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에 따뜻한 말 한마디 전하지 못하던 엄마가, 새벽녘 졸린 눈을 비비며 잠든 8살 아이의 손가락에 조심조심 봉숭아 잎을 올린다. 작고 여린 손가락을 비닐로 싸고 실로 동동 감아낸다. 아침에 눈을 떠 봉숭아물 들이는 열 손가락을 바라보던 아이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필요치 않은 엄마의 사랑으로 충만하다. 나의 이 기억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안되면 말고라는 한 마디가 큰 위로가 되었듯, 엄마의 봉숭아물이 사랑을 느끼게 해주었다.
마술처럼 봉숭아물 들어있는 손가락에, 보온도시락이 없어 찬밥 먹을 딸이 걱정돼 점심시간에 교문 앞으로 밥을 싸들고 와 기다리고 선 마음에, 장성해 결혼한 딸에게 전하는 밑반찬에, 텅 빈 해변가가 좋아 혼자 있는 딸이무서울까 봐 끊지 못하고 계속 말을 거는 전화에, 운전조심하라는 말을 건네는 눈빛에, 주절주절 하소연하는 딸의 얘기에 조용히 귀 기울여주는 기다림에 엄마의 사랑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죽을 보내준 친구, 밥 잘 챙겨 먹으라며 알타리 김치 한 통을 건네는 친구, 바쁜 일상을 살면서도 잊지 않고 잘 지내냐고 잘 지내라고 안부를 물어주는 친구, 연락이 뜸 하면 괜찮냐며 집으로 찾아오는 친구, 식구들이 모두 떠나 적막한 월요일이면 전화를 걸어와 수다 친구가 되어 적적함 달래주는 친구, 내 글에 댓글로 마음을 써주시는 고마운 글 친구들, 내 비루한 시를 찾아 읽고있다시는 생각지도 못한 감사한 독자분. 수많은 작은 손길들이 나를 변화시켰다.
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못된 병을 가지고 있었다. 그 뿌리는 깊고 깊은 곳에 박혀 쉽사리 고쳐지지가 않았다. 약속 장소로 나가려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약속시간에 늦곤 했다. 어느 때부터인가 생겨난 이 못된 병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세상에 대한 두려움도 키워갔다.
좋은 사람과 커뮤니티를 경험해보면 나아질 거라 했지만, 그런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아 점점 세상 밖으로 도망치게 되었다. 그러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글을 쓰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글로 그들의 삶을 만나다 보니, 어느새 사람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글로 하나 하나의 소중한 진심을 만나는 일이 시나브로 나를 치유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내 얘기를 쏟아내고 싶어 시작했던 글쓰기가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글을 통해 치유되고, 울분을 쏟아내는 것이 아닌 따뜻한 세상을 담아보려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졌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연민, 공감, 이심전심, 모두 하나같이 열심히 생을 살아내려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라는 연대를 이룬 듯했다.
고질병인 두려움이 사라진 내 모습에 놀랍기만 하다. 오래도록 발목을 잡아끌었던 족쇄에서 그렇게 해방되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생을 살아내는 모든 이들과 연대를 이룬 느낌을 갖은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하도록 이끌었다. 많은 작가님들의 글을 통해, 그들의 부족이 사랑스럽다고 느끼게 되자, 나의 부족도 사랑스럽게 바라보게 되었다.
작은 것들이 이룬 큰 산물. 그 기적과 같은 선물에 대한 감사.
사랑을 느끼게 했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두려움을 내려놓고 마음을 열게 해주었다.
두려움이 사라지자, 막이 오르고 펼쳐지는 공연처럼 새로운 일상이 찾아왔다.
이제는 '안되면 말고'라는 편안한 마음, 마음과 마음을 잇는 마음으로 편안히걸을 수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