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일기는 넣어두고 제 걸 먼저 읽어보시면, 글쎄. 어떤가요?
1. 12월이 되기 전에
곧 12월이다. 책장에 소설류가 아닌 다른 종류의 책들이 쌓여간다. 얼마 전 다른 직업으로 전향을 생각하게 됐고, 나름 실천에 옮기는 중이다. 머리가 아니라 몸을 써야 하는 일. 생각이 날 때마다 인터넷을 뒤져보는 게 습관이 됐다. 나와는 상관이 없을 것 같던 이론들과 단어들의 뜻을 뒤져보느라 책상은 당분간 어지러울 예정. 나는 저것들을 챙기고 훑어보느라 밤이 가는 줄도 모르고 새벽을 맞이할 생각에 겉멋만 든 학생처럼 신이 난다. 눈앞에 어떤 게 닥칠지도 모르면서 지금은 마냥 다른 그라운드에서 뛸 생각에 기쁘다. 당장 적금을 부어야 하는데, 덕분에 좋아하지도 않는 일자리 사이트를 즐겨 찾기 목록으로 던져 넣는다. 하루에 두 세 개씩 지원서를 보내고 있는데, 사실 '즐겨서' 찾는 게 아니라 '억지로' 찾기다. 참... 일자리 찾기는 아무리 해도 적응이 안 된단 말이야.
2. 삼십
해가 바뀌면 삼십. 여전히 꽃을 사는 것을 사랑하고, 글을 쓰는 데 많이 주저하고, 유명한 작가의 이야기가 드라마가 되었다고 하면 남몰래 부끄러운 건 같다. '아, 나는 다른 일들로 허덕이는데.' 라거나 '오늘은 영 아니라서 글은 건드려보지도 못했는데' 같은 멍청함의 반복. 절망적인 생각들이 주를 이루면, 오히려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는 있다. 저들은 나보다 많은 시간들을 당당하게, 혹은 나보다 더 부끄러운 마음으로 자신과 마주하며 싸웠다는 건 안다. 그렇게 싸우는 건 아주 힘들잖아. 자신을 넘어서는 건 더더욱 힘들고.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대강, 그러니까 아주 대강 공감은 한다... 아니, 하고 싶다.
그러니까 스물아홉의 11월은 별 다른 게 없다. 시끄러운 키보드를 좋아해서 오랜만에 꺼내놓고 만지작거렸고, 어젯밤은 내가 사는 지역에 오랜만에 비가 내렸다. 당연하게 바람이 많이 불어 창이 덜컹거리는 게 꼭 타자기 소리와 비슷했다. 세계적으로는 이벤트가 있어서 자정이 되기 전에는 축구를 보고 동생과 함께 안타까워했다. 더불어 내 바운더리에서는 친구가 결혼 소식을 전했다. 가을쯤 생각하고 있다고. 두 사람의 인생이 합쳐지는 기로이니 이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래. 신나지. 그런데 결혼이라고?
실은 친구가 겁을 내야 할지도 모른다. 밝게 이야기했지만 어제는 싸웠다고 했다. 그 애를 달래면서 나는 건강하게 연애를 하고 있음을 축하했다.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고, 12월이 지나고 1월의 해가 뜨면 이 이상 20대도 아니라는 것이 나를 내 인생에서 잠깐 한 발자국쯤 밀어낸 것 같았다. 나는 어떤 걸 원하면서 사는지. 비싼 것들의 대가를 치르면서 살고 있는지. 그중 가장 비싼 것은 꿈이 아닐지, 갑자기 나를 다시 바라보게 되는 그런 밤이... 아니다. 어쩌면 너무 큰 의미를 안기려 드는 걸지도 모른다. 그래. 다 때가 있지. 하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으니.
3. 별 거 아닌 일
글을 향한 마음은 여전히 바닥을 향해 추락하다가 서울에 있는 63 빌딩 꼭대기에 닿기를 반복하고... 하지만 괜찮아. 친구들과 만나면 일순 그런 두근거림은 쉽게 미뤄둘 수 있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준비를 하다가, 그래. 얼마 전에는 이상한 다짐을 하나 했다. 왼손에 낀 반지 말고도, 오른손에 나를 위해서 링 하나를 끼우자. 남들과 비슷한 모델이어도 좋으니까 돈을 좀 모으자. 그래서 나만의 의미를 좀 담자고. 가족과 내 연인이 나를 껴안고 아껴주지만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오래 미워하고 혐오하는 와중에. 위에 적어뒀듯이 자신과 싸우는 건 너무 힘들다. 이것도 남 모르는 싸움이라면 싸움이잖아?
솔직히 고백하건대, 거창하게, 별의 찌꺼기가 인간이라고 말해주는 유명한 글귀보다 '이것도 못 하네, 병신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되뇌는 우울한 속삭임이 훨씬 크게 들려오는 게. 솔직히 모두가 그래. 그리고 그게 나라는 사람이니까. 나는 안개꽃 같이 아름다운 걱정들에 둘러싸여 매일 하루를 마무리한다. 버스럭, 발에 걸리적거리는 마른 꽃의 흔적들을 밟아가며.
별 거 아니다. 내 미래를 생각하면 술을 안 마셔도 어지럽긴 하지만, 그래 별 거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