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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웅성 Dec 01. 2022

자유하는 삶

쿼바디스, 어디로 가고 있는가

계획적이고 실천적이고 치밀하게 사는 삶.

내 삶과는 거리가 있는 단어들이다.

나는 치밀하게 계획하고 실천하려 애쓰지 않는다.

너무 애쓰는 삶은 버거워 잘 버텨내지를 못 하고,

다시 자유를 향해 간다.


자유.

오래전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였다. 살면서 애써온 것이 있다면 자유로운 삶을 위한 노력이었던 것 같다.


수시로 묻고는 했다. '나는 자유한가'

자유,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

자유의 목적은 해방이다. 나를 얽매고 있는 숱한 것들로부터의 해방.


자유하여 해방된다는 것을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토록 추구했던 자유는, 가장 달성하기 어려웠던 자유는 내면에서 일어나는 사고, 감정으로부터의 자유였다. 때로는 내가 느끼는 것이 무언지, 내 생각이 무언지, 내 감정이 무언지 내 것인데도 모르겠어 당혹스러워 오히려 멍하니 그냥 살아가는 날 많았다. 마음공부를 하는 분들은 이런 상태를 잠든 상태로 보고 깨어나라고 얘기한다. 내게 있어 자유는 이 깨어남의 과정이었다. 깨어나기 위해, 살아있기 위해 자유하고 싶었다.


천주교에서는 새해가 시작되었다. 대림 시기라고 해서, 성탄을 한 달 앞두고 새해력이 시작된다. 그 시작은 예수의 탄생을 기다리며 자신을 성찰하고 예수 탄생의 의미인 사랑, 용서, 평화, 희망의 의미를 되새긴다. 대림 첫 주간 기도를 맡게 되어, 오랜만에 묵상기도의 시간을 가졌다. 기도 책자에 써진 질문, '지금 당신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Quo Vadis. 어디로 가시나이까.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묵상하다 이른 지점은 역시 자유였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성찰과 자기와의 대화이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자 하는가에 대한 성찰과 깊은 대화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 성찰과 자기 대화를 통해 진리에 대한 고민이 선행된 후에, 그 깨달음에 가까워진 모습으로 우뚝 서있는 나는 그제야 자유로움에 가까워있을 수 있다.


여기서 영역의 구분이 필요하다.

몸을 살 찌우기 위한 영역, 영혼을 살 찌우기 위한 영역.

몸을 살 찌우기 위한 영역은 일하는 나, 세상의 종속인 내가 서 있는 영역이기에,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이 세상의 방식에 맞춰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로마보다도 세상보다도 더 큰 나라는 세계의 법은 내가 만들 수 있다. 그 나는 영혼, 정신의 영역에 있는 나이다. 내 법은 내가 만들 수 있고, 내 세계의 주인은 내가 될 수 있다. 우리가 자유를 추구할 수 있는 세계가 바로 이 세계인 것이다.

자유의 정의를 조금 바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외부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에 뒤흔들리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자신의 삶을 운전해나갈 수 있는 정신의 상태로 해석하고 싶다. 내가 지향해온 자유는 몸의 자유가 아니라 이러한 정신의 자유였다. 그래서 늘 성찰하기 위해 노력하고 나와의 대화를 시도해왔다. 아무 생각도 없는 듯한 상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몸만 열심히 사는 상태로 머물지언정 다시 나의 지향점으로 회향했다. 그 지향점은 나의 북극성이 되어 길을 잃을지언정 다시 그곳을 향하게 만들었다.

어제의 나도, 오늘의 나도, 내일의 나도 쿼바디스를 외치며 그 길을 갈 것이다. 그곳이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이기에.


12월의 시작이다. 한 해를 정리하는 이 시점에 진정한 자유의 삶을 위해 자신에게 쿼바디스 질문을 던져봄은 어떨까. '나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인가.'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이 또 다른 길을 만들어갈 것이다.





p.s. 내일 예정된 여행의 계획도 세우지 않는 성향으로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을 수도 있다는 세상의 이치를 받아들이면 이 부작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계획 없이 가는 길에서는 눈을 더 크게 뜨고 다닐 수 있고, 모든 것이 새롭다는 선물을 받기도 하니 크게 손해 보는 부작용도 아니다. 나는 내일도 속옷과 칫솔, 여벌 옷만 들고 길을 나서 길 위에서 길을 찾아가는 재미를 느껴볼 것이다. 알고자 하느냐 묻는다면 몰라도 괜찮습니다, 길 위에서 답은 제가 찾아가겠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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