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너의 이름으로
나크바(Nakba), 쫓겨난 자들의 첫 노래
1948년, 올리브 나무는 불탔고
아이들의 웃음은 먼지 속에 꺼졌다.
검은 연기 속에서
70만의 이름이 땅에서 밀려나고
이방인의 깃발이 그 집 위에 꽂혔다.
그들은 알려주지 않았다—왜 우리여야 했는가.
그들은 외쳤다—“이 땅은 약속되었노라.”
그 약속은 한쪽의 칼로,
다른 쪽의 심장을 가른 것이었다.
쫓겨난 자들의 침묵은 노래가 되었고,
그 노래는 뿌리 뽑힌 무화과나무처럼
모든 국경에서 떨고 있었다.
바리케이드 위 다윗의 별, 억압의 불빛
그 별은 더 이상 별이 아니었다.
밤하늘의 기도이기를 멈춘 채
검문소 위로, 철조망 너머로
강철처럼 내려앉은 억압의 문장.
시오니즘은 유배된 구약의 예언을
정복의 언어로 바꾸었다.
“우리가 선택받았노라”는 선민의 자의식은
저항하는 민중의 숨결을 질식시켰다.
바리케이드 위에서 다윗의 별은
눈을 감지 않는 감시의 불빛,
자유를 묻어버리는 상징이었다.
그 별빛 아래, 돌을 든 소년의 손은
신의 얼굴 대신 전차의 강철을 보았다.
탄화된 지도, 식민의 밑그림
지도는 불에 그을려 다시 그려졌다.
1917년, 펜 한 자루가 대지를 찢었다—
발포어 선언, 그 말의 칼날은
팔레스타인의 살을 종잇장처럼 잘랐다.
정착촌은 사막을 옮긴 것이 아니라
한 민족의 삶터를 덮쳐 지운 것이었고,
분할은 공유가 아닌 분열의 이름이었다.
식민은 끝나지 않았다.
단지 말이 바뀌었을 뿐.
이제는 신의 약속이,
탱크와 법령과 철책으로 이루어진다.
웨스트뱅크, 군화 아래의 학교
책가방 위로 쿵쿵 울리는 군화 발소리.
검문소는 아이들의 첫 배움터가 되었고,
학교는 방패가 되었다.
칠판 대신 방패 너머의 풍경이 교과서였다.
시오니즘의 교리는 택함이 아니라
점령을 훈육하는 무기였다.
그 무기는 자라나는 언어를 절단했다.
아이들은 수학 대신 투석의 각도를 익혔다.
역사 대신 조상의 무덤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
그들의 수업은 포위된 미래에 대한 예습이었다.
물과 전기, 생존의 권리를 잃다
선택받았다는 그들의 신은
물줄기를 막고, 전선을 끊고,
빛과 생명을 다치지 않은 채 쥐어짰다.
가자지구—
그 이름은 이제 감옥의 은유가 아닌
실제 감옥의 이름이다.
하늘은 열렸지만
출구는 사라진 땅.
의약품은 들지 못하고,
잉크보다 피가 먼저 마른 곳.
어떤 축복이 생존을 끊고
어떤 신념이 아이들의 굶주림을
신의 뜻이라 말하는가.
세계는 침묵하고, 우리는 외친다
대사관들은 고개를 돌렸고
안보리는 안대를 쓰고 귀를 막았다.
평화는 외교적 언어 속에서 녹아 사라지고
분노는 검열되었으며
절규는 번역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외쳤고, 외친다.
이 울림이 제국의 회랑에서 반향 되지 않더라도,
거리의 돌담과 낙서와
피로 물든 깃발 위에 새겨질 것이다.
“우리는 수치가 아니라 역사다.
우리는 피해자가 아니라 민중이다.”
돌을 드는 손은 비명이다
그 돌은 무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잊힌 말, 막힌 목소리,
말살된 이름을 되찾으려는
마지막 언어였다.
인티파다—폭동이 아니라 탄생,
절망에서 솟구친 목소리의 첫울음이었다.
손에 쥔 돌멩이는 선언이었고,
그 선언은 말보다 멀리, 총보다 깊이
심장을 겨냥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돌을 들어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들었다.
그리고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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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작으로 이 시를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