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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Mar 01. 2019

다정한 무뢰한

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난 첫날 2시간을 늦었다고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어머니 눈치를 보는 주선자와, 나타나기만 하면 뺨을 올려붙이자 결심한 어머니 사이의 위태로움이 이어진 2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 아버지는 당신의 지각으로 화가 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대뜸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단다. 21세기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무뢰한이었지만 어머니는 잔뜩 바가지나 씌우자는 심산으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지금도 인천에서 성업 중인 고깃집에 어머니를 데리고 간 아버지는, 고기를 구워주는 종업원을 정중하게 물리친 후 손수 갈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주 정성스럽고 착실하게. 그러면서 왜 늦었는지는 끝내 한마디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는 분노 때문인지 2시간을 기다린 허기 때문인지 혼자서 그날 나온 갈비를 다 먹어 치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웃으며, 뼈밖에 남지 않은 갈비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 후 아버지는 결혼하는 그날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머니를 보러 왔고, 만날 약속 같은 건 도무지 할 줄을 모르는 한결같이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돌아가신 지 15년. 이제는 아버지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불 같은 성격과 가족들을 향한 무한한 다정함. 따스한 몇 가지 기억과, 바깥세상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당신의 사람에게 한 번도 모진 적이 없었던 희미한 잔상만이 남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 가족의 남은 인생을 결정했다. 두 남매를 지키기 위해 강철이 되어야 했던 어머니와 자신의 손으로 삶을 일구어 내야 했던 누나. 그리고 넘어서야 할 존재이자 롤모델이 돼야 할 남자가 사라진 아들. 내겐 따라잡아야 하는 등과, 닮아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갖고 싶은걸 가져다 줄 커다란 아버지가 없으니, 원하는 건 내 손으로 움켜쥐어야 했다. 그걸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어딘가 삐뚤어진 인간이 되지도 않았으니 그 점은 다행이었지만. 나는 늘 불안하고 쓸쓸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여기까지 잘 자라준 딸과 아들이 당신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안 계신지 15년이나 된 아버지와 내가 참으로 닮았다고 한다. 제멋대로고, 다정하고, 가끔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그 무엇까지도. 따라야 할 남자가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내 자신이 되고자 한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아버지를 닮아버렸다.


사정이 같다 해도 사람이 다르면 사태는 늘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해나갈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그렇게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나는 뭐가 이상하고 뭐가 올바른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지금의 나를 아버지가 보신다면 뭐라고 해주실까 궁금하다. 그 정도면 꽤 잘했어 남자라면 그래야지-라고 해주실지, 너 임마 그러면 안 돼 라고 호통치실지. 혼자 힘으로 우뚝 서려했지만 결국 당신과 닮아버린, 아직도 아버지를 넘지 못한 아들을 본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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