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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계영 Feb 18. 2016

지극히 개인적인, 공유불가능한 '나'

- 이성보다 더 '나'를 정의하는 것

아침에 읽은 글이 감상을 자극한다.

아도르노는 나치가 유태인을 가스실에서 독살한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는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브레히트는 자신이 살고 있던 시대를 가리켜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서정시를 쓸 수 없는 까닭을 이렇게 고백했다:

“나의 시에 운을 맞춘다면 그것은 / 내게 오만처럼 생각된다. /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 엉터리 화가에 대한 경악이 / 나의 가슴속에서 다투고 있다. /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

(김정남 [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의 시]에서 인용)

필자는 철학과 인문 영역의 거장들이 그들의 일을 하지 못하게 만든, 아니 도저히 할 수 없게 만든 외상(外傷)에 대해 말한다. 우리 역시 일상을 반복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을 만날 때가 있다. 그것이 분노케 하는 세상사든 혹은 지극히 사적 영역의 어처구니없는 부조리든 그런 교란을 만나게 되면 우리는 마치 무엇인가에 쫓겨 갑자기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 한복판에 뛰어든 사슴처럼 그저 당황하며 놀란 채 서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 상황에서 아도르노나 브레히트의 ‘서정 없는’ 산문에 실린 것 같은 허세를 부릴 여유란 도저히 생기지 않는다.

고대로부터 생각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든 관념 속에서든 깊이 관찰하거나 숙고하여 정리한 이런저런 흥미 있는 생각들을 접하다 보면, 도대체 이와 같은 지성(知性)이 어디서 왔는가 경탄할 때가 많다. 창조주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도 많으니 객관적이 되려 한다 해도, 그 지성의 유래가 ‘지성 내부로부터’라는 순환 논리나 ‘우연의 산물’이라는 답변 회피적 주장을 듣게 될 뿐이다. 우리가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지성'을 보유하게 된 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하지만 지성 따위는 그저 ‘초딩스러운’ 영역으로 전락시키는 ‘넘사벽’의 영역이 있는데, 바로 감정의 영역이다. 세상이 어쩌다 만났던 철학자, 수학 천재들이나 과학계의 거인들이 후세에 남긴 가장 인상적인 족적을 살피다보면 그들이 사적 영역에서는 오히려 불행해 보이는 삶을 산 경우를 꽤 보게 되는데, 그때마다 ‘이렇게 똑똑했던 사람이 왜?’라는 아쉬움이 따라붙는다. 가장 ‘지성적’이었을 그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에서조차 균형을 잡고 행복을 붙잡는 문제, 감정을 다루는 문제는 전혀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은 물건 파는 사람들이 ‘상업용’ 감정을 생산해 내고, 스마트폰에선 오해를 피하기 위해 덧붙여지는 카톡 이모티콘들이 쉴 새 없이 날아다닌다. 감정 표현에도 전략이 있다고 말하는 처세 전문가들의 솔깃한 조언 덕에 이젠 감정에도 분칠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진짜 감정을 유발하는 문제들은 그리 녹녹히 다루어지지 않는다. 물려받은 삶의 여유 없는 궁박,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곤란이나 실패, 초보자나 무자격자들이 이끄는 사회가 추동한 무기력파는 삶의 의욕을 꺾고 가장 이성적인 이들에게조차 실패를 떠안긴다. 그런 강적 앞에서 우리는 세월과 경험을 통해 축적해 온 감정 조절 능력의 적분치를 상실하고 리셋당하기 일쑤다.

생각건대, 이성적 능력은 학습되고 축적되어 세대를 넘어 전달되지만, 감정 능력은 세대를 건너 축적되지 않는다. (그럴 리 없겠지만) 그 방면의 거장이 있었다 한들 우리에게 그 능력을 유산으로 넘겨줄 순 없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어머니도, 당신의 삶을 통해 배운 뭔가를 아들에게 그토록 남겨주고 싶어 하셨을 아버지도 그걸 전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감정 능력이야말로 나 자신을 가장 유니크하게 정의하며, 나와 함께 존재하다가 내가 사라질 때 사라져 버릴 가장 개인적인 것이다.


이제 스스로 되묻는다: ‘나는 과연 어떤 감정 능력을 가진 사람인가? 나는 얼마나 외상(外傷)에 면역된 인간인가?'

* 표지 이미지: 영화 [인사이드 아웃] 오피셜 트레일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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