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진주 Oct 30. 2020

아빠의 이름, 난 그 뜻도 모르지

 우리 아빠의 이름은 ‘선효’이다. 성씨는 해주오씨에 이름은 선자 효자. 선은 착할 선이고 효는 효도할 때 효자일까? 나는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지금 당장 아빠에게 물어보거나 혹은 아빠의 지갑을 몰래 열어 주민등록상에 기재되어 있는 한자를 훔쳐볼 수도 없다. 대신 나는 아빠의 이름을 멀찍이 떨어져서 머리를 굴려 상상해 본다. 아마 누군가가 착하고 효도를 잘하라고 지은 이름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명을 한 건 할아버지일까 할머니일까? 그것도 알 수가 없다. 같이 살 때 한 번쯤 물어볼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대로 산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아빠는 그 말대로 살고 있다. 그는 부모님을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충실하게 살고 있었다.


 오씨집안의 장남인 그는 제사를 어느 특별한 날보다 더욱 귀이 여겼다. 그리고 집안 대소사를 살뜰하게 챙겼다. 친척들의 경조사나 대소사에 빼는 것 하나 없이 무조건적으로 참여했다. 그럴수록 아빠는 자신의 이름대로 살아가고 있었고 엄마는 그만큼 진이 빠져나갔던 것 같다. 그동안 엄마는 엄마 나름대로 스트레스가 쌓여 갔고 아빠는 이렇게 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엄마의 스트레스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


 간혹 나는 아빠가 자신의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만큼 자기가 꾸린 가정에도 정을 쏟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했다. 하지만 나는 아빠가 가정을 지키기 위해 20여년간을 자신의 뜻을 굽히고 버텨왔다는 것을 안다.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야 자신의 소신을 밝혀 이 가정을 떠나겠노라 선포했을 때도 나는 이해를 했다. 그는 하나 밖에 없는 어린 딸이 한부모 가정에서 크며 상처받지 않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래서 딸이 초등학생이었을 때부터 진작에 정을 땐 가정을 딸이 20살 때 까지 지켜주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던 것을 알고있기에 나는 아빠의 선택을 존중했다. 그런 나를 엄마는 배신자라고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나라도 아빠의 편을 들지 않으면 아무도 그의 편이 되어주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에.


 아빠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학업을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 들었다. 공부가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서였다. 공부는 신문을 읽거나 헌책방에서 사온 책으로 대신했다고 한다. 아빠가 초등학교만 나왔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어린 나는 아빠의 머리와 재능이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이기적이어서 가족을 위해 돈을 벌기보다는 계속해서  스스로를 위해 공부를 하고 학교를 진학했더라면 아빠는 분명 멋진 지리 선생님이 되었을 텐데. 장남이라는 이유로 그렇게 희생을 한다고? 그 당시의 나는 어렸기에 그 논리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본 아빠는 똑똑했고 누구보다 한국지리에 대해 빠삭했으며 지리에 ‘지’자도 모르는 나에게 항상 길에 대해 알려주려고 노력했었다. 방향치에 약간의 길치 기질이 있는 나로서는 아빠가 나를 앉혀놓고 나침반에 지도까지 펼치며 아무리 설명해줘도 못알아 들었지만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내게 있어서 최고의 선생님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고등학생일 때는 지구본을 선물로 사주셨는데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곳이 있고 어느 방향에 어느 도시가 붙어 있다라고 구구절절히 설명을 해 줬다. 그리고 자신은 북유럽에 여행을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왜냐고 물어봤지만 그는 잘 모르겠지만 한 번쯤 가보고 싶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당시의 나는 언젠가 취업이란 걸 하게 된다면 아빠에게 북유럽 여행티켓권을 선물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빠는 이제껏 누구한테 퍼주기만 하고 남들 잘되라고 뒷바라지만 해주었으니 나라도 아빠가 하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지원을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장남이 참 안쓰럽다고 느껴진다. 그 이유는 아빠 때문인데 장남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안의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며 남은 형제 남매들에게 뒷모습만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자기의 몫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서 말이다. 무엇을 위해 그렇게 희생했던 걸까, 아빠는. 자신의 이름 뜻대로 살기 위해서? 아니면 성격이 원래 그래서? 나는 알 수가 없다.


 나는 여전히 아빠에게 북유럽 여행 티켓권을 선물하지 못하고 제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효녀다. 아빠는 초등학생일 무렵부터 자신의 앞가림을 하고 다녔는데 그에 비해 나는 대학까지 나와 놓고도 제대로 이뤄놓은 것 하나 제대로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내 이름은 진주다. 옥돌 진에 빛날 주. 과연 나는 아빠가 지어준 이름대로 잘 살고 있기는 한 걸까? 아빠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빠 이름의 뜻은 무엇이고 내 이름을 이렇게 지어준 이유에 대해서 한 번 물어 봐야 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귀여운 여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