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의 문장

by 진경


자정이 지나자

세계는 동시에 한 살을 먹었다

축사는 미리 인쇄되어 있었고

약속만 미래형으로 남았다


광장에 사람은 없었지만

표어는 바람 속에 남아 펄럭였다

어제의 분노와 오늘의 기대가

같은 천 위에서 겹쳤다


신문은 새로운 해를 말했으나

통계의 곡선은 작년을 따랐다

불평등은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책임은 수동태였다


나는 이 문장들을 배열하면서

같은 문법을 쓰고 있다

진단이라 불리는

또 하나의 거리


법은 그대로 있었고

법을 읽는 사람도 그대로였다

‘누가 읽는가’라는 질문은

법을 읽는 일에 포함되지 않았다


국경은 자정에도 닫혀 있었고

자본은 시차 없이

모든 곳에서 아침을 맞았다


변화란 이름은

가장 빠른 것들의 몫이었다


우리는 새해를 맞이한다고 말했지만

실은 기존의 질서에 다시 서명했다

서명란은 비어 있었고

동의는 묵시적이었다


기록한다는 것이

이미 어떤 동의인지 나는 모른다

쓴다는 것이

어떤 자리에서 가능한지도


호명되지 않은 목소리는

기록에서 빠졌다

그렇다면 이 시는

누구의 목소리를 담고 있는가


기록 가능한 것만

다시 기록하는 것은 아닌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는 말이

또 하나의 착시는 아닌가


정오가 되었을 때

국기는 같은 높이로 올랐다

그 아래의 삶들은

서로 다른 무게로 흔들렸다


같은 문장이

다른 몸을 통과했다

같은 날짜가

다른 시간으로 살아졌다


1월 1일은

혁명이 아니라 연장이다

지금까지의 문장이

줄 바꿈 없이 넘어간 것


그러나 줄 바꿈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이미 줄 바꿈을 상상하는 일이다

연장이라 부르는 순간

끝을 전제하고 있다


끝내지 않은 문장들 사이에서

우리는 산다

그것은 체념이 아니라

문장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일이다


다음 문장을 쓸 수 있는가

누가 쓸 것인가

어떤 문법으로


질문을 유지한다는 것은

답을 미루는 게 아니라

질문 자체가 누구의 언어인지

묻는 일이다


1월 1일

나는 여전히 이 문장들을 배열한다

관찰자의 자리에서

그 자리 역시

허용된 위치일지 모른다는 것을 안 채

쓴다


이것이 최선인지

최선을 가장한 타협인지

혹은

남은 제스처인지


확신 없이

문장은 이어진다


1월 1일은 지나간다

새해는 오지 않았지만

시간은 흘렀다


우리는 그 시간 속에서

계속 질문할 것이다

질문이 답이 되지 못하더라도

질문 없이는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기 때문에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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