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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계영 Feb 18. 2016

붙잡을 수 없음에 대해

- 빛은 저장되지 않는다

인간은 빛을 이용하여 시력을 보충하고 통신을 하고 예술 작품을 공연한다. 밤이건 낮이건, 의식하건 의식하지 않건 빛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어렵지만, 우리는 그 빛을 어디에도 가두어두지 못한다. 희미해져 가는 첫사랑의 얼굴이 우리 기억 어딘가에 새겨져 있다 할지라도 그건 그 영상(映像)이지 마음을 흔들었던 그때 그 얼굴빛 자체는 아니다.

밤하늘 불꽃놀이 폭죽 소리에 범벅이 된 심장 울리는 강렬한 환희를 촬영할 수 없었고, 평생 잊을 수 없다는 보레알리스(aurora borealis)의 감동을 카메라나 캠코더로 벗들에게 전해줄 수 없었던 이유는 우리가 빛을 저장해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중에 들추어 보는 사진과 영상에 담긴 빛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냉음극관이나 LED 혹은 할로겐등의 깜박임일 뿐이다)

빛은 저장되지 않는다. 잠깐 그 진행 방향을 바꿀 수 있을 뿐, 붙들지 못하는 시간처럼, 빛은 우리에게로 흘러와서 우리를 스치고 사라져 간다. 빛은 그 강렬한 에너지의 근원으로부터 우리에게 와서 그것이 만들어낸 시각 효과를 남기고 우리는 그 잔상만을 붙잡는다. 우리는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들꽃에, 감성 돋구는 갈잎에, 극장 스크린이나 TV 화면에, 사랑하는 이의 얼굴에 맺힌 상(象)을 본다. 근시나 노안으로 인해 가끔은 눈물로 인해 초점이 흐려지긴 하지만.

붙잡을 수 없음으로 인한 안타까움과 후회로 인해 삶이 더 진지해지기도 하지만, 진지함을 한껏 더한다고 해서 후회를 남기지 않는 삶을 살 자신은 없다. 하지만 그 머물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제일 멋지고 소중한 것이라는 깨달음은 삶의 목표와 방법을 재검토하게 한다.


독특한 색감과 강렬함 자체는 저장되지 않으며 우리 뇌는 주관적인 느낌만 저장한다
빛과 그림자의 밝기는 상대적인 차이만 지각되어 남을 뿐 기억속 어디에도 빛 그 자체는 없다
복제된 사본을 보려면 새로운 빛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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