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든 ID를 기억하시나요?

내가 만든 내 이름

by 작은나무

요즘 대부분의 온라인 사이트는 첫 방문이라도 굳이 회원가입을 해서 로그인할 필요가 없다. 카카오톡이나 네이버가 연동되어서 로그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ID와 비밀번호를 사이트마다 새로 만들 필요가 없고 로그인도 간편하니 좋다. 며칠 인터넷을 하면서 문득 ID와 비밀번호를 쳐서 로그인을 한 기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개인 노트북엔 ID, 비밀번호를 저장해두어서 자동 로그인이 되기도 하고 앞서 말한 것처럼 연동 기능으로 간편하게 접속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자동 로그인, 간편 로그인을 생각하다가 처음 인터넷에서 ID를 만들던 때가 생각났다. 중학교 1학년 학교 수업시간이었다. 과목명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과목명에 '컴퓨터'가 들어간 과목이었을 거다. 당시에 네띠앙이라는 사이트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하며 ID를 만들고, ID를 만들면 이메일도 만들어지는 과정을 배우는 시간이었다. 이미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알던 친구들은 ID가 있었고 대체로 자기 이름 이니셜 또는 좋아하는 연예인 이니셜 등에 생일이나 집 전화번호 뒷자리를 조합해 만들었었다.


생애 첫 ID는 중요했다. 오프라인 상의 내 이름은 할아버지가 지어주셨는데 온라인 상의 ID, 즉 온라인 세상에서 이름은 내가 짓는 거니까 열네 살 소녀에게 그건 중요한 임무였다. 곰곰이 생각했다. 일단 한글로 만드는 건 안되니 영어를 생각해야 하는데 아는 단어가 별로 없었다. 한글로 원하는 글자를 치되 한/영 키를 누른 채 쳐서 ID를 만든 친구도 제법 있었는데 왠지 그건 알파벳 배열 모양이 예쁘지 않아 싫었다.


특별히 떠오르는 아이디어는 없고 수업시간 내에 만들어야 하니 마음이 조급해졌다. 별 수 없이 친구들이 만드는 형식을 따라 해야 했다. 좋아하는 가수 이름을 넣어 ID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었다. 좋아하는 가수가 너무 많았다. H.O.T는 처음으로 좋아한 가수여서 애착이 갔고, 또래의 쌍둥이 아이돌 가수 량현량하는 어린 나이에도 춤을 잘 추는 게 멋있었다. god는 노래가 좋았고 윤계상이 멋있었다. 신화는 터프하고 남성미가 넘쳐 매력 있었다. 클릭B는 잘생겼는데 악기도 다룰 줄 아는 게 좋았다. 이런저런 이유들로 그 당시 인기가수는 다 좋았다. 누구의 이름을 넣어야 할지 열네 살의 나는 고민이 많았다.


고민 끝에 결국 hrgscy라는 말도 안 되는 조합의 알파벳이 인생 첫 ID로 만들어졌다. 사실 글을 쓰는 동안 제일 끝의 y는 누구일까 생각해봤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y2k는 아니었을 게 분명한데 그 시절에도 끝에 쓴 거 보면 그나마 저 많은 그룹 중에서 좋아했던 마음의 크기가 적었나 보다. 지금은 기억 속에서도 완전히 사라져 버린 y다.


아무튼 생애 첫 ID가 생긴 게 너무 뿌듯했던 나는 엄마, 아빠와 이모들에게 내게도 이메일이란 게 생겼다며 전화로 한 자 한 자 또박또박 불러주었다. 나에게 메일을 보내달라고. 그러나 메일은 한 통도 받지 못했다. 엄마, 아빠와 이모들은 ID를 만들 줄 몰랐기 때문이다. 가르쳐 준다고 했지만 필요가 없으니 만들지 않았다. 그래도 마냥 좋았다. 인터넷을 사용할 줄 알게 된 뒤에 그 아이디는 다른 사이트에서도 사용되었다. 쉽게 생각할 수 없는 조합의 ID여서 ID 중복 검사도 매번 당연하게 통과했다.


1년 뒤쯤 고민이 생겼다. 난 이제 H.O.T도 량현량하도, 신화와 클릭B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 god만 좋아했는데 ID를 칠 때마다 다른 가수들의 이름 일부를 쳐야 하는 내가 좀 그랬다. 당시에 여러 가수를 다 좋아하는 애들을 '잡팬'이라고 낮춰 부르는 용어가 있었다. 그래서 그쯤부터 내 아이디는 skykyesangXX(XX는 숫자)로 바뀌었다. 한동안 그 ID로 활동하다가 메신저 '버디버디'가 나오면서 한글 ID가 가능했는데 나는 잽싸게 한글 ID로 바꿨고, 그 이후 다른 사이트에서 그 한글을 영어 단어로 바꾼 ID를 지금도 쓰고 있다.


20년 가까이 같은 ID를 여기저기서 쓰다 보니 지루해졌다. 요즘은 새로 ID를 만들 일이 있으면 그냥 내 이름 이니셜에 숫자 조합으로 한다. 내 뿌리를 튼튼히 하고 싶어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동일한 이름을 쓰려고 한다. 가장 자주 쓰는 블로그 ID도 바꿀 수 있다면 좋지만 이미 쌓아둔 기록을 없앨 수는 없다. 그건 내 정체성을 나타내는 또 다른 형태기 때문에 ID만큼 중요하다.


요즘은 많은 경우에 ID보다는 닉네임으로 대체되어 그 사람을 나타낸다. ID는 주로 본인만 보고 닉네임은 타인에게 보여진다. 어쨌든 닉네임이든 ID든 제2의 정체성을 나타낸다 생각한다. 그래서 다른 이의 온라인 상 이름의 기원이 가끔 궁금할 때가 있다. 묻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아 혼자 의미를 추측해보기도 한다.


다른 이의 ID 유래만 궁금해 했지 정작 내 ID는 아무 생각없이 로그인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했는데, 20여 년의 세월을 함께했던 여러 이름들을 생각해보니 그 시절의 추억과 생각들이 떠올라 꽤 의미가 있다. 미래의 나는 ID로 뭘 쓰고 있을까. 그때는 어떤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온라인 상에서 내 이름을 대신할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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