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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Kyoo Lee Nov 30. 2020

최고의 남편

사무엘상 1장 8절

사무엘상 1장 8절


성경에 많은 부부들이 나옵니다. 부부가 함께 선한 일을 해서 칭찬을 받는 경우도 있고, 부부가 함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아내에게 남편에서 잘 대해주는 사람도 있고,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 삶처럼 갖가지 인간들이 등장합니다.


제가 오늘 나누고 싶은 사무엘상 1장 8절에 등장하는 엘가나라고 하는 사람은 성경 속의 그 다양한 군상 중에서도 참 인상 깊을 정도의 멋진 사람, 멋진 남편으로 남아있습니다.


그의 아내 이름은 한나인데, 한나가 먹지도 않으면서 울고 있는 이유는, 자녀가 없어서 가뜩이나 마음이 힘든데, 엘가나의 다른 아내(사무엘상의 무대인 기원전 이스라엘에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이며 자식이 있었던 '부닌나'라는 사람이 괴롭히고 업신여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사무엘상 1장 2절, 5절, 6절). 더더군다나 이런 일이 해마다 계속되었다고 하네요(사무엘상 1장 7절).


그런 아내에게 엘가나가 말합니다.


"왜 그렇게 울고 있소? 왜 먹지 않고 있소? 왜 그렇게 슬퍼하고만 있소?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않소?"


"아들이 없다고 슬퍼하지 마세요. 언젠가 생기지 않겠어요?"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없어도 나는 괜찮습니다."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에게 아이가 있고 없고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좋은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나요?" 저에게는 이렇게 느껴졌습니다.

 

한나와의 사이에 아들이 한 명도 없어서 오래 기다리고 마음 아팠을 사람이, 열 명의 아들보다 그 부부의 사이좋음이 더 낫지 않냐고 합니다. 본인도 아이를 간절히 원하지만, 부부 두 사람의 좋은 관계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마음이 담긴 그 고백이 참 좋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비교해 보면 훨씬 더 자녀를 (그것도 아들을) 많이 가지는 것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였을 거라는 상상을 해보면, 엘가나의 이 고백이 얼마나 쉽지 않고 생각해기조차 어려웠을지 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엘가나의 이 말이 참 특이하다 싶다가도 멋지고 훌륭한 위로의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부부에게도 아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단지 그 이유 때문에 엘가나의 이 말이 더 멋지게 들렸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엘가나와 한나, 이 부부가 겪었던 마음이 어떤 마음일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나 할까요.


아내는 생일이나 기념일에 본인이 받고 싶은 선물에 대한 명확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그때그때 가지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오히려 조금 더 쉬울 텐데, "긴 카드"라고 합니다. 카드 가득 채워서 긴 메세지를 써 주기를 원하는거죠. 하여, 기념일이 되면 저는 작문에 대한 고민에 빠집니다. 결혼 10주년 때 A4 용지 두 장 만한 카드를 발견하고는 아내가 기뻐할 생각에 기쁘면서도 동시에 채우느라 애먹었던? 기억도 나네요. ㅎㅎ 그렇게 '긴 카드'를 쓸 때 종종 성경 말씀을 인용하기도 하는데요, 아내가 농담처럼 말하듯이 카드 공간을 메꾸려고 굳이 긴 성경 구절을 인용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침 올해 결혼기념일 카드를 쓸 때, 이 엘가나의 위로의 말이 생각이 나서 카드에 옮겨 적었습니다. 그리고는 덧붙였습니다 (아내의 동의를 얻어 카드의 한 부분을 인용합니다):


"열 아들보다 나은 남편이어서, 둘 사이의 관계가 기쁘고 재밌고 단단하고 또 온전히 만족스러워서, 다른 결핍이 있어도 여전히 만족하고 감사한 삶을 살 수 있지 않냐는 이 고백이 참 담백하고 진중하고 멋져 보여서, 나도 그렇게 따라 살고 싶었거든. 때마침 우리가 코로나로 인해 새로운 결핍의 시대를 살고 있네.

우리의 anniversary를 맞이하며 다시 한번 기도해. 지금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결핍에, 또 우리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맞이하게 될 많은 아쉬움과 부러움 들을 경험하더라도, 우리의 단단하고 견고한 동반이 너에게 또 나에게 위로가 되기를.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피할 곳이 되었으면."  


아내에게 쓴 카드를 이렇게 공개하는 이유는, 이 카드를 쓸 때의 제 마음에 엘가나의 고백을 거듭 읽으며 생각하며 생긴 감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순간들이 있습니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지나치는 어느 문장도 어느 말도 그 순간만큼은 쿵! 하며 무겁게 다가오는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올해 결혼기념일 카드를 쓰는 그 순간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모두 결핍이 있습니다. 남들이 어렵지 않게 가지게 된 것 같은 것들이 나에게만 없는 것 같고. 남들은 여전히 잘 유지하고 있어보이는 것들을 나만 중간에 잃게 된 것 같고. 아마도 모두에게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그리고 거의 모든 경우 나만이 정확하게 알고 있는, "나만의 혹은 우리만의 결핍"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끝없는 부족함 속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엘가나의 이 고백은, 이 부분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성경 말씀은, 그 힘들고 끝이 없는 각자의 결핍을 어떻게 견디고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조금은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결핍에도 불구하고, 이미 우리에게 허락된 부부, 가족, 친구, 공동체와의 단단하고 따뜻한 관계와 사이좋음이 어쩌면 우리로 하여금 각자의 결핍을 조금 더 잘 견뎌낼 수 있게 해주리라고 믿어봅니다.




엘가나가 이렇게 멋진 고백을 했는데, 그저 듣기 좋으라는 말 한마디를 한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감사하게도, 계속 이어진 그 부부의 이야기는 엘가나가 립서비스만 하는 사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어서 슬픈 마음을 하나님 앞에 토로합니다.


그리고는 결국 감사하게도 아이를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는 아이의 이름을 "사무엘"이라고 짓게 되는데, "여호와께 구해 얻은 아들"이라는 뜻이라 합니다 (사무엘상 1장 20절).


반전은 그다음에 일어납니다. 어느 날 한나가 엘가나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가 젖을 떼면 제가 데려가 아이를 여호와께 바치고 일생 동안 그곳에서 살게 하려고 합니다" (사무엘상 1장 22절). 그렇게 힘들게 아프게 얻은 귀하고 귀한 아들을 젖을 떼자마다 품 안에서 떼어서, 당시의 성직자인 제사장이 살던 예배 장소에 가서 살게 하겠다고 합니다.      


이때 엘가나가 두 번째 멋진 말을 합니다.


"당신 생각에 그것이 최선이라면 그렇게 하시오. 그럼 당신은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여기 있으시오. 그저 여호와께서 당신의 말대로 이루시기를 바라오." (사무엘상 1장 23절)


이 말을 통해, 엘가나는 8절의 고백이 순간을 위한 립서비스가 아니라 아내를 진정으로 위하는 성품에서 우러나온 말임을 입증하고, 동시에 "넘사벽"이 됩니다.


결정의 주도권과 선호의 주도권을 배우자에게 저리 순순하게 양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저에게는, 지금은 엄두도 안 나고, 계속 마음에 품고 따라가고 싶은 목표일 뿐입니다. 하지만, 종종 내 고집 때문에 아내와 티격태격하는 저로서는 갈 길이 상당히 멀어 보입니다.   


성경을 계속 읽다 보면 생각이 바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이 엘가나가, 따라가고 배우고 싶은 최고의 남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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