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igation & Civil Procedure Studies (2)
지난 글에서는 Hot Coffee라는 영화를 통해, 미국 사회에서 70년대부터 시작된 "소송이 지나치게 많아서 심각한 문제라는 인식"이 어떠한 모습으로 미디어를 통해 일반 시민들에게 전달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을 널리 퍼뜨리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이를 통해 일반 시민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을 보다 어렵게 만들고 손해배상액을 줄이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고치는 결과를 얻으려 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은 "Tort reform movement"라는 이름으로 진행되어왔으며 지금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Civil Jusice System 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너무나도 정직하게 정치적 의견과 연결이 되는데, 공화당으로 대변되는 보수세력은 Tort reform을 계속 이어가려고 하고 민주당은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비중을 두어, 소송을 통한 권리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것에 반대합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이 Tort reform을 비롯한 소송 제도 개혁에 앞장선 인물이라면 오바마 대통령은 줄기차게 이에 반대해 온 인물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러한 구별은 미 연방 대법원의 대법관들 사이에서도 나타나는데, 그들이 지지해 온 정치적 가치에 따라 뚜렷하게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소송 폭발의 사회"에 대한 이러한 우려가 미국의 법제도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러한 우려 및 Tort reform 에 대한 담론은, "Hot Coffee"에서 드러나는 것과 같은 법 인식의 왜곡과 같은 문제점이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에서인지, 사회 전박적으로 공감을 얻게 되고 그에 따른 변화들을 낳게 됩니다. 제 생각으로는, 그러한 사회적 공감은 아래의 세 가지 변화들을 이루어냈습니다. 그 변화로는 조정 및 중재 등 소송이 아닌 분쟁해결방법 (Alternative Dispute Resolution; ADR)에 대한 강조; 일본법 중심의 비교법 연구의 확산; 및 입법 및 연방 대법원 판결을 통한 민사소송제도의 부분적이고 점차적인 개혁을 들 수 있습니다.
1. 소송 대체 분쟁해결 방안 (ADR)의 발전
"Why is Everyone suing Everyone?"와 같은 다소 자극적인 신문 기사 제목에서도 잘 읽을 수 있는 미국 사회의 소송 폭발에 대한 우려는 조정(mediation)이나 중재(arbitration) 등 법원에서의 재판이 아닌 다른 수단의 분쟁해결 방안을 통해 민사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이어졌습니다. 소송이 너무 많아서 당사자들 (특히 피고)의 소송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니까 소송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해 분쟁을 해결하자는 의도 인 것이지요.
조정이나 중재 모두 법원이 아닌 곳에서 법관이 아닌 제3자의 도움을 얻어 당사자들끼리 분쟁을 해결하는 절차인데, 조정은 그 중립적 제3자 (mediator)가 여러 가지 기법으로 당사자들 사이의 대화를 돕와서 그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합의안을 도출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중재는 간략화된 재판으로서, 재판과 유사하게 제3자 (arbitrator) 앞에서 사실적인 주장과 법률적 주장을 하면 그 중재인 (판사가 아닌 변호사 등 기타 각 분야의 전문가)이 판정을 내려주는 절차입니다. 조정은 결국 당사자들 사이의 합의이므로 창의적인 해결방안이 도출될 수 있고, 그를 통해 당사자들의 악화된 관계가 회복될 가능성이 있다는 장점이 있고, 중재는 재판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서 해당 사건에 대한 결론이 정해지지만, 재판에 비해 시간과 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미국에서 중재와 조정은 활발하게 사용되는 편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많은 나라들이 미국의 모델을 참고로 하여 이러한 소송 외의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들을 발전시켜가고 있는데, 미국에서 이러한 대체적 분쟁해결 수단 발전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것이 저명한 법학자인 Roscoe Pound 에 의해 주도된 1976의 "Pound Conference"입니다. Pound는 "The causes and remedies of popular dissatisfaction with the administration of justice in the US"라는 글을 통해 미국 민사소송 시스템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 및 불안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조정이나 중재의 적극적인 활용을 강조하였습니다. 이 컨퍼런스는 많은 법률가들의 공감과 호응을 얻었고, 이를 기점으로 조정 등의 대체적 분쟁해결 방안의 실질적인 활용을 위한 노력이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많은 계약서에 분쟁이 있을 경우에는 소송에 앞서서 중재를 거친다는 조항이 추가되기 시작하였고, 법원에서도 최대한 조정 및 중재를 통해 분쟁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ADR의 활용이 미국 사회의 소송 감소 효과를 가져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적어도 법원으로 들어가게 되는 사건의 수를 줄인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는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2. 일본법 비교연구의 시작
미국 민사소송 제도에 대한 위기의식은 경제발전 정도에 비해 소송이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진 나라인 일본과 일본 민사소송 제도에 대한 관심과 일본법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비교법 연구의 붐을 가져왔습니다.
미국의 사회의 제도는 너무나도 특별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의 제도에서 배울 것이 별로 없다는 "American Exceptionalism" 은 미국의 학자들이 비교법 연구에 대해 갖는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많은 나라들이 다른 나라의 제도를 참고해서 자신의 제도를 개선해가려는 노력을 중요하게 생각함에 반해, 미국은 특이하리만치 다른 나라의 제도에 대한 관심이 적은 나라입니다. 약간 오만하다고 여겨질 정도이지요.
이러한 일반적인 흐름에 대한 거의 유일한 예외가 70년대 및 80년대에 유행한 일본법 연구 붐입니다. 그 당시 패전의 폐허를 회복하고 오히려 놀라운 경제 성장을 보인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에 대한 관심도 컸지만, 법학자들 사이에서 그렇게 발전된 사회에서 소송이 놀라우리만치 적다는 인식이 공유되어 있어서이기도 했습니다. 미국 민사소송 제도는 이렇게 엉망인데 일본은 적절한 숫자의 소송만이 법원에서 해결되어지고 있다는 일종의 동경이 밑바탕에 깔린 것이지요. ("왜 일본에서는 소송이 적은가"는 미국에서의 일본법 연구의 핵심을 이루는 테마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글을 통해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때 젊은 법률가나 학자였던 미국인들이 일본어를 매우고 일본에 가서 일을 하면서 일본법을 배우고 연구하기를 시작합니다. 이러한 움직임이 미국 비교법 연구의 본격적인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학자들이 50~60대가 되면서 현재 비교법 연구의 주류를 이룹니다. 미국에서의 외국법에 대한 연구 중 유일하게 일본법 연구는 일본인이나 일본 교포들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혈연으로는 일본과 거의 관련이 없는 미국인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는 특이점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학자들을 몇 명만 꼽자면 John Haley, J. Mark Remseyer, Daniel Foote, Michael Young, Veronica Taylor 등을 들 수 있는데, 이들 모두가 일본어를 유창하게 말하는 백인들입니다. 이와 같이 현재에도 미국에서의 비교법 연구는 일본법 연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고, 그 시작은 미국의 민사소송 제도에 대한 우려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계속되는 민사소송 제도의 개혁
미국의 민사소송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이 민사소송법 자체에 대한 개혁으로 이어졌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렇게 70~80년대의 Tort reform 담론의 연장선 상에서 이루어진 민사소송 제도의 개혁안들은 "근거 없는 소송 (Frivolous lawsuit)"을 걸러내는 장치들을 강화하는 방향의 민사소송 제도 개혁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주로 미 연방 대법원의 판결을 통해 이루어져 왔는데, 친기업 성향이 강하다고 평가받는 Robert Court에 의해 가장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개혁안들은 개인의 법원에 대한 접근권 (Access to Justice)을 필연적으로 제한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지금까지도 민사소송법 학자들에게 많은 논쟁거리를 제공해 왔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상당히 많은 수의 부분적인 민사소송법 개혁이 끊임없이 이어져 왔는데, 이 중 중요한 몇 가지 만을 간단히 살피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3-1. 사실심 생략 판결 (Summary Judgment) 기준의 강화 (1986년)
Summary Judgment는 법정에서 변론 (trial)을 열만 한 주요한 사실에 대한 의미 있는 법적인 쟁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trial을 거치지 않고 사건을 그대로 종결시키는 절차를 말합니다. 보통은 피고가 Motion for summary judgment (사실심 생략 판결 신청)을 하면 담당 법관이 그 신청의 가부를 결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과연 어떠한 기준에 따라 "trial을 열 가치가 있는 사건인지" 여부를 결정하는지가 중요한 문제로 떠오르게 됩니다.
1986년 이전까지 미 연방 대법원은 summary judgment를 신청하는 당사자가 어떠한 이유에서 그 분쟁이 trial을 할만한 다툼이 존재하지 않는 것인지를 입증해야 한다는 기준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에 이례적으로 3개의 판결(Matsushita Electric Industrial Co. v. Zenith Radio Corp., Anderson v. Liberty Lobby, Inc., 및 Celotex Corp. v. Catrett)을 통해 그러한 입증책임을 원고에게 전가시킵니다. 즉, 피고가 summary judgment 신청을 하면 그 피고는 아무런 입증책임을 지지 않고 오히려 원고가 자신의 소송이 어떠한 이유에서 trial을 거쳐야 되는지를 밝히도록 변경되었습니다. 이에 더하여, 입증의 정도도 강화되었는데, 단순히 trial을 할만한 사실적 다툼이 있다는 것을 넘어서 합리적인 배심원이라면 자신(원고)에게 유리한 판결을 할 것임을 입증해야 하도록 그 입증의 정도도 강화되었습니다.
1986년의 이러한 세 판결 (일명 "Celetex 3부작")을 통해 Summary judgment는 많은 소송의 주요 무대를 trial에서 summary judgment로 옮기게 되었으며, 그 결과 많은 소송들이 summary judgment 단계에서 종결되게 됩니다.
3-2. 소장 각하 심사 기준 (Pleading standard)의 강화 (2008년 및 2010년)
Frivolous lawsuit 에 대한 우려는 소장 각하를 강화하는 방향으로도 이어졌습니다. 소장이 각하되지 않으려면 소장에 어떠한 사항을 얼마만큼 자세히 적어야 하는가를 정하는 것이 pleading standard인데, 이에 대해 미 연방 대법원은 연방 민사소송법(Federal Rules of Civil Procedure; FRCP)이 1932년에 제정된 이래 줄곧 "Notice pleading"이라는 기준을 취해왔습니다. 이에 따르면, 원고는 "피고가 소장을 받아보았을 때 어떠한 사건에 대해 원고가 소송을 제기했는지 알 수 있는" 정도로 사건을 특정하여 적으면 됩니다.
그러나 2008년에 연방 대법원은 이러한 기준을 뒤집게 됩니다. Bell Atlantic Corp. v. Twombly 의 판결을 통해 대법원은 소장에 기재되어야 하는 사항이 단순히 notice를 주는 정도로는 부족하고 그 소송이 받아들여질 만한 ("plausible") 것이라는 것을 보일 정도로 자세한 사실관계 및 증거를 기재하여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새로운 강화된 기준을 강제합니다. 미 연방 대법원의 이러한 입장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으나 (거의 모든 미국의 민사소송법 학자들이 이 판결에 대한 논문을 썼을 정도로), 2010년에 Ashcroft v. Iqbal 판결을 통해 미 연방 대법원의 확고한 새 기준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이를 통해 얼마나 많은 소송이 소장 심사 단계에서 각하됐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소 제기 단계에 사실 관계에 접근할 소송 자원이 없는 원고들이 소송수행에 상당한 어려움을 갖게 된 것은 지명한 사실입니다.
3-3. Class action에서의 집단 인증 (Class certification) 기준의 강화 (2011년)
Class action 은 해당 소송의 집단(class)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직접 소송에 참여하지 않더라도 소송의 결과로 이루어지는 배상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 소송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피해자임을 주장하는 원고들의 집단이 class action 의 class로 인증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집단 인증입니다.
미 연방 대법원은 2011년의 Wal-Mart Stores, Inc. v. Dukes 판결을 통해 집단 인증을 받기 위해 요구되는 "소송이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되어야 한다"는 요건에 대한 기준을 강화하였는데, 집단 구성원 모두에게 공통성(예를 들어, 고용주의 성차별적 취급을 받았다는 것을 이유로 제기된 소송에서 여성이라는 지위)은 이 존재한다는 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에 의미 있는 차별점(예를 들어, 같은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직위가 무엇이었으며 어떠한 내용의 차별을 받았는지 (승진인지 임금인지 등))이 존재한다면 이를 집단소송으로 다룰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힙니다. 이러한 강화된 기준에 따르면 대규모의 원고가 동시에 집단소송을 진행하기가 실질적으로 어려워지게 되고, 결국 해당 소송의 월마트 여직원들도 집단소송의 집단으로 인증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이러한 집단 인증에 있어서의 기준 변화 역시 무분별한 집단소송의 남용을 경계하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민사소송 제도의 변화로 볼 수 있고, 이를 통해 이제는 대규모의 집단소송의 진행이 상당히 어려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글은 다소 길었습니다.
그마만큼 미국 사회에서 소송이 너무 많다는 인식,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근거 없는 소송을 제기해서 미국의 소송제도를 남용하고 있다는 인식이 이미 미국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Hot Coffee 영화를 소개한 앞의 글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이러한 인식들이 과연 적절한 근거와 관찰에 기초한 것인가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분명 존재하며, 이번 글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러한 인식들에 기초한 제도의 개혁 중에는 국민들의 재판 청구권을 심각하게 제한하는 내용의 변화도 있습니다.
다음 글은 Hot Coffee 시리즈의 마지막 글로서, 과연 미국 사회에 진짜로 쓸데없는 소송이 심각하게 많은 것인가에 대해, 제가 변호사로 일하면서 경험한 내용에 기초한 지극히 개인적인 관찰을 나눠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