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에 뭐가 보인다고요?

by 작은나무

수술 전 해야 할 모든 검사를 마치고 일주일 뒤, 드디어 검사 결과를 듣는 날이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도 그랬지만 어떤 결과를 기다리는 순간은 참 시간이 더디게 가고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이 커졌다. 나는 두 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혹시라도 전이가 됐거나 다른 부분에도 문제가 있다면 외관상으로나 혹은 미세한 통증이라도 느껴지지 않을까? 아무것도 느껴지는 게 없으니 다른 부분엔 별 문제가 없을 거다.' 하는 생각과, '유방에도 암으로 진단을 받은 지금도 전혀 만져지는 것도 없고 아무 통증도 없는데 문제가 있는 것처럼 다른 부분도 증상이 없다고 결코 안심하면 안 된다.' 하는 생각이 교차로 들었다.


어쨌든 시간이 흘러 나는 병원 대기실이었고,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환자분, 다른 부분은 다 괜찮은데 간 ct상 아주 작은 뭔가가 보여요. 그런데 너무 작아서 이게 뭔지 확인이 안 되니 간 mri를 찍어봐야 할 것 같아요. 예약 잡고 가세요."


남편과 나는 심장이 덜컥했다. 지금 0기로 진단을 받은 상태지만 혹시라도 정말 간에 문제가 생겼다면 병기가 바로 4기가 되는 것이었다. 설마 나한테 그렇게 잔인한 일이 닥치진 않을 거라는 막연한 확신을 가지고 진료실을 나섰다. 이제 수술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또 일주일 뒤 검사를 해야 한다. 수술은 2월 초로 잡았고, 간 mri 일정도 잡았다. 그리고 혹시나 간 mri 결과에서 이상이 있을 경우, 아마도 수술은 취소되고 치료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예정이었다.


병원을 나서고 날이 갈수록 간에 물혹, 혈종, 낭종 등 여러 가지 암과 상관없는 결절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걱정보다는 괜찮을 거라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 훨씬 크게 자리 잡았다. 다시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고, 나는 또 mri실 대기실에 앉아있었다.


이번엔 유방 mri를 찍을 때와 다르게 똑바로 누웠다. 밴드로 복부를 고정시킨 채 약 50분 정도 mri를 찍었다. 쾅쾅 거리는 큰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렸는데, 어느 순간 그 소리가 내가 날숨일 때 난다는 것을 깨달았다. 긴가민가해서 자체적으로 몇 번 테스트를 해보았다. 날숨을 조금 늦게 뱉거나, 일찍 뱉거나 해봤는데 날숨 때 쾅쾅 소리가 나는 것이 맞았다. 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10초 정도 호흡을 멈춰야 하는 순간이 열 번 정도 있었고, 조영제가 투입되면서 ct촬영 때와는 다르게 살짝 차가운 느낌이 몸에 감도는 것을 느꼈다.


50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진짜 모든 검사는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여기서 간에 문제가 생긴 게 맞다면 암세포가 전신에 퍼졌는지 확인하는 pet-ct라는 것을 찍어야 할 텐데 그거까지 찍고 싶진 않았다. 또 일주일을 기다려 다시 병원에 갔고 결과는 좋았다. ct상에 보였던 아주 작은 무언가는 다행히 '단순 물혹'이었다. 나는 교수님께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교수님, 저 그럼 수술하면 달라질 수도 있지만 일단 지금까진 다른 부분에 전이된 건 없고, 유방에도 암세포는 지금 발견된 1개 외에는 없는 거죠?"

"그렇습니다. 수술 전까지 잘 먹고 잘 자고 컨디션 관리 잘해서 수술날 봅시다!"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다. 이제 수술날까지 컨디션 관리만 잘하면 된다.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잘 먹고 잘 자서 체력을 길러놔야겠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먹었다.



그리고 코타키나발루 항공권.


취소하기로 마음먹고 수술 일정이 잡히면 취소 신청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수술 일정을 잡은 그날, 항공사에서 메일이 왔다. 항공사의 스케줄 변경으로 인해 내가 예약한 날의 인천 > 코타키나발루행은 취소, 코타키나발루 > 인천행은 이틀 뒤로 변경되었다는 메일이었다. 항공사 사정으로 인한 취소와 지연 일정이었기 때문에 취소 수수료 없이 100% 환불이 가능하다는 안내 메일이었다.


이제까지 항공사 사정 또는 날씨 때문에 당일 2-3시간 지연이 된 적은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겪었다. 보통의 나날이었다면 황당하면서 짜증이 났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나는 현재 보통의 나날을 보내는 중이 아니었고, 이 메일을 받았을 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뒤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환불 신청을 했고 얼마 전 수수료 없이 100% 환불을 받았다. 해외항공사여서 해외결제를 했는데 환율로 인한 손해액은 카드회사에서 보상해 줬다. 환차손 보상이 가능한 것도 이번 계기로 처음 알게 되었다.


이러나저러나 우리 가족은 올해 코타키나발루는 못 갈 운명이었다. 그리고 이 때문에 건강이 회복되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여행지가 코타키나발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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