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결혼을 결심하는 이유
오랜만에 만난 Y와 훠궈를 먹으러 갔다. Y는 최근 이사를 했고 남자친구와 동거를 한 지 꽤나 오래되었다고 했다. 혼인신고를 아직 하지 않았지만 서로의 부모님을 뵙는 상견례 자리도 생각 중이라고 했다.
Y는 내가 아는 그 누구보다 어딘가에 속박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내 꿈이 세계 이곳저곳을 누비는 구름이라고 말하면 자신의 꿈은 바람이니 나를 어디든 실어다 주겠다고 말하는 사람. 연락을 하면 종종 세상을 누비고 있는 사람. 해외에서 카페를 차리려고 준비하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게 안정적인 삶을 살게 된 계기는 뭐였는지 궁금해 물었더니 Y는 말했다.
“돌이켜보니 나한테 단란한 가족이 없어 몰랐는데 이 사람을 만나고 나서 내가 정말 안정감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원했던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
본인이 안정감을 원하고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깨달았다는 말이 너무나 공감 갔다. 나 또한 그런 사람임을 연애를 통해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Y에게 헤어진 남자친구와 결혼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 이별했음을 이야기했다.
“저는 그 사람이랑 대화할 때 ‘나’만 있고 같이 뭔가를 해나가자는 식의 이야기인 ’ 우리‘가 빠져있는 게 참 서운했어요. “
내 말을 듣자 Y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줬다.
"둥둥이가 그 사람이랑의 대화에 '우리'가 빠져있다고 말하니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 내가 한동안 아파서 수술을 했었거든. 그전까지 남자친구랑 같이 해외 가서 카페 차리려고 계획했었는데 그 계획이 다 무너진 거야. 해외 가서 살면 의료시설이 열악해서 주기적으로 검사받기 어렵다고 한국에서 살아야겠다고 결심을 하더라. 남자친구가 그래서 OOO 공부를 시작했어. 이 사람은 항상 ’우리’가 뭘 할지 이야기하는 사람이라 언제나 내편 같고, 그래서 큰 안정감을 느껴."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했다. 결혼을 한다면 Y커플처럼 함께 미래를 진지하게 꿈꾸고 서로의 생각을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과 해야겠다고 말이다.
한 번은 다른 지인에게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를 물어본 적이 있다.
“내 남편은 연애할때 나랑 어떻게 살고 싶은지 계속 말을 하기도 했고, 내 직업에 대해서도 많이 물어봐줬었어. 그런 모습을 보니까 자연스럽게 결혼을 결심했던 것 같아.”
지금 생각해 보면 나와 그는 결혼 얘기를 편하게 꺼낼 수 없는 관계였다. 애초에 결혼 생각이 없는 사람을 붙들고 확신을 달라고 하는 그림의 마무리가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와 결혼은 어렵겠다는 걸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그를 놓치고 싶지 않아서 시간만 질질 끌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람과 결혼하면 같은 취미인 스쿠버 다이빙도 같이 하러 다닐 수 있고, 취향이 잘 맞아 싸울 일도 많지 않을 것 같았다. 언제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안정감 있는 사람이었고, 그와 평생을 함께한다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 사람과 함께라면 타지에서도 힘든 일들을 잘 헤쳐나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나의 생각'이었다. 결혼은 한 사람의 의지나 추진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는 나와 결혼을 대하는 생각이 정 반대였다. 결혼이 하고 싶지 않은 그와 하고 싶은 나. 이렇게나 양 극단에 서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헤어짐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오래 만나도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피하거나 부담스러워한다면 그 관계는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애인과 결혼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좀 더 준비가 필요할 수도 있고, 연애 이상의 미래를 그리지 않았을 수도 있고, 정말 결혼을 꿈꾸고 있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과정에서 ‘우리‘의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람이 아닌 것을 깨달았을지라도 너무 슬퍼말자. 내 탓을 하지도 상대를 원망하지도 말자. 어쩌겠는가. ’ 나를 놓친 너는 참 안 됐다.’라는 마음으로 지내야지. 그와 나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마음이 지옥인 채로 지내게 될 테니까.
서로 함께하는 미래를 상상하고 대화할 수 있으며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안정감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놓치지 말기를. 나는 그런 상대를 운명이라 부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