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어머니를 만난 첫날 2시간을 늦었다고 했다.
안절부절못하며 어머니 눈치를 보는 주선자와, 나타나기만 하면 뺨을 올려붙이자 결심한 어머니 사이의 위태로움이 이어진 2시간. 아무렇지도 않게 나타난 아버지는 당신의 지각으로 화가 난 어머니의 눈치를 살피지도 않고 대뜸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했단다. 21세기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무뢰한이었지만 어머니는 잔뜩 바가지나 씌우자는 심산으로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지금도 인천에서 성업 중인 고깃집에 어머니를 데리고 간 아버지는, 고기를 구워주는 종업원을 정중하게 물리친 후 손수 갈비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아주 정성스럽고 착실하게. 그러면서 왜 늦었는지는 끝내 한마디 변명도 사과도 하지 않았다. 그날 어머니는 분노 때문인지 2시간을 기다린 허기 때문인지 혼자서 그날 나온 갈비를 다 먹어 치웠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조용히 웃으며, 뼈밖에 남지 않은 갈비만으로 식사를 했다. 그 후 아버지는 결혼하는 그날까지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어머니를 보러 왔고, 만날 약속 같은 건 도무지 할 줄을 모르는 한결같이 제멋대로인 사람이었다.
돌아가신 지 15년. 이제는 아버지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불 같은 성격과 가족들을 향한 무한한 다정함. 따스한 몇 가지 기억과, 바깥세상과 치열하게 싸우면서도 당신의 사람에게 한 번도 모진 적이 없었던 희미한 잔상만이 남았다. 아버지의 부재는 우리 가족의 남은 인생을 결정했다. 두 남매를 지키기 위해 강철이 되어야 했던 어머니와 자신의 손으로 삶을 일구어 내야 했던 누나. 그리고 넘어서야 할 존재이자 롤모델이 돼야 할 남자가 사라진 아들. 내겐 따라잡아야 하는 등과, 닮아야 할 아버지가 없었다. 갖고 싶은걸 가져다 줄 커다란 아버지가 없으니, 원하는 건 내 손으로 움켜쥐어야 했다. 그걸 딱히 불행하다고 생각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어딘가 삐뚤어진 인간이 되지도 않았으니 그 점은 다행이었지만. 나는 늘 불안하고 쓸쓸했다.
어머니는 아버지 없이 여기까지 잘 자라준 딸과 아들이 당신의 자랑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안 계신지 15년이나 된 아버지와 내가 참으로 닮았다고 한다. 제멋대로고, 다정하고, 가끔 사람을 열 받게 하는 그 무엇까지도. 따라야 할 남자가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아버지와 같은 사람이 됐다고 한다. 그렇게 치열하게 내 자신이 되고자 한 노력이 무색하게 나는 아버지를 닮아버렸다.
사정이 같다 해도 사람이 다르면 사태는 늘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럼 그냥 자기 생각대로 해나갈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그렇게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살다 보면 가끔 나는 뭐가 이상하고 뭐가 올바른 건지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런 지금의 나를 아버지가 보신다면 뭐라고 해주실까 궁금하다. 그 정도면 꽤 잘했어 남자라면 그래야지-라고 해주실지, 너 임마 그러면 안 돼 라고 호통치실지. 혼자 힘으로 우뚝 서려했지만 결국 당신과 닮아버린, 아직도 아버지를 넘지 못한 아들을 본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