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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조 Sep 14. 2022

찌꺼기를 싫어하는 건, 청소를 실컷 하는 사람이라 그래

정말인데?



1. 절


이 공간을 위해 글을 쓴 시간들은 오늘까지도 너무 산발적이라서! 다 모아놓고 보면 별 거 없겠지만.

그래도 다시 용기를 내어서 씁니다. 조금 더 솔직해져서 돌아왔습니다.


저는 요즘은 유명하다는 사찰은 모두 찾아다닙니다. 그런데 절에 갔다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근 몇 개월 동안 이 공간에 찾아오질 못 했는데, 그게 용기가 없어서 그랬는지, 따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다른 것들을 괴롭히기 바빠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고요.


한 가지 커다랗게 다가온 일은, 지금 당장 제가 글을 던져두는 이 공간은 그대로인데 나는 자꾸 변하고 있다는 사실. 사람은 변하면 안 된다는데 저는 자꾸만 변했어요. 게을러지고, 무감각해지고, 오만으로 가득 차 반성도 안 하게 되고. 이 정도면 됐다고 떠들면서 돌아가신 외할아버지께서 기함하실 말들을 하고 다닙니다. 사실상 가장 대단한 문제는 스스로가 몇 개월간 느끼기에도 아무 진전이 없다는 거였어요. 혼자 하는 일은 물론, 협업으로 일정 부분은 답답함을 느끼는 그 작은 감각들마저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지고. 제가 손에 쥐고 있는 모든 것들이 하릴없이 빠져나가는 기분이란...


그래서 잠깐 다 놓기로 했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 후회가 없습니다.


마치 오래도록 켜 놓은 초가 너무 뜨거워져서, 자기가 뜨거운지도 모르게 된 것처럼. 그래서 기우뚱 엎어졌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촛농이 너무 빠르게 식어버려서 더 놀랐습니다. 너무 오래 탔나? 너무 오래 녹아 있었나? 그런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일이 끝나고는 근 두 달 정도를 강물에 떠 있는 것처럼 낮과 밤 할 것 없이 몽롱했어요. 매일 밤 기꺼이 운동화를 구겨 신고 뛰쳐나갔던 운동도 카타르시스가 전혀 없고, 그럴수록 새로운 것들만 찾아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극적인 클립들, 손도 대지 않았던 책들처럼. 자신에게 너무 실망을 하면 내일이 기대가 되지 않고, 흥미로워하며 찾아보던 지구 반대편 소식들도 감흥이 없는 것 그런 사람. 그런데 결정적으로, 얼마 전에 보았던 백팔 미터나 되는 불상에게 압도 당해 한동안 죄를 짓지 말고 살기로 했습니다. 이런 올바른 다짐은 언제라도 끝날 수 있으니 한동안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도 확실히 그 커다란 눈이 저를 꿰뚫어 보는 것 같은 경험은... 또 한 번 더 가볼까 봐요.







2. 퇴사


저는 퇴사를 했습니다.

퇴사를 쓰는 건 글을 쓴다는 것과는 달라서ㅡ당장 오늘 먹을 것 걱정을 해야 하는 건 같지만ㅡ나 하고 싶을 때 툭툭 던질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나름의 계획을 했습니다. 이번에야말로 관두겠다. 이번에 용기를 낸 건, 스스로 느끼기에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겠다고 느껴서였습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그 순수함을 마주하면서 나의 가장 깊은 곳을 찌르는 일이기도 합니다. 장담컨대 모든 사람들이 교사가 될 수는 있지만, 또 모든 이가 교사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표현하는 제 마음을 아시리라 믿고...


무엇보다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과도 계속 싸워야 하는데, 까마득한 신화에는 더 자세하기 서술되지 않았지만 양쪽을 위해 고뇌하던 현실의 프로메테우스는 지쳤습니다. 당장 손목과 발목이 아픈데 안 그래도 거지 같은 내 문장들을 위해 노력할 마음이 생길 리가 만무하잖아요? 그래서 프로메테우스는 사직서를 던졌습니다. 제우스가 한동안 괴롭히지만 어찌 되었든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주고 잠깐 선생으로서의 역사를 지웁니다. 한동안은 안 꺼내 볼 거예요. 그래서 일부러 책장 맨 위에 처박았습니다.


프로메테우스, 로그아웃.







3. 청소


여기 써 놓은 글들 중 가장 긴 제목을 가지고 있는데, 어느 기사에서는 우울이 깊어지면 주변을 정리하거나, 방치하거나 둘 중 하나의 양상을 보인다고 합니다. 저는 제가 쓰는 글이 두서가 있다고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항상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흐트러지고 부족한 글이라도 행운처럼 읽어주시는 지금 당신과도 같은 독자님이 계셔서. 그래서 이렇게 말을 건네듯이 써 볼 수 있는 거겠지요.


문제는, 코로나 이후에 벌어진 모든 일들이, 그 전과는 다르게 너무 아프게 다가옵니다. 손톱으로 일상을 벗겨내는 기분이에요. 꼼꼼한 건 좋고, 어느 정도의 예민한 기질도 좋지만 과유불급이라는 생각이 드는 요즘입니다. 다른 건 필요 없어, 내가 좋으면 좋아! 이런 어린애 같은 사고도 이제 입 밖으로 꺼내기도 전에 반쯤 으스러뜨려 놓아야겠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이번 해가 바뀌면 앞자리가 바뀌는 터라 저 자신에게 부끄럽습니다. 아, 제가 생각해도 저는 진짜 별로예요.


이 와중에 고백할 게 있는데, 요즘 책상을 너무 병적으로 닦습니다.


제 두 손이 제일 더럽다는 건 알고 있는데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손과 책상을 너무 많이 닦아서 에탄올 정제수 한 통을 또 다 써버렸습니다. 블랙 코미디 같아요. 원하지 않는데 자꾸 이렇게 돼요. 저라고 이러고 싶겠어요? 오늘 기회가 되면 부모님께 여쭤보겠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요? 당장 오늘 아침에도 크루아상을 해 먹었는데 가루가 흩날립니다. 접시 바깥으로 침범하는 가루들을 깨닫고 나서야 다 쓴 정제수 통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정제수 통을 채우던가, 마음을 조금 고쳐먹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토록 청소를 하는 만큼 여기도 좀 더 자주 들르고요. 꼭 그럴게요.


그래도 누군가 여러분에게 유난을 떨면서 지독하게 달라붙어 물어보면, 꼭 제가 써놓은 제목처럼 답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그랬어요. 찌꺼기를 싫어하는 건, 청소를 '실컷' 하는 사람이라 그렇다고.

...아예 안 하는 너보다는 낫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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