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나, 삶을 위해 귀찮은 일을 해내자
모래사장에 두 발로 서 있을 때 파도가 세게 치면 몸이 휘청인다. 거세지는 파도에 휩쓸려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중심잡기는 파도가 부서지는 해변에서만이 아니라 삶의 매 순간 필요한 일이다.
3년 가까이 만난 사람과 헤어진 지 조금의 시간이 흘렀다. 2달이 약간 넘는 시간 동안 바쁘게 일했고, 운동하고, 책을 읽고, 사람들을 만났다. 주말에 데이트를 하지 않으니 주말 저녁은 드라마를 보거나 좋아하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잠시동안 현실을 잊었다. 재미난 이야기 속으로, 상황 속으로 들어가 그를 잠시 잊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방법을 택했다.
지난 평일에는 장례식장을 갔다가 집에 돌아와 금요일에 연차를 내고 일요일까지 푹 쉬었다. 혼자 영화도 보고, 마지막 PT도 받고 개인운동도 다녀왔다. 그렇게 3일 내내 편하게 쉬니까 오히려 바쁜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까지는 홀로 시간을 보내는 게 편하고 너무나 즐거웠는데 3일째 되니까 계속 혼자인 것도 심심했다. 가까이 사는 친한 친구는 결혼해서 전처럼 부르면 바로 나올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또 친한 언니들은 집이 너무 멀고, 엄마는 일을 나갔고, 약속도 평일로 미뤄 너무나 한가했다.
한가로운 날이라 그런지 전 남자친구가 꿈에 나오고, 계속 생각났다. 분명 이렇게 보고 싶어 하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저절로 떠오르는 생각은 어쩔 수가 없었다.
일요일이었던 오늘은 느지막이 일어나 유튜브 영상을 보다가 시계를 보니 점심시간이 다 되어 갔다. 정신을 차리고 쌓여있는 설거지와 빨래를 했다. 그렇게 움직여도 좀처럼 기분이 나아지지 않았다. 이대로 집에만 있으면 더 울적해질 것 같아 씻고 밖으로 향했다.
노래를 들으며 햇살을 맞으니 한결 나았다. 집에만 있을 때보다 훨씬 기분이 좋아졌다. 산책의 효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유튜브를 보고 자극을 받아 한 시간 넘게 걷고 올 생각이었는데 발걸음은 이내 헬스장으로 향했다. 무거운 무게를 드는 헬스장 운동을 하면 잡생각이 사라지니 사색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걷기보다는 그 편이 낫겠지 싶어 하체운동을 했다. 운동하는 시간 내내 힘이 드니 자연스럽게 운동에만 집중했다.
가뿐해진 몸과 마음으로 운동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그리운 마음을 일부러 외면하려 해서 인지 헤어진 전 남자친구가 생각나지 않는 건 그때 잠시 뿐이고 또다시 생각이 났다. 그래서 그냥 이런 그리운 마음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리울 수 있지. 둥둥 네가 정말 많이 좋아했잖아. 시간이 흘러서 마음의 크기는 달라졌을지라도 여전히 좋아하는 건지도 몰라. 실컷 보고싶어 하고 실컷 미워도 해. 그래야 훌훌 털고 일어날 힘이 생기지.'
그래. 드라마나 영화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으니 잘 지내는 수밖에 없다.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은 점도 있다. 그 사람을 만나며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과 잘 맞는지도 더 잘 알게 됐고 헤어짐을 통해 나의 부족한 점도 알게 되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함께하는 행복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해 준 사람인데 두고두고 고마워하며 나를 더 잘 가꾸는 게 그에게나 나에게나 모두에게 좋은 일일테다.
그러니 힘든 날에는 요동치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토닥이면서 마음을 잘 돌보아야 한다. 그러다 괜찮은 날에는 귀찮은 일들을 계속해서 해나가야 한다. PT는 이제 끝났으니 개인운동도 꾸준히 나가고, 피부관리도 받고, 책도 더 많이 읽고, 소중한 인연들과의 만남을 지속하고, 꿈꿔왔던 일을 실현할 수 있게 공부와 종잣돈 모으기도 게을리하지 않으려 한다. 스스로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나은 삶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한 우리 인생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파도에 끊임없이 휘청이다보면 어느새 중심을 잘 잡고 모래사장을 위를 성큼 성큼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헤어짐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나의 20대 때에 견주어 보면 참 많이 성장했다는 걸 느낀다.
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어른이 되어 가는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