해석들로 남편에게 화를 내면, 남편은 놀라며 대답한다.

'미안해. 그냥 혼자 얘기한건줄 알았어. 대답을 해야하는 건지 몰랐어.',  혹은 '생각하는 중이였어.' 나의 해석이 틀린 것이다. 나의 관점으로 남편의 행동을 파악하고 해석한 것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 나는 고정관념으로 작동돼 왔을까. 나의 관념과 관점은 얼마나 많은 오류를 범해왔을까.




딸아이의 말랑말랑한 시각으로 빚어진 내 아파트와 에뚜와 사건으로 인해,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이미 많이 굳어졌겠지만, 좀더 유연한 사람이 되기 위해, 다양성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의해, 경직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시각의 스펙트럼을 확장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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