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외롭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 해변의 수도승>

by Jin


비행시간이 대략 4시간에서 6시간 정도였으니 괌이나 태국행쯤 되었던 것 같다.

내가 담당했던 존(zone)은 이코노미석 맨 뒷부분으로 승객 전부가 신혼 여행객들이었다. 비행은 단거리든, 장거리든 브리핑부터 승객 탑승 후 비행기 문을 닫기까지, 약 2시간 정도가 가장 긴장되고 특이사항이 많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그날도 승객 탑승 시에 문제가 발생했다. 한 커플이 앞뒤로 떨어져 앉은 것이다. 일행이 떨어져 앉은 경우야 종종 발생하는 일이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이 이제 막 결혼한 신혼부부임을 잠시 잊고 있었다.

탑승하자마자 자리를 확인한 여자 승객께서


“저기요…. 자리 좀 바꿔 주세요. 남편과 자리가 떨어졌어요.”

전 승객이 신혼부부인 상황에서 누구를 떨어져 앉게 하란 말인가….

“죄송합니다. 오늘은 전부 신혼부부 셔서 자리를 바꿔드리는 건 힘들겠네요….”


표정을 보니 내 말을 이해하는 듯, 어쩔 수 없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륙 후 벨트 사인이 꺼지고 서비스가 시작되었다. 갤리에서 나와 음료 서비스를 하는데 여자 승객께서 울고 있는 것이다. 설마 자리가 떨어진 것이 속상하여 울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남편은 어쩔 줄 몰라하며 부인 옆에서 계시더니 이제는 아예 바닥에 앉아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두 분은 여섯 시간 내내 손을 꼬옥 잡고 아내는 좌석에, 남편은 바닥에 앉아 가셨다. 다행히 맨 뒷좌석이라 다른 승객의 이동에는 크게 방해가 되진 않았지만, 서비스를 해야 하는 나로선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갤리 커튼을 열고 나오면 바로 승객이 앉아있는 통에 넘어질 뻔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놔…. 뭐 이런…….’

하지만 어쩌겠나 ‘정말 사랑하나 보다’하고 넘기는 수밖에…….


그 후로 기차든, 버스든 일행과 좌석이 떨어진 경우엔 그때 그 커플이 떠오르곤 한다. 그분들은 여전히 서로를 아끼며 사랑하며 잘 살고 계시는지 안부를 묻고 싶어 진다. 그리고 동시에 좋아하는 작가분의 글귀가 생각난다.


‘거리감! 타인에 대해, 일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6년 전 처음 글을 접했을 땐 그 의미를 정확히 읽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저런 경험들이 쌓이니 이제는 그 의미를 알 법도 하다.

작가의 의도와는 관계없이 내가 이해한 바는 이렇다. 세상엔 원래 가지고 있었던 것은 없다.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더더욱 없다. 어느 순간이 되면 보내야 하고 놓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물건이든. 아주 무던하게 말이다.

인생은 그렇게 혼자서 떠나는 여행이다.

그러니 무엇에게든 기대고 집착하지 말자.

그래야 매사에 담담할 수 있다.


여기 처절한 고독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이 있다. 해변의 수도승

<해변의 수도승>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1809. 베를린 국립미술관


‘고요의 대가’라 불리는 프리드리히의 대표작이다. 작가는 깊이감을 드러내는 원근법도 사용하지 않았고 세부묘사나 변화를 주기 위한 모티브도 사용하지 않았다.


눈 앞에 펼쳐진 광활한 바다와 하늘은 화면 밖으로 끝없이 펼쳐져 있을 것만 같다. 이 신비스럽고 낯선 풍경은 검소하고 간결하다. 길도 없고 동물이나 사람도 살 것 같지 않은 이곳에 유일한 존재 수도승만이 우리를 등지고 서 있다. 위압적인 대자연 앞에서 그는 매우 작은 존재일 뿐이다. 하지만 그의 뒷모습조차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결국 짙은 바닷속 어딘가에서 사라져 버린다.


프리드리히의 작품은 곰곰이 생각에 잠겨 나의 감정에 몰두하게 만든다. 그러면 어느샌가 그림 속으로 들어가 수도승이 되어있다. 단조롭고 압도적인 우주와 마주한 수도승에게는 돌아갈 집도 친구도 없다. 고요하고 고독한 한 인간이 있을 뿐.


<안개 바다 위의 방랑자> 1818. 함부르크 쿤스트 할레


프리드리히는 1774년 9월 5일 독일 동북부의 작은 마을 그라이프스발트에서 태어났다. 1781년 어머니의 죽음을 시작으로 빙판 속에 빠진 자신을 구하려다 익사한 형, 그로부터 10년 뒤 그의 누이 마리아가 발진티푸스로 사망했다.


어린 나이에 가족의 죽음을 마주하며 외롭고 고독한 인간에 대한 성찰이 훗날 그의 작품 속으로 옮겨간 듯하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더 이상 파악조차 할 수 없는 크기의 자연 앞에서 결국 나는 혼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간은 원래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다. 영원한 것은 없다. 그러니 너무 가지려 애쓰지 말자. 언젠가는 다 보내야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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