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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정규 Jan 02. 2020

아직도 철이 안 들었죠?

우리 어머니로 말할 것 같으면, 외할머니에게 그렇게 착한 딸은 아니었을 거예요. 주말이면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화를 내는 소리에 일어났던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요. 들어보면 아니 뭐 저런 걸로 저렇게 화를 내나 그런 주제로다가. 외할머니는 이상할 정도로 맞서 화내질 않았어요. 어머니는 보는 사람 민망할 만큼 매서웠는데 그 딸의 성질을 묵묵히 듣고만 계시더라고요. 제가 보기도 좀 심해서 왜 그러시냐 그랬다가 괜히 욕이나 들어먹었죠. 딸과 엄마에겐 그런 게 있다고, 너는 알 수 없는 일이니 쓸데없는 참견은 필요 없다고 했습니다.


이제 외할머니는 세상에 없지만 대신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됐고. 누나는 아니 뭐 저런 걸로 저렇게 화를 내나 그런 주제로다가 어머니한테 화를 냅니다. 놀라운 점은 그거였어요. 그렇게 성질 불같던 어머니가 마치 외할머니처럼, 누나의 괴팍함을 듣고만 계셨거든요. 가끔 아들과 얘기할 땐 그럽니다. 내 딸이지만 진짜 성질머리 더럽다고. 무슨 소리세요 엄마도 그랬는데. 그러면 멋쩍게 웃으며 말씀했습니다. 그땐 엄마가 철이 없었어.


제철 음식이라든가 철 지난, 그럴 때 쓰는 그 철. 철 좀 들라는 말을 들은 게 35년인데 그 철이 “계절이 들었다”는 뜻이더군요. 과연 그렇겠다고 생각했어요. 철이 없었다던 그때의 어머니는 보편적으로 철없다 하기엔 많은 연세였지만, 말마따나 진짜 철이 없었을 거예요. 그땐 엄마의 엄마가 아니었으니까. 어느덧 노년기에 접어든 어머니에게도 들어야 하는 철이 남아 있었습니다. 엄마가 된 딸을 이해하는 엄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어머니에게 그랬듯이.


한 때 그 뭐야, 세상 일 알려고 노력하면 다 알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습니다. 근데 사람이 다 알 수가 없어요. 노력한다고 계절을 앞당길 수는 없으니까. 몇 살 됐다고 짠 알게 되는 것도 아니에요. 삶의 어떤 부분을 이해하게 된다던가, 뭔가를 받아들이게 된다던가 그런 건 그냥, 그때가 와야 하는 게 아닌가. 각자가 걷고 있는 각자의 삶의 속도로. 그런 생각을 했어요. 어른도 어른 노릇하기 힘들잖아요. 사실 우린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랬던 겁니다.


자, 올해는 어떤 계절을 보냈나요.

어떤 철이 들었어요?

아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한들 괜찮아요.

언젠간 알게 될 테니까.

살다 보면 철들 날이 올 거예요.

이왕이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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