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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나무 Feb 29. 2024

입을 다물고 싶은 마음

치료부터 사색까지

약속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 둘째 유치원 등원을 하며 날씨를 체크해 보니 걷기엔 제법 춥다. 운전대를 잡는다. 도보로 25분, 차로는 10분이면 도착하는 곳. 금방 목적지에 도착하고 주차장 입구 들어지만 가기 싫은 내 마음처럼 주차할 자리 쉽사리 보이지 않는다. 지하 4층까지 내려가고 나서야 겨우 찾은 빈자리에 주차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3층 버튼을 누르고 잠시 후 3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기어이 오고야 말았다. 이토록 발걸음이 내키지 않은 곳은 바로 치과. 10년 전 끝난 치아 교정 장치에 작은 문제가 발생하여 장치도 고치고 작년에 건너뛴 스케일링도 받을 겸 오랜만에 들렀다.


교정을 할 당시 한 달에 한 번 치과에 출석하기를 3년 정도. 그럼에도 치과는 적응되지 않았다. 다른 병원 다르게 유독 치과는 공간이 주는 기운이 차갑다. 게다가 쉬지 않고 들려오는 지이이잉 하는 기계 소리는 쉴 새 없이 무언가를 공격하는 것 같다. 그 소리에 잠시 집중을 해본다. 웬걸, 원격 치료를 받는 것처럼 그 어떤 것도 내 치아를 건드리지 않았는데 괜히 입술이 마르고 이가 아픈 낌이다.


십여 분쯤 대기하니 내 차례다. 푸른색의 넓고 푹신해 보이는 의자에 긴장된 마음으로 눕는다. 이때 깨달았다. 치과가 왠지 불편한 이유 중 하나, 누워서 진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간 병원 진료 기억을 떠올려보면 누워서 진료를 받았던 기억은 치과와 산부인과뿐이다. 산부인과는 상황에 따라 검사 후엔 앉아서 설명을 듣기도 하지만 치과는 처음부터 끝까지 누워있는다. 치과 의사의 얼굴을 정면으로 본 적이 거의 없다. 늘 다른 환자를 치료하는 옆모습을 보거나, 누운 상태로 눈을 치켜뜨거나 혹은 고개를 비딱하게 한 채 내 상태를 설명하고 설명 들으니 눈을 마주칠 일도 없고 항상 얼굴의 일부만을 본다. 나에게는 일상적이지 않은 이러한 대면방식이 다른 병원보다 마음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곧이어 의사가 내 머리 위쪽에 앉는다. 그는 질문 몇 개를 하고 오늘 할 치료를 안내해 준다. 곧이어 짙은 보라색의 두꺼운 천이 입 부분만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채 내 얼굴을 덮는다. 치아 안쪽에 살짝 떨어진 교정장치를 붙이는 치료를 하는 동안, 내 입안에는 몇 번의 바람이 뿌려지고 때로는 입안의 침과 물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어디론가 흡수된다. 무언가 치아를 톡톡 치기도 하고 힘을 주어 긁기도 한다.


얼굴 위에 올려진 천 밖의 세상을 상상해 본다. 어느 타이밍에 어떻게 생긴 기구가 내 입안으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까. 눈이 가려져 있으니 다른 감각이 평소보다 또렷해진다. 소리에 더 집중하게 되고, 음식을 씹고 맛보기만 하던 입 안은 음식이 아닌 것이 들어온 상황이 어색하지만 최대한 이질감을 느끼지 않으려 애쓴다.


비교적 간단한 치료가 끝났다. 입안을 헹구고 잠시 대기한다. 이제 스케일링이다.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배꼽 위로 살포시 포개지며 공손한 자세가 된다.


다시 얼굴 위로 보라색 천이 덮였다. 이번엔 치위생사가 내 머리 위쪽에 앉았다. 상냥한 목소리로 스케일링을 시작할 거며 불편하면 손을 들어라고 안내한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끝이 날카로운 기구가 내 치아 사이사이를 더 깊게 비집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한다. 찌익찌익 소리도 나고 쉬익 쉬익 소리도 난다.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찡그려지고 공손하게 모은 두 손에 힘이 들어간다.


치위생사는 "괜찮으시죠?"라고 묻고, 나는 "네"라고 대답하려 했지만 벌어진 입 때문에 "에"라고 대답한다. 계속 벌리고 있는 입 때문에 입술이 마른다. 턱도 아프다. 한 번만 입을 다물었다 벌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몇 분쯤 더 하면 끝날까 궁금하지만 묻지는 못하고 계속 입을 벌리고 있다. 치위생사의 손길이, 정확히는 그녀의 손에 들린 기구가 윗니에서 아랫니로 왼쪽 치아에서 오른쪽 치아로 옮겨가며 천천히 움직인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다. 기다리다 조금 지친 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지이잉, 왜에에엥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눈을 감고 입을 벌린 채 사색에 잠긴다.


인간의 이빨은 왜 이렇게 많은 것인가.


보통 모든 치아가 다 있다면 위, 아래 16개씩 무려 32개가 된다는데 작은 입속에 그렇게 많은 이가 들어갈 수 있는 게 놀라울 뿐이다. 아니, 이가 그렇게나 많은데 입이 얼굴의 반도 차지하지 않는 게 신기한 건가. 나는 위, 아래 2개씩 치아를 빼 발치교정을 하고 사랑니도 4개가 전부 매복니로 치열에 영향을 주어 교정 전에 뺐다. 그러니 내 치아는 32개에서 8개를 뺀 24개다. 그런데도 입안은 이빨로 가득 찼다. 스케일링은 하는 동안 24개의 감각이 기구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이가 32개였다면 8개의 감각이 더 추가될 뻔했다.


사색은 현실에서 상상으로 넘어간다. 만약 치아가 아주 큰 윗니 1개와 아랫니 1개로만 되어있다면 어땠을까. 치료하기에 쉽지 않았을까. 하지만 충치나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만큼 대처하기가 어려웠겠지. 인간의 이빨이 이렇게 많은 건 역시 타당한 이유가 있을 거다. 치아 건강이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모두가 건강한 이를 가지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한다.


그러다가 문득 이빨들에게 감사해진다. 각자의 위치에서 모양도 크기도 다르게 자라서 제 역할을 하는 것이 신기하고 대견하다. 앞니, 송곳니, 어금니들까지 어느 하나 고맙지 않은 게 없는 거다. 부디 자기 자리에서 오랫동안 제 역할을 잘해줬으면 하는 소망을 하며 나도 모르게 살짝 멍해졌다. 그쯤 다행히 스케일링이 끝났다. 조금만 더 늦게 끝났으면 잠들 뻔했다.


의자가 세워지고 입안을 헹구고 혀로 치아를 한번 쓱 훑어본다. 약간 텁텁하고 뻑뻑한 낯선 느낌이 입안에 감돌지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미루던 일을 완료했으니 속이 시원하다.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은 들어갈 때와 확연히 다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4층까지 내려가 차에 탄다. 당분간은 안 와도 된다는 생각에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시동을 켜고 집으로 돌아간다.


(24. 2. 23. 금요일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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