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계속 배움

My Mediation Journey

by JinKyoo Lee

얼마 전에, 저의 신앙의 멘토이시자 정말 친한 선배님이신 안지현 변호사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소송 현실의 변화와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잠시 생각을 교환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어서, 최근에 번역 작업을 하고 있던 책에 조정과 중재 부분이 있어서 간략하게 그 내용들을 한 번 더 읽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소한 일들을 계기로, 오랫 동안 잊고 있었던 저의 연구주제에 대해 문득 문득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정에 대한 연구를 하겠노라고 걸어 온 여정이 그래도 짧지는 않았는데, 그 길을 걸으며 경험했던 것들을 정리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렇게 새로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조정(Mediation)"은 법적인 분쟁이 있을 때 소송에 의하지 않고 그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 중에 하나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줄여서 "ADR")"이라고 불리웁니다. 조정에서는 조정인 (Mediator)이 중간에서 양 당사자들의 대화를 도와서 타협안을 이끌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조정인은 판사와 달리 사건의 해결을 결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ADR 중에는 중재(Arbitration)라는 제도도 포함되는데, 중재는 간략화된 재판입니다. 법원에서 판사에 의한 재판이 아닌 중재인 (Arbitrator) 앞에서 간략한 형태로 증거조사를 하고 중재인이 그에 근거해서 판정 (Arbitration award)을 내리게 됩니다. 이 점에서 조정과 다르고 또 소송과 다릅니다.


이 ADR 이 제가 연구자로서 민사소송법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입니다.

민사소송법 수업 시간에 소송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분쟁을 더 빠르게 더 적은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이 부분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듣게 되었고, 또 때마침 "법조인의 소명" 이라는 책에서 기독 법조인으로서 헌신해야 하는 분야 중 하나로 "Peacemaking" 사역에 대해 듣게되었습니다. 판결이 아니라 화해로 분쟁을 해결하는 것 - 그러한 peacemaking 을 통해 분쟁 당사자들을 돕는 것.

이것 하나 보고 무작정 ADR을 연구하겠다고 뛰어들었던 것 같습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 세부 전공을 민사소송법으로 정한 것도 2002년 당시에는 민사소송법 학자들이 가장 활발하게 ADR에 대해 연구하고 이를 실무에서 활용하자고 advocate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원 석사 과정 면접에 들어오셨던 두 분 교수님께서 뜻이 좋다면서 격려해 주셨고, 저는 대학원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이하에서는 대학원 공부를 하면서 조정에 대해 연구한 내용과 그 당시 가졌던 생각들을 연구결과물을 중심으로 시간순서대로 기록해 보고자 합니다. 상당히 길 수 있고 지루할 수도 있어서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1. Legal Issues of Court-referred mediation and Decision instead of mediation in Korea (Korea University Law Review Vol.3) (2008)

대학원 수업 중에 한 학기 동안 학교의 영문 저널에 투고할 논문을 써서 제출하는 수업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시고 변호사로 일하신 박경신 교수님이 만드신 수업이었는데, 모교 법학과의 영문 저널인 Korea University Law Review 는 미국 로스쿨의 law review 와 같은 방식으로 법학과 학부생 학생들이 editor로 참여하여 저널을 발간하고 있었습니다. 수업은 미국 대학원의 Independent study 와 같은 방식으로, 학생이 정한 연구 주제에 대해 교수와 학생이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계속 공부를 하고 학기말에는 관련된 paper 를 제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당시 저와 두 명의 다른 학생들이 이 수업을 수강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수업을 위해 제가 택한 주제가 민사조정법 상의 수소법원 조정과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을 했던 2007년에 전공 교수님이신 유병현 교수님의 수업에서 발표했던 내용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법원 연계 조정에서 조정인들 (발표 당시에는 민사조정법 상 판사에 의한 조정만이 가능했습니다. 지금은 변호사나 각계의 전문위원들도 조정인이 될 수 있습니다)이 분쟁의 해결에 개입하는 정도가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조정은 소송과 다르게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또 창의적인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분쟁을 해결하는 것이 핵심인데, 민사조정법 상의 조정 절차를 검토해보니 조정이 이러한 목적대로 운영된다기 보다는 법원의 적극적인 개입 하에 조정에서의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소지가 많기 때문에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저의 주장이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중점을 두었던 부분은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이라는 제도입니다. 이에 따르면, 당사자들이 조정 절차에서 협상을 하다가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조정인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내려서 본인이 생각하는 합의안을 제시하고, 당사자들의 이의가 없으면 그대로 조정이 성립하게 됩니다. 그렇게 성립한 조정에 대해서는 재판상 화해와 같은 법적 효력, 즉 확정된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게됩니다.


저는 이러한 제도가 당사자의 자율성 (Parties' autonomy)이라는 조정의 본질에 반하는 제도라는 의견을 피력했습니다. 조정인이 제시하는 조정안대로 사건이 해결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분쟁 해결 내용을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정하고 그 과정에서 당사자들의 숨은 이해관계의 반영이나 감정의 해소 등 조정만이 가지는 장점들이 묻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사자들이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interest 가 아니라 조정인이 "다른 사건들"에서 보통 결론지어지는 내용을 근거로 조정인을 제시하고 당사자들이 이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되면, 소송에서 기대할 수 없는 독창적인 내용의 합의안이나 관계의 회복 등이 이루어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Peacemaking 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어느 판사님과 대화를 할 기회에 이 부분에 대한 그 분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조정 기일이 되면 조정에 참여하는 판사들은 보통 조정안을 미리 준비해서 해당 기일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법적인 관점에서는 판사들이 미리 준비한 조정안이 합리적일 것이지만, 조정을 장점을 살린다는 관점에서는 당사자들의 이해 관계나 특수한 사정들을 듣기 전에 미리 준비한 조정안은 아쉬울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몰론 당사자들이 이의 제기를 하면 다시 소송으로 돌아가서 중단되었던 소송이 진행되지만, 그 시점에서 당사자들은 이미 조정이 가지는 장점을 활용할 기회를 잃게되었다는 문제가 여전히 존재하게 됩니다.




2. 민사조정에 관한 연구 - 미국 민사조정과의 비교법적 고찰을 중심으로 - (고려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석사 학위 논문) (2008)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은 1.번의 영어 논문의 시각을 기초로 작성하였습니다. 우리 민사조정법 상의 조정 절차가 과연 당사자의 자율적인 분쟁해결이라는 조정의 본질을 얼마나 충실하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였습니다. 조금 넓은 범위의 주제에 대한 정리 및 의견 주장이라는 석사 학위 논문에 대한 요구에 맞추어 영어 논문의 논의를 민사조정법 전체로 확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수소법원 조정제도에 대해서도 다루게 되었습니다. 수소법원 조정의 경우에는 어느 사건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는 중에 해당 재판부가 그 사건을 조정에 회부할 수 있고, 그 경우에 같은 재판부의 일원이 직접 조정을 할 수도 있었습니다. 조정이 성립하지 않으면 다시 그 재판부에서 소송을 계속하도록 되어있습니다.


저는 이러한 형태의 법원이 주도하는 조정이 조정의 장점을 살릴 수 없으며 결국 과도하게 많은 사건들을 빠르게 처리하는 수단으로만 사용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민사조정법에도 조정에서의 합의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추후에 소송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는데, 수소법원의 재판부의 일원이 조정인이 되어 진행을 하다가 조정인 안되어 다시 그 재판부가 소송을 계속하게 될 때, 해당 재판부가 조정 절차에서 논의되었던 내용들로부터 어떠한 영향을 받을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경우 적어도 조정에 관여하지 않았던 다른 재판부로 사건이 재배당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더하여, 위의 문단에서 다루었던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과 연계해서 생각해보면, 수소법원의 특정 재판부가 어느 사건을 조정에 회부하고, 조정을 진행하다가 합의가 안되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을 하여 해당 재판부가 생각하는 사건의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당사자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재판이 재개되어 그 재판부가 다시 소송을 진행하게 되는 경우에는, 조정은 해당 재판부가 생각하는 사건의 결론을 미리 보여준 것 이상의 의미는 가지지 않게 됩니다. 또한 그 결론은 충분한 증거조사가 되기 이전에 형성된 premature 한 것이 되어서 재판부의 이러한 의견이 예단이 되어 소송 내내 계속 유지되게 된다면 당사자들의 절차권이 침해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조정기관의 구성이 지나치게 법원 중심적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논문 작성 당시의 민사조정법에 따르면 수소법원와 조정담당판사, 그리고 조정위원에 의해 조정이 이루어졌습니다. 법관이 아닌 각 계의 전문가인 조정위원들이 조정에 참여한다고는 하나, 여전히 법관이 조정장의 역할을 맡게 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했던 점은, 변호사가 조정인으로 참여할 기회가 거의 없다는 것이었고, 당사자들이 누가 조정인이 될지를 선택할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또한 당사자의 자율적인 분쟁해결이라는 조정제도의 본질에 반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 부분에 대하여는 그간 의미있는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2009년부터 "상임조정위원" 제도가 시행되었고, 이에 따라 변호사 등 많은 전문가들이 조정담당판사와 동일한 권한을 갖고 단독으로 조정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주변을 보아도, 변호사로 활동하시는 선배님들이 조정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게되는데, 이를 보면 조정기관의 다양화가 차근차근 잘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누가 조정기관이 될지 (조정담당판사 / 상임조정위원 / 조정위원회)를 조정담당판사가 결정한다는 점은 아쉽습니다. 사건의 당사자들이 이를 결정하게 되면, 당사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조정의 본질에 맞는 자율적인 합의 도출을 위해 애쓰는 분이 누구인지 알려지게 되어 조정인의 커리어도 전문화될 수 있을 것이어서 아쉽습니다. 상임조정위원에 한하지 말고 아예 법원 밖에서 변호사에 의해 조정이 이루어질 수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3. Res Judicata effect of ADR in U.S. and Korea: Is there any principle or rationale resolving the question of ‘contractual effect or res judicata effect’? (University of Washington School of Law LL.M Paper)(2010)


석사 과정을 졸업하고 2009년 여름에 미국 시애틀로 유학을 갔습니다. University of Washington 에서 LL.M 이라는 외국(미국 밖)에서 법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위한 1년짜리 석사과정으로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박사 과정에서 공부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는데, 한국에서 석사 후에 미국의 박사과정에 바로 진학하는 경우가 드물고, LL.M을 졸업하면 미국 변호사 응시 자격이 주어기지 때문에 LL.M을 먼저 하기로 했습니다.


미국에 건너가서도 제 관심은 여전히 Mediation 이었습니다. 한국 모교에서의 석사 학위 논문도 미국의 조정제도와의 비교였기 때문에, 한국의 조정제도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내용들을 배우고 관찰하고 싶었습니다.


LL.M 시작하기 직전에 3주 정도 로스쿨에서 하는 Summer program 을 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은 미국법 시스템 전반에 대한 소개와, Legal research, 로스쿨의 각 과목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ADR 을 담당하시는 Alan Kirtley 교수님이 ADR에 대한 개관을 해주셨는데, 가슴이 어찌나 뛰었던지 지금도 생생합니다.


다른 미국의 로스쿨과 다르게 UW은 쿼터제를 택하고 있었습니다. 학기제를 취하는 학교는 1년이 두 학기로 이루어지지만, 쿼터제를 따르면 1년이 10주로 이루어지는 세 개의 쿼터로 구성됩니다. 사실상 1년에 3학기를 해야 하니 다양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점은 좋지만, 한 쿼터가 10주로 짧아서 각 과목이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는 부담이 있습니다.


저는 그래도 그 덕분에 LL.M을 하는 동안에 ADR 관련된 수업을 세 개나 들을 수 있었습니다.


1. 첫 학기 때 들었던 "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 은 명망있는 Arbitrator 인 David Wagoner 변호사님이 강의를 하셨는데, 항공기의 제조물 책임 분쟁의 국제중재라는 가상의 시나리오를 통해 한 학기 내내 팀을 짜서 실제로 중재과정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수업을 통해서는 중재 절차가 조정보다는 소송에 근접하다는 것과 소송에 비해 어떤 부분이 간소화된 것인지를 느끼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2. 첫 학기와 두번째 학기에 걸쳐서 진행되었던 "International Contracting" 수업은 정말 흥미 진진한 수업이었습니다. 이는 ADR 중 하나로 흔히 분류되는 Negotiation 을 직접 해보는 수업이었는데, 팀별로 스카이프를 통해 일본 동경대 법학과의 학생들로 이루어진 상대팀과 계약 체결을 위한 협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경험한 법적 이슈들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수업은 스타벅스의 변호사와 로스쿨의 교수님 한 분이 팀을 이루어서 강의를 하셨습니다. 사안은 일본에 있는 회전 초밥 체인을 미국의 쇼핑몰에 들여오기 위한 Joint venture 계약을 위한 협상이었습니다. 정말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는데, 저는 아무래도 분쟁해결 조항을 중심으로 조정과 중재 등의 옵션들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부분에 관심이 제일 갔었고, 그 내용으로 두 번째 학기 때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3. 두 번째 학기때는 드디어 Kirtely 교수님의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수업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ADR 전반에 대한 수업이다보니 제가 알고 있었던 Arbitration, Mediation, Negotiation을 넘어서 정말 다양한 형태의 ADR 에 대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는 "Med-Arb" 이라는 형태의 ADR에 가장 관심이 많았는데, 이는 제가 연구를 했던 우리나라 민사조정법상의 조정이 이 Med-Arb 과 유사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Med-Arb 은 조정을 진행하다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중재로 절차를 전환해서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인데, 우리 법원 조정에서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이 내려지는 과정이 이와 유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Med-Arb 의 경우에는 중재의 단계로 접어들게되면 중재판정부를 새로 구성한다는 점에서 우리 법원 조정과 같이 조정인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 (중재 판정과 유사한)을 내리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Med-Arb 에 대해 생각하면서 조정과 중재가 어떻게 구분되어야 하며 그 근거는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이러한 관점은 이후의 조정 연구에 있어서의 저의 기본적인 시각이 되었습니다.


어느덧 LL.M 의 마지막 학기가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그 어느때 보다도 LL.M 의 1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간 것 같습니다.


LL.M 졸업을 위해서는 논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저는 조정의 효력에 대한 부분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부분은 한국의 석사 학위 논문에서는 다루지 않았지만,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았던 영역이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법원 조정 이외에 행정부의 각 부서에 생각보다 많은 조정위원회가 있습니다. 우리가 들어봄직도 한 "소비자 분쟁조정위원회" "환경 분쟁조정원회" "의료 분쟁조정위원회" 등이 그 예입니다. 이러한 행정부의 분쟁조정위원회에 대해서는 각각의 개별법들이 규정을 하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조정이 성립될 경우에 주어지는 효력이 제각각이라는 점입니다. 법원에서의 민사조정과 같이 재판상 화해와 동일한 효력이 주어져서 기판력 (Res Judicata)을 포함한 판결의 효력을 갖게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당사자들의 계약과 같은 효력만 갖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각각의 행정형 분쟁 조정이 어떠한 효력을 갖는지를 정하는 기준이 전혀없었습니다. 법 개정을 통해, 분쟁조정의 절차가 거의 바뀌지 않았음에도, 성립된 조정이 어떠한 효력을 갖는지만 변경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LL.M Paper 를 통해 조정에 어떠한 효력을 부여할지를 정하는 합리적인 기준을 찾고 싶었고 이러한 시각에서미국의 행정형 분쟁조정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의 경우에는 중재에는 기판력 등 판결의 효력이 인정되는 반면, 조정에 대하여는 일관되게 계약상의 효력만이 주어지고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연구를 통해 한국의 법원조정제도가 조정과 중재가 혼재된 형태로 운영되고 있어서 때로는 조정이 중재와 같이 운영되고 있다는 점을 한층 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사실 때문에 행정형 조정의 효력이 절차법적인 일관성 없이 제 각각 운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국의 행정형 조정의 경우에는 절차법적으로 중재에 가까운 요소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즉 순수한 조정에 가까워서 계약으로서의 효력만 인정하는 것이 절차법적으로 타당함에도, 법원 조정이 판결의 효력을 부여하니 그에 따라서 동일한 효력을 부여한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논문을 쓰면서 가장 의미있었던 시도는 중재나 조정에 어떠한 효력을 부여할 것인가를 검토하면서, 해당 절차의 어떠한 부분이 어떻게 그 효력과 연결되는지에 대해 절차법적인 접근을 했다는 점입니다. 이 과정에서 법원의 재판을 위해 절차적으로 요구되는 procedural formality of adjudication 과 같은 중요한 개념에 대해서도 공부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제 연구의 관심이 procedrual due process 로 뻗을 수 있었습니다. 제 박사학위 논문은 조정에 대한 것이 아니었지만, procedural due process 는 학위 논문을 위한 연구의 근간이 되었습니다.




4. Professional Mediation Skills Training Program (University of Washinton School of Law)(2010)


LL.M을 졸업하고 감사하게도 같은 학교에서 박사과정 (Ph.D) 공부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석사과정 공부를 했던 학교에서 박사 과정 공부를 한다는 것에는 장점이 많았습니다. 석사과정 때 기회가 없어서 듣지 못한 수업을 들을 수도 있고, 교수님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고, 박사과정 동안 어떻게 공부를 할지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보다 수월했던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살면서 너무 좋아하게 된 시애틀을 떠나지 않게 된 것도 물론 큰 감사제목이었습니다!


로스쿨마다 다르지만, UW의 박사과정에서는 Coursework 으로 일정 학점 이상의 수업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 로스쿨에서 배워야 할게 많은데 1년이 너무 짧았던 저에게는 정말이지 반가운 소식이었습니다. ADR 관련 수업과 민사소송 관련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더 있었으니까요.


Kirtely 교수님 외에 UW에서 ADR을 강의하시는 교수님이신 Julia Gold 교수님의 Negotiation 수업도 박사과정 coursework 으로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이 수업 역시 본격적으로 협상 실습을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는데, 협상 전에 작성해야 하는 계획표가 좋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이 계획표에는 나와 상대방의 입장(position)과 나의 이해(interest), 그리고 내가 합의할 수 있는 하한과 상한의 범위 등을 미리 생각해서 적게되어 있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한 번 적고나면 협상 도중에 종종 생각이 나서 일관되면서도 유연한 입장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변호사 교육 (Continuing Legal Education; CLE)의 일환으로 UW 로스쿨에 의해 주최된, 즉 Kirtely 교수님과 Gold 교수님이 주도하신 Professional Mediation Skills Training 은 정말 특별한 배움의 기회였습니다. Coursework 으로 요구된 것은 아니었고, 학점을 취득하지는 않았지만, 저는 학교 측의 참가비 지원을 받아서 이 변호사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그 동안 경험했던 실습 위주의 수업과 비슷한 방식이었지만, mediation 과 관련된 role play 실습을 경험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새롭운 배움이었습니다. 변호사들이 참여하는만큼 실제의 mediation 과 유사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실습은 역할극을 위주로 진행되었고, 각 그룹에서 조정인 1명, 참여자 2명, 관찰자 1명을 정해서 역할극을 반복했습니다. 각 역할에 고유한 instruction 이 주어졌는데, 그 역할을 맡은 사람만 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Instruction 에는 사안에 대한 설명과 해당 참여자의 입장, 그 참여자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합의가 가능한 조건 (금액의 범위 및 다양한 조건들) 등이 기재되어 있었습니다. 관찰하는 역할극을 마친 다음에 debriefing 을 통해 각 참여자들이 해당 역할을 어떻게 수행했는지, 무엇이 좋았고 무엇을 보완해야 할지, 에 대해 말해주었습니다.


조정인의 입장에서 참여할 때 각 당사자의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말을 자신의 언어로 "~라고 말씀하셨는데요" 하면서 확인시켜주는 것이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로 참여할 때는 생각보다 몰입을 했던 것 같습니다. Debriefing 할 때 관찰자가 제가 "I felt helpless." 하고 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자들은 보통 쓰지 않은 표현인데 제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며 이 당사자가 정말 힘들었던 것처럼 들렸다며.



5. 조정 연구의 어려움 - Ph.D Dissertation 에서 조정을 다루지 못한 이유


미국 로스쿨의 박사 과정은 학교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제가 졸업한 UW 의 경우에는 일정한 방향의 연구방법론을 교육하고 그에 맞추어서 학위논문을 작성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하다보니 모든 박사과정생들이 필수로 들어야 하는 과목들이 있었습니다.


설레는 박사 첫 학기에 네 명의 동기들과 함께 들었던 첫 필수 과목은 "Doctoral Dissertation Seminar" 라는 수업이었습니다. 이 수업의 목적은 기본적인 연구방법에 대해 배우고 실제로 본인이 박사학위 논문으로 쓰고 싶은 내용의 큰 틀을 잡는 것이었습니다. 기본적인 연구방법에 대해서는 주로 법사회학 (Law and society) 분야의 책과 논문들을 많이 읽었는데, 미국에서 학문적으로 법에 접근을 할 때에는 법사회학적인 분석을 기본으로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학기때부터 학위 논문의 주제를 정하고, 내가 찾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와 주장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정하고, 한 장짜리 요약을 만드는 것이 처음에는 좀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지도해주신 교수님들과 동기들과 계속 feedback 을 주고받으면서 학위 논문을 조금씩 만들어가는 것이 재미도 있고 많은 배움도 있었습니다.


언젠가 박사 과정 중에 한국에 잠시 방문했을 때 이러한 박사과정 필수 수업에 대해 말씀을 드렸더니, 어느 교수님께서 해당 전공 지도교수가 아닌 분이 그러한 수업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는 법학 대학원에는 없는 형태의 수업인데, 더욱이 필수과목이라 하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으시겠다 싶었습니다. 아마도 청중에 대한 기대의 차이가 있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의 경우에는 특정 분야의 연구자들이 박사 학위 논문의 주된 청중이 되는 반면, 분야 간의 합동 연구가 활발한 미국의 경우에는 해당 분야의 연구자가 아닌 분들도 청중으로 종종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제가 들었던 수업에서는 "experts in other field"를 이해시키고 이들로부터 이 연구 주제가 흥미로운 것이며 기여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얻어내는 것 또한 중요한 목표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새롭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박사과정의 공부 전반에 대해 배워가는 수업도 있었던 반면, 어렵기만 해서 내내 헤매였던 수업도 있었습니다. "Empirical Method" 라는 연구방법론을 구체적으로 다루는 수업이 그러했습니다. UW의 경우에는 제가 다녔던 당시에는 경험적인 연구방법론을 활용하여 연구를 하고 논문을 작성할 것이 요구되었습니다. 그래서, 연구주제가 무엇이다라고 말을 하면 바로 다음 질문이 연구 방법론은 무엇인지, 데이터는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수집할건지였습니다.


이러한 경헌적 연구방법론은 양적 연구나 질적 연구와 같이, (한국에서 교육받은 법학자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법학 이외의 다른 사회과학 분야에서 사용하는 연구 방법론을 사용하여 연구를 설계하고 논문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적 연구는 기본적으로 가설을 설정하고 데이터를 수집하여 이론을 검증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는데, 간단히 말해서, 한국에서 법학을 공부한 저는 전혀 모르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서의 법학 연구는 문헌 연구나 해석학이 중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사회학을 공부한 아내는 쉽게 이해하고 기본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인데, 저에게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두 학기에 걸쳐서 진행된 Empirical Method 수업은 Political Science 학과 교수님 중에서 연구방법론으로 유명하신 Susan Whiting 교수님이 로스쿨까지 매주 오셔서 수업을 해주시곤 했습니다. 수업의 목표는 학위 논문 중에서 "연구방법론" 챕터를 완성하는 것. 봐도봐도 모를 reading material 을 헤매이다가 두 학기가 지나갔지만, 정신 없이 지나고보니 학위논문의 한 꼭지가 완성되어 있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수업 내내 그 부분에 대한 코멘트를 들었기 때문에, 실제 논문 심사에서 방법론 부분에 있어서 만큼은 걱정이 덜 되었기 때문입니다.


박사과정의 처음 2년 동안은 이러한 수업들을 들으면서 학위 논문 committee member 들을 구성하고 이 분들과 정기적으로 만나면서 논문의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들이 중요합니다. Dissertation committee 는 Chair 한 분 (주로 지도교수님)과 committee member 두 분내지 세 분으로 구성되는데, 이 분들이 학위 논문을 심사하게 됩니다.


저는 원래 박사 학위 논문에서도 조정을 다루고 싶었습니다. 이전의 연구를 통해 가졌던 "조정인이 어느 정도까지 합의 과정에서 개입해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을 계속 이어가고 싶었습니다. 경험적 연구방법론을 사용하여 연구를 설계하다보니, 이 주제는 "한국의 조정에서 조정인이 개입하는 정도"를 측정하거나 "조정인의 개입 정도와 사건의 당사자들이 만족하는 정도의 상관 관계" 또는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과 같이 조정인이 적극적을 개입하였을 때 당사자들이 조정에 대해 어떠한 perception을 갖게되는지" 등의 내용으로 뻗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려움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조정인이 개입하는 정도" 나 "당사자들의 만족도"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교수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조정 기일에 관찰자로 참여하거나 조정기일의 transcript 을 구하는 것을 통해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을 것이라는 데까지는 발전시켰지만, 결국, 한국의 현실에서 그러한 데이터를 구하는 것은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완전한 외부자인 제가 실제의 조정 기일에 참여할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고, 한국의 경우에는 조정 기일의 transcript 이 있는지 여부와 일반 대중에 공개가 되는지 여부조차 당시에는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데이터를 구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연구를 설계해서 한국으로 field research 를 갔는데, 기대와 다르게 접근이 어렵게되면 낭패이기 때문에 저는 조정에서 소송으로 연구주제를 변경하게 됩니다.


또한, 이러한 주제는 학술지 논문으로 쓰기에는 적당할지 몰라도 박사 학위 논문과 같이 어느 정도의 규모가 요구되는 연구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돌아보면, 학술지 논문으로 쓰기에는 좋은 주제인데, 학위 논문으로 하기에는 맞지 않았던 관심사들이 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사정에서 저의 조정 연구는 박사 과정 1년차에 잠시 중단된 채, 저는 소송에서의 procedural due process라는 주제로 3년 정도 열심히 공부하고 한국에서의 field research를 거친 후 박사 학위 논문을 마무리하여 2013년 여름에 졸업을 하게 됩니다.



6. “Languages of Procedural Due Process: How does procedural due process address preclusive effect of mediation in Korea?” (Presentation, Law and Society Association Annual Meeting - Seattle)(2015)


박사과정 공부를 하면서 알게 된 학회 중에 Law and Society Association 이라는 학회가 있습니다. 한국의 관점에서는 법사회학회와 같은데, 한국과 다르게 법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거의 모든 학자들이 모이는 학회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 학회에서 1년에 한 번 씩 annual meeting 을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연세대학교 로스쿨의 이철우 교수님을 필두로 많은 교수님들과 신진학자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철우 교수님은 이 학회의 아시아 지부에서 중책을 맡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침 이 학회의 2015년 연례 모임이 시애틀에서 개최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실 미국의 다른 주나 중남미의 각 도시에서 이 학회의 연례모임이 열릴 때는 참석하는 것이 부담이 될텐데, 시애틀에서 열린다고 하니 꼭 참석할 터였습니다. 5월 28일부터 31일까지 열리는 이 연례 모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몇 달 전에 참가 신청을 하고 paper proposal 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저는 박사과정 졸업 후에 계속 이어서 연구를 하고 싶었던 조정 관련 주제를 이 기회에 다시 다뤄보기로 했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LL.M Paper 의 연구에 이어서 한국에서의 절자적 적법절차라는 관점에서 한국의 조정에 대해 연구해 보기로 결정하고 그 내용으로 proposal 을 제출했습니다. 이 proposal 이 통과되어 "Civil Justice System" 이라는 세션에서 발표한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Speaking for Yourself: Communication in Dispute Resolution Systems Around the Globe" 라는 세션에서는 토론자 (discussant)로 선정되었습니다. 갑자기 부담이 더해졌습니다.


5월 28일에 되어 연례 모임이개최되었습니다. (이 연례 모임에 대한 안내는 아래의 링크를 통해 지금도 접근이 가능합니다)

https://www.lawandsociety.org/Seattle2015/docs/2015_Program.pdf


시애틀 도심에 위치한 Westin Hotel 에서 열린 이 연례 모임은 그 규모가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3일 동안 발표가 이어졌고,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열리는 세션의 수만해도 30개가 넘었습니다. 160 페이지의 브로셔를 보면서 어떤 세션에 들어가야 하나 즐겁고도 어려운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동안 공부했던 책이나 논문의 저자들을 실제로 만나게 되는 흥분되는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발표한 주제는, 조정과 중재에 있어서 절차적 적법절차 (procedural due process)가 요구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펴 본 후에, 한국의 법원에서 절차적 적법절차가 인정되는지를 살펴보고, 그에 맞추어 조정제도가 운영되고 있는지를 검토했습니다.


우선, 절차적 적법절차라는 개념은 역사적인 대헌장 (마그나 카르타)에서에서부터 요구되는 적법절차 (Due process of law) 중에서 절차적인 부분에 대한 요구입니다. 정부가 어떤 사람의 생명이나 재산 등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하기 전에 따라야만 하는 절차들이 있으며, 그 절차를 따르지 않았을 때에는 해당 처분 등이 단지 그 이유에서 효력이 상실한다는 헌법상의 요구입니다.


그 구체적인 예로는,


적절한 통지 (Adequate notice);

당사자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권리 (Opportunity to be heard);

중립적인 결정권자 (Unbiased tribunal);

반대신문권의 보장 (Right to call and cross examine witness);

증거만에 기초한 판단 (Decision only based on the evidence presented);

강제적인 증거 조사 (Compulsory evidence taking);

판단의 이유에 대한 설명 (Statement of reason of decision);

판단에 대해 법원의 검토할 수 있을 것 (Judicial review)


등이 그 동안 논의되어 왔는데, 이 예들은 계속 더해질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러한 절차에 대한 헌법 상의 요구는 "법적 판단에 있어서의 형식성" (Formality of Adjudication) 이라는 개념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이 요구는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는데, ADR과 관련해서는 조정과 중재를 구별하는 기준이 된다는 것이 제 논문의 포인트였습니다. 중재 판정은 이러한 형식성을 갖추어야 하는 반면, 조정은 이러한 형식성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각은 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갖는 중재 판정이 내려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적법절차의 요구가 충족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 판례법의 내용에 기초했습니다.


이에 기초하여, 먼저 한국의 법원에서 적법절차라는 개념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즐거운 작업이 있었습니다. 저의 예상과 다르게 적법절차라는 개념은 1987년에 한국의 헌법에 규정되었고, 한국의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결에서도 적법절차의 요구를 구체화하는 내용들을 설시하고 있었습니다. 적법적차를 논하고 있는 여러 판결문에서 미국에서 논의되는 것과 같은 "청문의 기회 보장" 및 "형식을 갖춘 심리" 등의 표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언어들이 제 발표문의 제목이 된 "Languages of procedural due process" 였습니다. 즉, 한국의 헌법에서도 절차적 적법절차가 요구된다는 점입니다.


다음 단계를 한국의 조정 제도가 이러한 헌법 상의 적법절차의 요구를 따르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전에 고민하였던 '조정의 효력'이라는 주제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법원에 의한 조정과 몇몇 행정부처 산하의 조정위원회에 의한 조정에는 판결과 동일한 효력이 부여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조정 절차들이 적법절차가 요구하는 formality of adjudication 을 갖추고 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명백하게, 조정에서는 이러한 형식성이 요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괴리 - 절차적 적법절차가 인정되면서도 조정 제도의 운영은 이에 따르지 않는 - 를 지적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었습니다.


저의 결론은,

적법절차가 요구하는 형식성을 갖추지 못한 조정 절차의 결과물에 법원의 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부여하는 것은 적법절차에 반하는 것이며,

같은 차원에서, 절차법적으로, 조정을 진행하다가 중재로 전환을 하여 판정을 내려주는 것과 같이 이해될 수 있는 우리 민사조정법 상의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은, 그 절차가 중재로 전환된 이후에 중재에 걸맞는 형식성을 갖춘 별도의 절차를 진행하지 않은 채 조정 단계를 거치면서 때 논의 된 내용만을 근거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어서, 이 역시 적법절차의 요구를 따르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었던 점은, 이 주제를 발표한 후에 이어진 질의 및 토론 시간에 많은 분들이 먼저는 한국의 헌법과 판결문에 적법절차라는 개념이 사용되고 있다는 점에 흥미를 보인 후에, 이러한 괴리에 대해 공감을 한 반면에, 일본에서 오신 교수님들이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여 소송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의견을 피력했다는 점입니다. "조정에 갈음하는 결정"이라는 제도가 일본의 민사조정법을 통해 도입되었음을 떠올리며 씁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발표 이후에, 30페이지 정도가 된 논문 초안 (발표를 위해 미리 제출해야 하는)을 가다듬에 학술지에 투고를 하고 싶었는데, 일을 하다보니 지금까지도 실행하지 못한 계획이 되었습니다.



7.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 관찰할 수 있었던 조정의 활용 (2015 - 2018)

미국에서 변호사로 일을 하면서는 이민법을 담당했고, 제가 진행을 한 이민법 케이스들이 재판까지 가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제가 직접 조정을 경험할 기회는 없었습니다. (이민법의 영역에서는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여 이민법 상의 신청에 대한 거절 처분을 다투거나 이민국의 절차 운영의 적법성을 다투는 집단 소송 등이 소송의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다만, 회사의 다른 변호사들이 진행을 해 온 민사소송 케이스들을 관찰할 기회가 있었는데, 조정은 생각보다 많이 활용되지 않았습니다. 중재의 경우에는, 중재 회부에 적극적인 워싱턴 주의 경우 소송 목적의 가액이 $15,000 이하인 경우에는 일방 당사자가 중재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의무적으로 중재 절차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이를 Mandatory Arbitration (MAR) 이라고 합니다. 보통 교통사고로 인한 개인 상해 케이스의 경우에 이러한 중재절차를 통해 사건이 해결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습니다.


이에 반해, 조정은 판사들이 적극적으로 권유하기는 하고, 법원의 스케줄 상 조정 등을 통해 합의를 시도하는 기간이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게 많이 활용되지는 않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희 사무실의 한 소송 변호사는 본인이 조정인 훈련을 받은 분이어서 적극적으로 조정을 활용하려고 노력은 하는데, 상대방이 응하지 않아서 조정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조정으로 가도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다시 소송으로 돌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케이스들을 보면서 한 가지 배울 수 있었던 조정의 기능은 "Reality check" 이었습니다. 소송의 경우 당사자들의 감정이 상할대로 상한 상태이고, 서로가 자신들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에, 소송의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조정을 거치게 되면, 당사자들이 꼭 참석을 해야 하고, 해당 당사자와 상대방을 오가면서 합의를 돕는 조정인이 때로는 "이러한 케이스가 소송으로 가면 대략 이 정도의 결과가 나올 수 있다"라는 조언을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당사자들이 이러한 조언을 듣게되는 경우 자신의 기대치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저희 사무실이 경험했던 조정의 경우, 주로 판사로 일을 하시다가 은퇴한 분들이 조정인이 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러할 경우 그러한 조언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8. 맺으며 - 앞으로 하고 싶은 연구들 (2019)

여기까지 긴 글을 통해 제가 그 동안 걸어보았던 조정과 관련된 연구를 정리해 보았습니다.


2015년에 발표한 발표문을 논문으로 정리해서 투고하는 일 이외에,


제가 지금 해보고 싶은 연구는, 한국의 조정 절차에서 조정인이 개입하는 정도와 그에 대한 조정 당사자의 반응 등에 대한 실증적 연구입니다. 제가 처음에 박사학위논문 연구로 진행하고 싶었지만 데이터를 구하기 어려워 포기했던 그 주제입니다. 한국에서 필드에서 일하시는 분들과의 협동연구를 통해서 이 연구를 진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또 하나, 보고 싶은 변화는, 한국에서 조정인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이용되는 것입니다. 그 동안 한국에서의 조정에 대한 관심이 늘고, 많은 전문가들이 조정위언으로 활발하게 참여하시는 것을 봅니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친한 선배님 안지현 변호사님은 상임조정위원이 되셨고, 지난 주에 이메일로 받은 한국 민사소송법 학회의 소식지에 따르면, 두 분의 전현직 민사소송 교수님들이 상임조정위원으로 위촉이 되었다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전문가들이 조정에 참여하게 되는 바람직한 변화 속에서 이 분들이 경험과 지혜를 모아서 더 많은 전문가들을 조정인으로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한국의 현실에서 있었거나 있을법한 사안을 예시로 제시하여 각기 다른 역할을 경험하게 하는 role play를 해보고, 조정인 경험이 많으신 분들이 코멘트를 해주는 방식이면 재미있고 좋은 배움이 될 것 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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