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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Feb 26. 2019

너의 이름은


2000년대에 개봉했던 초난강 주연의 '환생'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규슈의 아소 지방. 알 수 없는 이유로 생긴 크레이터의 주변 지역에서, 죽었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사랑하는 남편, 연인, 형제들의 환생. 다시는 볼 수 없던 그들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영화는 그 질문에 어떤 과학적 설명을 과감히 포기하고 각자의 사연에 집중한다. 누구에게나 다시 보고 싶은 그리운 사람이 있다. 하지만 환생은 단지 그 지점을 짚는데 그치지 않았다. 이 영화가 일본에서 예상외의 히트를 기록할 수 있던 이유는, 그 사람들이 집단으로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그들이 죽은 이유는 제각 기였다. 그러나 그 집단 환생 속에서 일본인들은 결코 다른 나라 관객들이 느낄 수 없는 바람이 이루어지는 경험을 한다.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인데, 일본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은 '제행무상'이라고 한다. 모든 것은 덧없이 흘러간다. 이 묘하게 체념이 얽힌 달관의 태도는, 그들이 태생적으로 한없이 불안정한 땅 위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자연재해라는 것은 사람이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재해다. 일본인들은 그 피해가 아무리 막대하고 부조리해도, 이를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것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있는 민족이다. 그러나 그로 인해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을, 결코 보내고 싶지 않은 누군가를 떠나보낸 기억. 그것만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그건 마음속에서 쉽게 떨쳐 버릴 수 있는 종류의 슬픔이 아니다. 그들을 구할 수만 있었다면, 그들이 다시 돌아온다면, 내게 그럴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이런 마음은 일본인들이 마음속 깊이 묻어둔 국민적 판타지인 셈이다.


'너의 이름은'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가지의 레이어로 이루어진다. 몸이 바뀐다-는 설정으로 소년과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 그들이 재해로부터 사람들을 구하고자 분투하는 이야기. 단지 러브 코미디의 소재로 사용되는 줄 알았던 '몸이 바뀐다'라는 설정은 중반부터 그들을 잇는 유일한 연결로 이야길 급박하게 이끈다. 사실 '너의 이름은'에서 나오는 소재들은 기발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누구나 하는 경험'을 모아놓은 공감 물에 가깝다. 지겨운 일상, 취업난, 꿈에서 다른 사람이 됐다던가, 처음 본 사람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든다던가, 그게 깨어나고 나면 금세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까지도. 놀라운 점은 이런 평범함 들을 한 줄로 꿰어 만들어 낸 거대한 판타지다. 결말 부분에서 다뤄지는 주요한 테마인 기시감.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어딘가를,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대사만으로 이 판타지는 현실의 영역까지 도달한다.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사람들이 극장을 나서며 "조금이라도 행복해졌으면 한다"라고 말했다. 그게 허풍이 아니다. 그는 이 영화를 통해 이야기로 할 수 있는 극한의 위로를 성취한다.


아쉬운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나라 관객들이 공감할 수 있는 폭이 일본인들만큼 직관적이진 못할 것 같다는 점이다. 작중에는 일본적인 소재들이 많이 등장하는데, 죽은 자와 산 자가 만나는 황혼의 시간, 무녀의 숙명, 마을 하나가 통째로 사라지는 자연재해, 무스비로 일컬어지는 신토 신앙 등이 그렇다. 이것은 일본인의 일본인을 위한 영화다. 단언컨대, 일본인들이 이 이야기로 받았을 행복감은 다른 나라 관객들이 받은 감상을 훨씬 뛰어넘고도 남을 것이다. 민족성을 고려했을 때 이 이야기의 파괴력은 그 정도였다. 마치 우리나라 관객들이 변호인과 광해, 내부자들로 받은 대리만족을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온전히 공감하긴 어려운 것처럼. 이 이야기를 100% 즐기려면 필요한 한 가지는 당신이 일본인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너의 이름은'을 봐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나는 이 추천평에서 영화의 최대 장점 중 하나인 작화는 미처 언급도 하지 못했다. 빨리 가라. 지금 이 순간 12,000원으로 가장 확실하게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이 영화가 스크린에서 내려가기 전에 보는 것이다.


(2017.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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