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는 추석이 지나고 일주일을 재량휴업일로 정했다. 정식명칭은 가족친화 주간이다. 지방에서 대안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평일 동안은 기숙사 생활을 한다. 이런 연유로 학교에서는 학기에 한 차례씩 일주일 간의 가족친화주간을 마련한다. 덕분에 명절을 지낸 꽉찬 냉장고가 순식간에 비워지고, 어제는 또 한차례 마트를 쓸어담아왔다.
입학 초 아이들이 학교로 떠나고 집을 비웠을 때는 어찌나 마음이 허전하던지, 텅 빈 집에 혼자 있노라면 여기저기 묻어있는 아이들의 흔적에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엄마` 하고 나를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생생하고, 품에 꼭 안겨있는 아이의 냄새, 촉감 모든 것이 그리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우리는 각자의 삶을 자리잡아 나갔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자리에서 하루 하루 자라나고, 나도 이런저런 활동들을 시작하며 일주일이 바쁘게 흘러갔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금요일. 아가들이 오는 날이다. 그날은 아침부터 설레인다. 화창하면 화창한 대로, 날이 궂으면 차분한 설레임으로 아침부터 아이들을 기다린다. 오후5시, 아이들이 도착할 시간이 되면 마음은 계속 현관 앞을 서성인다.
보고싶은 만큼 소중함이 더해지고 사랑이 깊어지는 가운데,
아이들의 사춘기 시절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단기방학을 맞이해 신이난 아이들은 릴렉스를 즐긴다. 9시가 다되어 일어나 주말같은 아침을 보내고, 쇼파에 늘어져 tv를 보기도 하고, 평일동안 학교에서는 사용하지 못하는 핸드폰을 자유롭게 하기도 한다. 그러는 와중에 딸은 하루동안 해리포터 한 권을 읽겠노라고 심취해있고, 피파 매니아인 아들은 피파 게임을 하다가도 생활속의 국제법이라는 책을 읽는다. 언제부터인가 국제변호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갖고 기후환경문제를 다루는 국제변호사가 되고 싶다더니 관련 책을 읽어보고 싶다고 하는 것이다.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숙제도 하며 일과를 채워가고 있는 아이들이 고맙기만 하다. 이것 저것 할 일들을 계획하고 구조화시킬 줄 아는 딸의 뇌와 다르게, 아들의 뇌는 한 가지를 하면 한 가지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어서 피파에 몰두해 있는 아들에게 `한 시간 됐다. 한 시간 반 됐네! 시간 정해놓고 하는거 맞지?`하며 한번씩 환기를 시켜줘야 하기는 한다.
슬 구름이 끼고 비가 올 것 같은 하늘인데, 공부를 하고 있던 아들이 나와 `엄마, pc방 갔다가 노래방 들렀다 올께.`라며 동생을 가리키며 `쟤 데려갈까?`한다. 요즘 들어 노래를 엄청 듣고, 샤워하면서도 가수가 된거 마냥 노래를 불러대 아래층에 폐가 될까 싶은 적도 있었다. 아들은 요즘 노래에 빠져있다. 음치는 아닌 듯 한데, 노래를 부르면 모든 음이 한 음이였던 음치 아닌 음치인 아들의 노래 실력도 나날이 늘어갔다. 샤워하는 아들의 노래를 듣자니, 못 듣겠다 싶던 노래가 어느 정도 노래다워지고 있던 것이다. 이제는 친구들 사이에서 노래 잘 한다는 소리도 몇 번 듣고 노래를 한창 부르고 싶겠다 싶어 노래방을 간다고 하면 잘 다녀오라고 보내주곤 했었다.
여동생을 데리고 간다고?? 딸아이는 딱 모범생이다. 큰 아이만큼 교육에 크게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도, 알아서 자기 할 바를 해나갔다. 중학교에 올라가자 주말이면 한 주간 배웠던 과목들을 알아서 복습하고 ebs 인강을 찾아듣고 하는 모습을 보며 둘째는 걱정할 게 없을 것 같다는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게 되었다. 지난 여름방학 동안에는 `엄마, 나는 책을 많이 안읽어서 그런지 읽는 속도를 좀 늘려야 할 것 같아`라고 하더니 여름방학이 끝날 무렵 책읽기를 통한 성취감을 스스로 느끼던 아이이다. 교육은 정보전쟁이라는 말이 있던데, 엄마가 더 많은 정보와 꺼리들을 제공해줘야 할 것 같은데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자신들이 할 바를 찾아나가는 것이 보기 좋기도 하다. 요즘은 자신의 인생에 대한 고민을 한다며 자신이 진학하고 싶은 고등학교에 가려면 어떤 준비를 해야하는지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
pc방, 노래방은 가보지도 않았던 딸아이가 오빠의 제안에 `엄마, 나 자꾸 가고 싶어지면 어쩌지` 말은 하면서도 내심 반기는 눈치다. 둘은 그렇게 손 잡고 다정히 다녀오라는 엄마의 장난스런 말에 `헐`을 외치며 집을 나섰다. 아이들이 집을 나서고 나는 책을 좀 읽다가 잠시 누웠다가 장을 보고 저녁을 준비해놨다. 5시44분에 나간 아이들이 8시반이 넘어도 오지를 않는다. 아들 혼자 갈 때는 보통 2시간이면 pc방, 노래방 투어를 마치고 들어오는데 너무 늦어진다.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는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8시반이 지나 전화가 왔다. 노래방이라 소리를 못 들었다고 한다. 실컷 놀고 아이들은 9시에나 들어왔고, 들어와 아들은 밥을 세 공기나 먹는다. pc방에서는 한 시간 머물렀는데, 계정 만들고 튜토리얼 보고 하니 30분이 넘게 지나 게임은 20분 밖에 못 했다며 내일 다시 가도 되냐고 한다. 대신 하루 종일 할 일 다 해놓고 저녁 나절에 잠깐 갔다오겠다 한다. 자꾸 가고 싶어지면 어쩌냐던 딸은 어디간게냐. ^^ 그곳에 아이들에게 재밌긴 재밌나보다. 노래방에서 1시간 반이나 노래를 불렀는데, 새초롬하고 밖에 나가면 과묵해지는 딸이 노래를 불렀다니 믿기지 않았다. 첫째가 동생이 노래하는 것을 녹음해와서 들려준다. 썩 잘 부르지는 않지만, 마이크 넘어로 들리는 애띤 목소리가 사랑스럽기만 해 웃음이 지어졌다. 할 일을 다해놓고 저녁나절에 내일도 투어다녀오는 것을 허락하고 얘기를 마무리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아들은 부산행 영화를 보고 딸은 읽겠다는 해리포터의 끝부분을 마져 읽으며 하루를 마감했다. pc방, 노래방이라면 20년 전 이미지가 떠올라 일탈의 장소인가 싶었는데, 요즘 pc방과 코인노래방은 시설도 좋고 괜찮다며 남편도 나를 안심시킨다. 둘이 신이 나서 오늘 투어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을 보자니 참 이쁜 일탈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별처럼 빛나는 너희들의 눈이 언제까지라도 그렇게 빛나며 행복하기를 엄마는 늘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