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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Oct 05. 2019

불가피한 괴물


조커는 언제나 매력적인 악역이었죠. 잭 니콜슨의 갱스터 조커라든가, 혼돈의 철학자였던 다크 나이트의 조커처럼. (쓰고 보니 자레드 레토가 걸리긴 하네요)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는 캐릭터의 예측 불가함, 범죄 예술가, 강렬한 비주얼. 그런데 뒤집어 말하면 그건 현실 바깥에 있는 인물. 만화적으로 과장된 캐릭터에 불과했다는 의미가 돼요. 조커라는 캐릭터의 매력에는 근본적으로 비현실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는 사실 굉장히 불편한 영화입니다. 코믹스 캐릭터였던 조커에게 얼굴과 이름을 붙여 충실하게 현실의 영역으로 끌어왔어요. 너무 끌어와서 문제죠. 아서는 다들 내게 왜 이렇게 무례하냐고 소리치지만, 그 점이 우리가 사는 세상의 섬뜩함을 반영합니다. 아니 너 이상한 새끼 맞잖아. 병신 같은데 우리 보고 뭘 어쩌라고? 바로 거기에 포인트가 있어요. 가해자가 돼야만 살아갈 수 있단 사실을 깨달은 피해자. 그 이상한 새끼가 더 이상 괜찮은 척하지 않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짠, 괴물이 탄생합니다. 거기서 어떤 기시감이 느껴져요. 연쇄 살인범이라든가, 총기 난사범처럼 우리가 아는 낯익은 얼굴들이.

아 그래서 이게 좀 애매합니다. 영화는 징글징글하게 잘 만들었어요. 끝내줘. 범죄 예술가도 아니고 갱스터도 아닌, 끔찍한 심연을 어쩔 줄 모르는 장외 인간. 이건 전에 없던 새로운 조커예요. 그런데 선뜻 공감하기엔 그 최종 형태가 우리 사회가 애써 지우려던 괴물이거든요. 대부분의 관객은 아서의 내면에 진지하게 공감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떤 관객은 닮기엔 너무 위험한 이 캐릭터에게 구원을 발견할지도 몰라요. 그 대립점에 선 두 가지 감상의 간극마저 조커의 탄생이 필연이었음을 증명합니다. 가히 세상이 두려워할 만한 영화예요. 진짜 드럽게 잘 만든 덕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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