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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둥둥 May 04. 2024

헤어진 사람이 꿈에 나올 때

<기대어 버티기>

며칠 전, 꿈에 헤어진 남자친구가 나왔다. 3년 가까이 만났던 사람이었고 따뜻하고 안정된 사랑을 주고받던 사이였다. 이번에만 꿈에 나온 건 아니고, 잊을만하면 꼭 한 번씩 그가 꿈에 등장했다. 매번 너무너무 생생하다.


최근에 꾼 꿈에서 그는 없던 보조개가 생겼더라. 친구들과 그와 함께 밥을 먹으러 갔고 그는 내 옆에 앉았다. 보조개가 생긴 그의 볼을 쓰다듬었는데 꿈에서도 그 촉감이 좋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는 그렇게 보들보들한 볼은 아닌데 꿈에서 그 볼은 아기 피부처럼 보드라웠다. 나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는 그의 눈가에는 주름이 졌다. 아 맞아 그 주름마저 사랑했었지 하며 눈을 떴다.


아직도 사진첩에는 그와의 첫 만남부터 헤어지기 전 데이트를 했을 때까지의 사진 수천 장이 남아있다. 사귄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제주도 여행을 갔었는데 휴대폰 용량 때문에 정리한 제주도 사진과 영상을 제외하면 거의 그와의 모든 순간들이 여전히 사진첩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다. 잊을만하면 사진첩에서 자꾸 추억 사진이니 추천사진이니 하며 그와 함께 찍은 사진이 뜬다.


지워버리면 그만일 텐데, 그렇다고 다 지우기엔 스물 후반에서 서른 살까지의 예쁜 내 모습도 지워야 하니까, 그 시절 그와의 추억을 모조리 없애버릴 필요는 없으니까, 귀찮으니까 하며 온갖 핑계로 외장하드로 옮기기를 미루고 있다.


책 <기대어 버티기>에서 작가는 의사에게 이런 말을 듣는다. '꿈은 사건이나 감정을 소화시키는 뇌의 작용'이라고. 나는 그에 대한 감정을 아직 소화시키지 못한 걸까? 감정이 남아있는 걸까?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지만, 그와의 좋은 기억, 슬펐던 기억들을 몸이 기억하고 저장해두고 있는 건 아닐까.


평상시에 생각도 안 나는 그가 내 무의식 한편에 자리하고 있어서 꿈에 나오는 거라면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네. 함께한 시간이 기니까, 잠깐 누군가와 썸을 타고 아주 짧게 연애하고 헤어졌어도 완전히 내 몸과 마음에서 그를 지우지는 못 했겠지. 때가 되면 추억을 옮겨야지. 지워버리지는 말아야지. 그러고 나면 꿈에 나오는 빈도도 줄고 결국은 아무런 꿈도 안 꾸게 되겠지. 시간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희미하게 만드는 법이다. 그리고 나는 또 누군가를 사랑하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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