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담 퐁파두르
어느덧 화장기 없는 얼굴로 나가기 부끄러운 나이가 되었다. 평소 상남자 못지않은 털털함과 이제 겨우 결혼한 지 2년 된 나의 룸메이트와 형제임을 자처하는 나도 여자였나 보다. 동안 시술로 입소문이 난 강남의 유명 피부과를 찾았다. 유명세를 실감하듯 빼곡한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하염없이 내 이름을 부를세라 귀를 쫑긋 세우고 앉았었다.
제일 재미난 게 사람 구경이라 했던가……! 정말 다양한 나이, 캐릭터, 국적, 성별까지 2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자연스러움이 가장 아름답다고 여겼던 내 미에 대한 철학 따윈 이미 오간데 없었다.
그때 낯익은 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헐…. 그녀도 여기에? 순서가 꼬인 것인지 2시간이나 기다린 나보다 그녀가 먼저 시술을 받았다. 바로 뒤이어 나의 시술이 끝나고 떨리는 마음으로 거울을 보기 위해 파우더룸에 들어갔다. 그녀가 사용한 파우더룸에 들어가게 된 것이다. 순간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쓰다 남긴 화장품 케이스와 타월, 면봉과 화장지가 거울 앞에 널브러져 있었다. 평소 단정하고 지적인 이미지인 그녀인데…. 뒷모습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 뒤로 매체에서 그녀를 볼 때마다 파우더룸의 그 광경이 떠올랐고 그녀는 더는 내게 예전의 고상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얼마 뒤 그녀의 이혼 소식이 들렸다.
순간 단정치 못했던 그녀의 빈자리가 떠올랐다.
의식하든 의식을 하지 못하든 우리는 모두 각자 자기만의 향기가 있다. 매우 강렬할 수도, 봄바람처럼 하늘하늘할 수도 있다. 의도했던 데로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향기는 곧 내가 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향기를 가진 사람일까? 그 향기로 인해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전혀 다른 향기를 가진 역사 속 두 여인이 있다.
300년이라는 긴 세월을 통과하며 역사는 두 여인에게 수많은 수식어와 꼬리표를 부여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들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아름다운 여인’과 ‘예쁜 여인’
과연 무엇이 그녀를 아름답게 혹은 예쁘게 만들었을까? 두 여인의 향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여인
<마담 퐁파두르>, 1755, 모리스 켕탱 드 라 투르
한 여인이 서재인 듯한 곳에 앉아 악보를 막 넘기려던 참이다. 마담 드 퐁파두르!
1721년 평범한 부르주아의 가정에서 태어난 퐁파두르는 후견인의 도움으로 음악, 성악, 미술, 춤, 역사, 언어, 철학 등 최상류 층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어려서부터 남다른 총명함과 재능 덕에 모든 교육을 잘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실력까지 갖출 수 있게 된다.
그녀 발밑의 낱장 편집본은 실제로 그녀가 제작한 동판화 드로잉과 포트폴리오이다. 당시 퐁파두르는 관련 논문까지 찾아 읽을 정도의 실력가였다.
그녀 뒤에 기타처럼 생긴 악기는 음악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는 것을 넌지시 말해준다.
퐁파두르가 몸을 기대고 있는 책상 위에는 제목을 알 수 있을 법한 책들이 놓여있다. <법의 정신>, <자연의 역사>, 프랑스 역사서인 <앙리아드> 그리고 18세기 계몽주의 정신의 결정체인 <백과전서>이다. 이러한 책들은 당시에도 매우 획기적인 책들로 퐁파두르의 깨어있는 정신과 지성의 깊이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또한, 그녀는 몽테스키외나 볼테르, 루소 같은 사상가들과도 친분이 매우 두터웠고 루이 15세와의 연애편지를 코치해 주었던 사람도 볼테르였다.
파리 유명 살롱에서는 정치, 철학, 문학 등 당대 지성인들과의 날이 선 토론을 주도할 만큼 지적인 여인이었다.
이러한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른쪽으로 살짝 고개를 돌린 그녀의 얼굴에 드리운 환한 빛은 계몽 정신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화면 오른쪽에는 지구본이 놓여있어 지도 제작과 과학에도 관심이 있었던 듯하다. 이밖에도 퐁파두르는 왕을 위한 연극을 직접 기획, 제작하고 출연까지 했으며 색채 감각도 매우 뛰어나 일명 ‘퐁파두르의 분홍색’으로 유명한 세브르 도자기 후원에도 앞장섰다.
당시 어떤 여성의 초상화에도 이렇게 많은 책이 등장하지 않는다. 또한, 퐁파두르는 화려한 보석류나 가발도 하지 않은 매우 수수한 모습이다. 단지 우아하고 세련된 드레스가 그녀의 지성미를 돋보이게 해 준다. 주변의 소품들은 퐁파두르가 어떤 사람인가를 말하고 있다. 그녀가 소중히 여겼던 가치, 삶을 대하는 태도 말이다.
그리고
그녀보다 약 30년 뒤늦게 태어나 전혀 다른 삶을 살다 간 여인이 있다. 마리 앙투아네트.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해”
정말 그녀가 “빵이 없으면 고기를 먹으라고 해”라는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는 우리에게 매우 사치스럽고 경망스러운 여인으로 남아있다.
<슈미즈 차림의 마리 앙투아네트>, 1783, 루이즈 엘리자베스 비제 르 브륀
속이 훤히 비치는 흰색 레이스 원피스에 밀짚모자를 쓴 여인이 장미꽃을 들고 서 있다. 실제로 그녀는 프랑스 리옹 산 직물이 아닌 수입 직물과 섬세한 레이스를 선호했다. 이러한 그녀의 취향들이 훗날 그녀를 사치스러운 왕비로 남게 했지만 말이다. 지금의 눈으로는 매우 세련되고 소박한 차림으로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당시 프랑스 사람들의 눈에는 기품이 있어야 할 왕비가 속옷 차림으로 초상화에 등장한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은 살롱전에 출품이 되었으나 이러한 비난 때문에 곧바로 내려져야 했다.
그녀는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팔 남매로 태어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자랐다. 그런 그녀가 이제 막 2차 성징이 나타날 무렵 프랑스로 시집을 온 것이다. 물론 이는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평화를 위한 정략결혼이었다. 이러한 임무는 천성이 가볍고 천진난만한 그녀에게 너무나 버거운 것이었다.
그녀는 15세가 될 때까지도 모국어인 독일어조차 제대로 읽고 쓰지 못했다. 프랑스어를 위한 특별 과외수업을 받았지만, 평생 불어를 완벽하게 구사하지도 못했다.
반면 루이 16세는 라틴어를 포함하여 5개 국어에 능했던 지적이고 진지한 왕이었다. 성격 면에서 두 사람이 맞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그녀가 견딜 수 없었던 것은 베르사유의 딱딱하고 엄격한 절차와 예절들이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들로 취급하여 모든 절차를 간소화시키고 자신은 트리아농 궁의 자기만의 세상 속으로 숨어버린다.
하지만 프랑스인에게 국왕이란 만인의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 때문에 어느 정도의 의복만 갖추면 설령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베르사유에 들어가서 왕의 실제 모습들을 볼 수 있었다. 왕이 집무를 볼 때면 침실까지도 들어갈 수 있었고 심지어 왕비는 만인이 보는 앞에서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모든 것이 연극과 같았던 베르사유의 생활에 반기를 들고 비밀스러운 공간에 숨어버린 왕비를 프랑스 사람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러한 태도가 그녀를 사치스러운 왕비, 트리아농 궁에서 남자들과 음탕한 생활을 하는 왕비로 만들어 버린다.
화면 속 그녀의 모습 역시 프랑스 왕비로서 품위나 격조 없는 그저 젊고 예쁜 여인의 모습뿐이다.
디테일이 나를 만든다.
좋은 이미지는 화려한 외모나 예쁜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외모 또한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그것이 온전히 전체를 이룰 수는 없는 일이다. 눈빛, 손짓, 걸음걸이, 말투, 신념, 삶을 바라보는 관점, 태도….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나를 이루고 곧 나의 이미지를 결정한다. 아주 작은 평소 습관까지도 말이다.
우리 몸의 아주 작은 세포들이 모여 나를 이루듯 매우 사소하고 수많은 나의 모습들이 곧 내가 되고 나의 이미지가 된다.
‘보여지는 것’ 이 매우 중요한 세상에서 역설적이게도 정작 ‘중요한 것’ 은 보이지 않는다. 진짜 나는 거기에 있다. 그것이 채워질 때 비로소 이미지에 깊이감이 부여된다.
매우 지적이고 고상했던 그녀가 단 5분도 되지 않은. 그녀는 의식조차 못 하는 자신의 뒷모습 때문에 이미지를 완전히 망쳐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단정하고 이지적인 그녀는 과거 내 머릿속에만 존재했던 허상일 뿐이었다.
마담 드 퐁파두르 초상화는 온전히 그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녀의 재능, 관심 있게 보았던 서적, 교양 수준, 친분 있었던 교우…. 심지어 그녀의 생각과 사상조차 가늠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을 알고 나면 퐁파두르를 단순히 왕의 애첩으로 한정해버릴 수만은 없다. 오히려 당시 새로 나온 책들은 모두 찾아 읽었던 애서가,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공부하며 늘 깨어있었던 지성인, 왕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면을 꿰뚫어 왕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든든한 조력자, 사치스럽다기보다는 각종 후원과 자선사업에 열정을 쏟았던 ‘아름다운 여인’. 이것이 그녀에게 훨씬 더 어울리는 수식어일지 모르겠다.
반면 그림 속 마리 앙투아네트는 그녀의 손에 쥔 장미꽃만큼이나 화려하고 예쁘다. 하지만 그녀의 어떤 면도 빛나는 외모에 깊이감을 부여하지 못한다. 그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부러울 것 없이 자란 철없는 공주, 진지하기보다는 경솔하고 즉흥적인 성격, 자신만의 비밀정원에 숨어 프랑스인들의 삶에는 관심조차 없었던 왕비, 프랑스혁명 당시 단두대의 칼날에 목이 날아간 비운의 왕비. 자신의 어리석음으로 끝내 자식들의 앞날조차 지켜주지 못했던 가엾은 여인. 이러한 점들이 그녀를 아름답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닐까?
물론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어찌할 수 없는 역사 속으로 던져진 운명이었다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개척한 마담 드 퐁파두르와 무척 대조된다.
마담 드 퐁파두르와 마리 앙투아네트. 눈부시게 고운 두 여인이다.
하지만 한 사람은 단두대의 이슬로, 한 사람은 당대 지식인들의 애도와 안타까움 속에서 숨을 거뒀다. 그녀들 스스로 만든 이미지가 두 사람을 완전히 다른 길로 인도한 것이다. 이렇듯 이미지는 우리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이미지가 곧 ‘나’이고 ‘인생’이고 ‘삶’ 자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