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드로 보티첼리 <아펠레스의 중상모략>
“가보신 곳 중에 어느 나라가 가장 좋아요?”
주변 지인들에게, 승객들에게 심지어 소개팅남에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어디를 가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누구와 가느냐가 중요하죠.”
인천-후쿠오카. 비행시간 55분.
하지만 서비스 내용은 장거리와 맞먹는 그야말로 널뛰는 비행이었다. 나는 비즈니스 클래스 갤리 듀티로 갤리에서 서비스 준비를 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나와 같은 존을 담당했던 시니어는 사내에서 특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비행 15년 차 선배 A양이었다. 그녀는 승객 서비스 전담이었다.
이륙 후, 한참 서비스가 진행 중인데 Approaching sign과 함께 “cabin crew prepare for landing” 기장님 방송이 나왔다. 이는 내리기 20분 전에 주는 사인으로 착륙 준비를 위해 승객 짐을 포함한 모든 아이템을 고정하라는 의미였다.
부랴부랴 서비스를 멈추고 카트를 밀고 들어가는데 10B의 일본인 승객께서 기내 판매를 요구하셨다. 안으로 들어가니 갤리는 회수한 그릇과 유리컵, 주스 팩, 와인병 등등……. 회수한 서비스 물품들이 여기저기 뒹굴고 있었다. 엉망진창인 갤리 정리를 위해 승객 요청 사항을 A양에게 부탁했다. 그런데 결국 승객은 물건 구매를 못 하셨고 A양은 그런 부탁을 들은 적이 없다며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내게 잘못을 뒤집어씌우는 것이다. 해명할 여지도 주지 않은 채 계속 나를 몰아세웠다.
어쨌든 최초로 요청받은 사람은 나이기에 승객께 정중히 사과를 드렸고 다행히 잘 마무리가 되었다. 하지만 A양은 공개적으로 ‘이지아 씨가 거짓말을 하는 바람에 승객이 무척 언짢아하셨다.’라고 팀장님께 보고했고 호텔로 이동하는 내내 시니어들끼리 나를 보며 계속 쑥덕거렸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일일이 해명하고 싶지 않았다. 더구나 대선배와 싸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음날 인천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팀장님이 따로 나를 부르셔서 자초지종을 물으셨다. 그렇게 물어주시는 것이 고마워서인지, 다시 감정이 복받쳐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나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의 팀장님은 아무 말 없이 시원한 콜라를 한잔 따라주셨다.
성함은 잘 기억이 나지 않나 지만 그때 그분이 건네셨던 시원한 콜라처럼 위로가 되는 그림이 있어 소개한다.
산드로 보티첼리 <아펠레스의 중상모략> 우피치 미술관
그림의 내용은 르네상스 최고의 건축가인 알베르티의 <회화론>에 나오는 이야기로 아펠레스와 프롤레마이오스 1세의 일화를 화가의 상상으로 재현한 그림이다.
아펠레스는 고대 그리스의 전설적인 화가로 일명 ‘아펠레스의 절단’이라 불리는 사건으로 유명하다. 그의 경쟁자였던 프로토게네스 라는 화가는 자신이 가장 자신 있는 아름다운 윤곽선을 무기로 아펠레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매일 선 긋는 연습을 하며 실력을 쌓은 프로토게네스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더 이상 가늘게 그을 수 없는 극한의 선을 그려낸다. 하지만 아펠레스는 더욱 가는 선으로 프로토게네스의 선을 두 동강이 내버린다.
그의 천부적인 기량을 예측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사건은 알렉산더 대왕과의 일화이다. 아펠레스는 왕의 애첩의 누드화를 그리라는 명령을 받는데 그녀의 미모에 반해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만다. 현장을 목격한 알렉산더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그녀를 양보한다.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데는 나보다 예술가가 더 낫겠지”
과연 그의 재능을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러나 빼어난 실력가에겐 늘 비방과 모함이 따르는 모양이다. 그의 동료 화가인 안티필로그는 시기와 질투심에 휩싸여 아펠레스가 왕의 암살 음모에 연루되었다고 고발한다. 아펠레스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의인화를 한 점 그리는데 오늘 우리가 감상할 작품이 바로 보티첼리가 되살려낸 <아펠레스의 중상모략>이다. 아펠레스는 어떻게 자신의 무죄를 입증했는지 그림 안으로 들어가 보자.
화면 오른편의 심판관인 듯한 남자는 귀가 유난히 크다. 남의 말에 쉽게 현혹될 것만 같은 왕의 큰 귀에 두 여인이 속삭이고 있다. 그녀들은 ‘무지’와 ‘의심’을 상징한다. 왕은 여인들에게 둘러싸여 시선을 떨군 체 힘없는 팔을 앞으로 쭉 뻗고 있다. 현명한 판결을 내리기 힘들어 보인다.
그림 중앙에는 알몸으로 머리채를 쥐어 잡힌 체 어디론가 끌려가는 남자가 있다. 두 손을 모으고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이 남자는 ‘무죄’를 상징한다. 그의 머리채를 잡고 다른 한 손에는 횃불을 들고 있는 여인은 ‘중상모략’이다. 양옆으로 그녀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는 두 여인은 ‘속임수’와 ‘시기’의 알레고리이다. 그리고 검은 옷의 남자가 중상모략으로 상징되는 여인의 팔을 낚아채 심판관에게 다가가는 중이다. 남자는 ‘증오’를 나타낸다. 즉 아무 죄도 없는 결백한 이가 증오와 속임수, 시기로 중상모략을 당하는 모습이다.
그리고 화면 왼편에는 마치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처럼 서 있는 여인이 있다. 벌거벗은 채 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는데 그녀의 표정이나 제스처가 무척이나 외로워 보인다. 바로 ‘진실’의 알레고리이다. 두 무리와 동떨어져 현실에서는 설 자리가 없는 듯하다. 그리고 그녀 옆에 검은 옷을 뒤집어쓰고 진실을 바라보려 고개를 돌리지만, 똑바로 볼 수 없어 얼굴을 가린 노파는 ‘양심의 가책’이다.
그림을 본 왕은 아펠레스가 의도한 바와 진실을 정확히 꿰뚫어 보았고 그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물론 나의 경우를 아펠레스의 중상모략과 비교하는 건 약간의 무리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사안이 중대한 것이든 아니든 진실을 마주할 때의 모습이다.
작품 속의 인물 중 우리는 누구의 편에 가장 많이 서 있을까?
늘 ‘진실’에 머물기가 힘들다면 적어도 ‘진실’과 ‘양심의 가책’ 사이 어딘가에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