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너의 이름으로
신의 이름, 점령의 언어
그 이름으로 시작된 것은
창조가 아니라 추방이었다.
성지라 불리던 땅은
경계와 소유의 사슬로 가려졌고,
경배는 점령의 양식이 되었다.
아브라함의 후예를 자처한 이들은
칼 위에 축복을 얹었고,
선택받은 이들의 행진은
타인의 삶을 뿌리 뽑는 귀환이었다.
율법은 검집 속에서 번역되었고,
신의 침묵은 명령이 되었으며,
피로 쓴 주석이
구약의 뒤를 이었다.
은폐된 하늘, 신성한 무관심
시나이의 바람은 기억하지 않는다.
하갈의 목마름도,
이스마엘의 울음도.
가자에서는 하늘이 열릴수록
지붕이 무너졌다.
기도는 전파를 타지 못했고,
하늘의 눈은
표적 좌표로만 응답했다.
사브라와 샤틸라의 밤—
골목의 피는 마르지 않았고,
라디오의 명령은
사망자 명단보다 길었다.
그 누구도
멈추지 않았다.
그 누구도
물으려 하지 않았다.
피는 말 대신 뿌려졌고,
슬픔은 구덩이마다 묻혔다.
통곡의 벽은 여전히 서 있었지만
아이의 무덤엔 그림자 하나 내리지 않았다.
디아스포라, 뒤틀린 귀향
떠돌던 이들에게 땅은 축복이었지만
귀환은 대지의 제단 위에
타인의 삶을 바치는 의식이 되었다.
그들의 디아스포라는
연민에서 권리로,
권리에서 특권으로,
그리고 폭력으로 진화했다.
유랑의 기억은
다시 돌아온 자들의 손에서
추방의 명분으로 재편되었다.
피로 적신 귀향은
기억을 묻고,
경계를 올리고,
이방인을 만들어
다시 추방했다.
더는 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들의 신은
폭격을 축복으로 바꾸었고,
국경선을 분할의 칼로 바꾸었으며,
무기의 윤리로 거룩함을 탈취했다.
우리는 경멸도 두려움도 없이
그들과 그들의 신을 생각한다.
가자에서 태어난 아이의 울음이
신의 이름보다 가벼운 것이냐.
한 번도 떠난 적 없는 사람들에게
왜 귀환할 권리는 없느냐.
점령자들이여, 그대는
신의 이름으로 무엇을 허락받았는가.
우리는 신의 택함보다
살아남은 자들의 이름을 부른다—
아흐마드, 라이야, 나세르.
그리고
매장되지 못한 시신 위에
작은 시를 놓는다.
팔레스타인은 지도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이 깨진 신의 거울 앞에 서서,
피로 쓰인 언어로
우리를 말하고 있다.
#眞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