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안고 사는 수많은 이야기

한스 홀바인 <대사들>

by Jin

비행기에서 내릴 때면 최선을 다하지 못함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과 홀가분함이 늘 공존한다.


‘다음 비행 때는 승객들께, 동료들에게 좀 더 잘하자’

하는 마음으로 내리는 승객 한분 한분에게 코가 땅에 닿게 인사를 하곤 했다. 마음 다해 모시지 못함에 대한 자위이자 승객들을 향한 미안한 마음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다음 비행 때도 또 그다음 비행 때도 크게 달라진 점은 없었다.


뉴욕발 인천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인천 공항에 도착하여 가방이 나를 끄는 건지 내가 가방을 끄는 건지 그렇게 무빙워크에 끌려가는데 옆에 있던 동기와 눈이 마주쳤다. 한때는 좋은 덩치? 덕분에 ‘보안 승무원’이라 불리던 녀석이었는데 눈이 10센티는 들어간 것이 몇 시간 만에 환자가 되어있었다. 생각해보니 이륙 후 15시간 동안 비빔밥 한 그릇 말고는 제대로 먹은 기억이 없었다. 동기와 나는 아무 말 없이 1층 입국장을 빠져나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식당으로 향했다. 맥도널드였다. 얼큰한 찌개 한 사발 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것저것 따질 기력이 없었다. 햄버거와 감자 칩을 연신 쑤셔 넣고 있는데 옆에 커플인 듯한 남녀가 앉았다. 처음엔 모자를 푹 눌러쓴 여자가 흐느끼는 듯하더니 소리가 점점 커져


“으앙~~~~~~~~~ 꺼억꺼억…….”

우는 것이었다. 순간 한입 베어 물었던 감자 칩을 쟁반 위로 던지며 짜증 나는 말투로 동기에게

“후~~~ 야, 왜 우냐 아침부터……. 나야말로 울고 싶은데……. 쯧”

그러자 동기는 타이르듯

“여기 공항이잖아”


아, 그렇다 여긴 공항이었다. 내겐 그저 매일매일 출근해야 하는 직장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이를 떠나보낼 수도, 또 기다리던 누군가를 만날 수도 있는 곳. 공항이었다.

같은 장소이지만 그녀와 나에게 공항이 갖는 의미는 너무나 다른 것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사정과 고민, 수많은 이야기를 안고 산다. 그리고 그 내막을 알기 전까지는 누구도 상대방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그림도 마찬가지다. 이 세상에 그냥 존재하는 그림은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정치적 상황, 종교적 의미, 사회 풍자……. 등등 존재 이유를 알면 작품을 이해하게 되고 또 좋아지게 되기도 한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이번에 소개할 작품도 시대적 배경과 각각의 오브제들이 상징하는 바를 알고 나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대사들> 한스 홀바인. 1532. 런던 내셔널 갤러리

런던 내셔널 갤러리에서 처음 작품을 보았을 때, 주인공들이 멀찌감치 떨어져 서 있는 구도와 두 사람 사이에 빼곡히 놓인 물건들이 매우 특이했다. 그림 중앙에 알 수 없는 물체는 또 무엇인가? 그 의미를 알기 전에 이 걸작은 내게 그저 이상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을 정도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되었다.


작품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림의 배경이 된 시대적 상황을 살펴보자.

때는 16세기 초, 영국 역사상 여성 편력이 가장 심했던 국왕, 헨리 8세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헨리 8세와 6명의 왕비

꽉 끼는 의복이 약간은 불편해 보이는 헨리 8세는 190cm의 거구로 사냥, 마상, 레슬링 같은 스포츠뿐만 아니라 고전과 프랑스어, 스페인어, 라틴어에도 능한 매우 지적이고 총명한 왕이었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 修身齊家 治國平天下.

헨리 8세의 치국 治國은 비교적 평안했을지 모르나 제가 齊家에 있어서는 실패한 왕이었다. 총 여섯 명의 왕비를 두었고 그중 두 명은 지신의 손으로 처형했으니 말이다. 그가 지금까지 무자비한 왕으로 남아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헨리 8세와 왕비들


그의 첫 번째 아내인 스페인 공주 캐서린은 자신의 친형 아서의 죽음으로 17세에 과부가 된

그의 형수였다. 그녀가 결혼 당시 가져온 엄청난 지참금이 아까웠던 아버지 헨리 7세는 형수와의 결혼이라는 말도 안 되는 일을 성사시킨다. 근친상간으로 구약성경에서조차 금기시하는 일을 말이다. 하지만 헨리 7세는 기필코 장남 아서와의 결혼은 없었던 일이라는 로마 교황청의 사면장을 받아낸다. 이렇게 하여 헨리 8세와 스페인의 캐서린은 부부가 되고 훗날 ‘피의 메리(Blood Merry)’라 불리는 엘리자베스 1세가 태어난다. 하지만 헨리 8세는 캐서린이 아들을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24년간의 결혼생활을 청산하려 한다.

그에게 다른 여인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주인공은 캐서린의 시녀 앤 불린.

하지만 그의 뜻대로 이혼이 쉽게 성사되지 않았다. 캐서린이 완강히 거부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가톨릭에서는 로마 교황의 허락을 받아야 이혼이 성사되는데 교황 클레멘트 7세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에 헨리 8세는 영국교회를 로마교회로부터 분리해 버린다.

이것이 오늘날 ‘성공회’라 불리는 영국 국교회가 탄생하는 배경이 된 사건이다.

결국, 그의 파란만장한 가족사의 시작을 알리는 첫 번째 이혼이 성사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앤 불린을 아내로 맞았지만, 그녀 역시 아들을 낳아주지 못하자 일방적으로 이혼을 통보한다. 하지만 순순히 받아들일 앤이 아니었다. 끝까지 이혼 승낙을 해주지 않자 헨리 8세는 간통죄를 씌워 앤을 참수해버린다.

세 번째 부인은 앤 불린의 시녀인 제인 시모어이다. 둘은 꽤 사이좋은 부부였고 머지않아 아들(에드워드 6세)도 태어났다. 그토록 원했던 아들을 안겨준 여인과 이제 행복하게 살 일만 남아있을 것 같았는데……. 제인 시모어는 출산 도중 사망하고 만다.

어쩌면 남편 손에 참수당한 앤 불린보다는 덜 불행한 여인일지도 모르겠다.

헨리 8세는 다음 타자 물색에 나섰다. 네 번째 부인은 홀바인의 그림 속 미모가 맘에 들어 선택한 클레브스 공국의 공주 앤이였다. 하지만 실물을 보고 실망하여 또다시 이혼을 통보한다.

같은 해, 앤 불린의 사촌인 캐서린 하워드와 다섯 번째로 결혼한다. 하지만 스무 살의 용감한 캐서린은 불륜을 저지르다 발각되어 결혼한 지 2년 만에 참수당한다.

드디어 마지막 왕비이다.

여섯 번째 주인공은 이미 두 번이나 결혼 경험이 있는 이혼녀 캐서린 파였다. 만년의 헨리 8세는 지병인 매독으로 몸이 좋지 않았다. 코는 문드러졌고 다리 염증으로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혹자들은 헨리가 이미 늙고 병들었기 때문에 마지막 왕비는 이혼당하거나 참수당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쨌든 이해심 많은 그녀는 이러한 헨리를 끝까지 잘 보살펴주었고 캐서린 파 덕분에 헨리의 마지막은 비교적 평안했다.


오브제들의 의미

한스 홀바인의 걸작 <대사들>이 탄생한 시기는 헨리 8세가 첫 번째 이혼을 위해 교황 클레멘스 7세와 밀당이 있던 시기였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프랑스에서 건너온 외교관들이다. 이들은 당시 프랑스 국왕이었던 프랑수아 1세의 명으로 헨리 8세와 캐서린의 이혼을 막고 로마교회와 영국교회의 분리를 막으려는 중차대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화면 왼편에 화려한 모피 의상을 걸치고 있는 남자가 외교관 장 드 댕트빌이고 맞은편에 성직자로 보이는 듯한 남성은 조르주 드 셀브이다. 댕트빌은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의 소개로 홀바인에게 작품을 의뢰한다. 당시에는 정치와 종교가 긴밀했던 시대로 성직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교회가 가톨릭 권으로부터 분리되면서 프랑스 측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고 만다.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오브제들은 그들의 임무가 쉽지 않음을 암시한다.


하나씩 살펴보자.

댕트빌의 오른팔 옆에 천구의가 놓여있고, 그 옆으로는 원통형의 휴대용 해시계, 사분의, 다면 해시계, 마지막으로 토르카툼이 자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별이나 태양과 같은 천체 관측에 사용되는 기구들이다. 그중 다면 해시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특정한 숫자 4월 11일 10시 30분을 명시하고 있다. 옆에 있는 토르카툼도 1533년 4월 11일을 가리키고 있다. 이는 헨리 8세와 캐서린이 이혼한 날짜와 합의문에 서명한 시간이다.


아래쪽에는 세계지도가 표시된 지구의와 삼각자가 끼워진 산술 교본, 캠퍼스가 차례로 보인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류트라는 악기인데 줄 하나가 끊어져 있다. 악기는 조화를 상징하는데, 끊어진 줄은 로마교회와 영국교회의 분열로 인해 분쟁과 갈등의 시대로 접어든 유럽의 정치 상황을 의미한다.


또한, 댕트빌의 배경이 되는 왼쪽 상단의 커튼에는 십자가상이 숨겨져 있다. 복잡한 정치적 상황의 배후에는 종교문제가 있음을 암시하는 동시에 항상 주의 가르침을 잊지 말아야 함을 의미한다.


그리고 작품 하단 중앙에 수수께끼 같은 물체가 하나 놓여있다.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다.

왜상 기법으로 그려진 것인데, 물체를 왜곡하여 특정한 방향과 각도에서 보았을 때만 그 형상을 알 수 있는 기법이다. 작품의 좌우 끝에서 사선으로 보면 정확히 보이는데 다름 아닌 인간의 두개골이다. 내셔널 갤러리에서 두개골인 것을 깨닫고 등골이 오싹했던 기억이 난다.


서양 회화에서는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를 주제로 한 작품을 종종 볼 수 있는데 두개골 역시 그의 연결 선상에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인간의 두개골은 ‘죽음’을 의미한다. 즉 정치적 상황이던, 종교적인 문제이던 늘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마도 댕트빌이 작품을 통해 말하고자 했던 것은 어떤 일이든 이성적인 판단과 진실한 마음을 유지해야 죽음 앞에서 후회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존재의 의미

사람이든 작품이든 그것이 가진 진짜 의미를 알아야 존재에 대한 깊이감이 느껴진다.

그래야 서로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고 믿음과 신뢰가 형성된다. 인간관계란 이러한 이해와 믿음 위에 쌓아야 그 견고함에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이해받고 싶었고 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기를 바랐었다.

정작 나는 타인을 이해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 애쓰지 않으면서 말이다.

새삼 먹던 감자 칩을 던진 나의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그림 한 점에도 이처럼 많은 의미와 존재 이유가 있는데 하물며 사람이야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과정과 노력 없이는 작품이든 사람이든 오롯이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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