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여, 나뉘어라

by 진경


가로등 아래

빛은 사물보다 먼저 떨어진다

사물들은 그 뒤를 따라

조심스럽게 모습을 갖춘다


이것이 순서이다

빛, 그림자, 사물

사물은 항상 마지막이다


전화벨이 울렸을 때

나는 수화기를 들지 않았다

벨소리는 아홉 번 울렸고

나는 아홉 번 세었다


열 번째는 오지 않았다


문 앞에 서서

나는 노크하지 않았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등의 뼈가 희게 떠올랐다


3초


그것은 시간이 아니라

거리였다


복도 끝 비상구등이 깜박였다

EXIT라는 글자가

켜졌다 꺼졌다


벽의 금은

누가 그었는지 알 수 없다

금을 따라 걸으면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여기요


기사는 웃었다


신발끈이 풀려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출발 전부터였는지

도착 후였는지


나는 묶지 않았다


현관문을 열 때

손잡이가 차갑다

여름인데도

손잡이는 항상 차갑다


밤은 나뉘지 않았다


대신

내가 나뉘었다


문을 열고 들어간 나와

문 밖에 남은 나


둘 다 진짜이다

둘 다 거짓이다


부엌 싱크대에

설거지하지 않은 컵 하나

커피 자국이 링처럼 남아 있다


컵을 씻지 않았다


이틀 전 아침의 증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밤이여, 나뉘어라—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간청도 아니었다


그저

밤이 나뉘지 않는다는

사실에 대한

확인이었다


창문을 연다

바람이 들어온다

커튼이 흔들린다


사물들이 제자리에서

미세하게 움직인다


이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불을 끈다


어둠 속에서

컵의 커피 자국이

희미하게 빛난다


그것이

내가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남아 있다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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