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레스타인, 너의 이름으로
우리는 살아야겠다
폭격은 도시를 파괴했지만
봄을 멈추진 못했다.
무너진 담벼락 사이,
노란 개망초가 피었고
붉은 양귀비는 포탄 자국을 덮었다.
가자의 시장은 다시 열리고
어머니들은 잿더미 속에서
반죽을 빚었다.
죽음이 떠돌던 골목마다
아이들은 축구공을 굴렸다.
살아남는 것은 선택이 아니다.
존엄은 필연이었기에, 우리는
울음 속에서도 웃었고
파괴 속에서도 사랑했다.
모래가 바람을 처음 품던 날부터,
언제나 이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포위된 봄에도,
우리는 살아야겠다.
저항은 나무처럼 자라고
저항은 총이 아니라,
나무처럼 자라는 것이다.
뿌리를 뽑힐수록 깊어지고
가지가 꺾일수록
하늘을 더 오래 기억하는 것이다.
자이툰 나무 한 그루를 심는 일—
그것은 전선에서의 투쟁만큼
위대한 선언.
그 나무는 배움으로 자랐다.
학교가 무너지면
돌담에 글을 쓰고,
정전 속에서도
달빛 아래 책을 펼쳤다.
책을 읽는 것이 죄가 된 도시에서
아이들은 자유를 암송하고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노래를
눈빛으로 외웠다.
문맹이 아닌 망각이 진짜 적이라면
기억하는 것 자체가
가장 오래된 저항이다.
사랑은 폐허를 지난다
검은 연기 속에서도
사랑은 금지되지 않았다.
둘만의 하늘은 파편으로 찢겼지만,
손을 맞잡는 일은
단 한 번도 검문받지 않았다.
허물어진 벽 뒤에서
첫 키스를 나누었고,
공습 사이의 정적을 틈타
약속을 새겼다.
지하에서 자란 꽃은
햇빛을 보지 못했으나
빛나는 법을 배웠다.
이 폐허의 땅에서도
사랑은 언어가 되었고,
언어는 다시
저항이 되었다.
그리고 삶은 이어진다.
존엄과 연대는 경계를 넘어
팔레스타인이 외치자
세계가 답했다.
산티아고의 광장에서
베를린의 다리 위에서
파리의 지하철역,
런던의 박람회장 앞에서.
더 이상 우리는
피해자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역사를 말하고,
삶을 선택하며,
보편 윤리의 증인이 된다.
자유는 소유물이 아니며
정의는 독점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태어나는 자마다
가지는 자격이다.
침묵은 깨졌고
검열은 뚫렸다.
연대는 만국의 언어이며
존엄은 국경 앞에 멈추지 않는다
하여, 힘주어 말한다
“우리는 함께 보고 있다.
그리고 기억한다.”
우리가 부르는 불멸의 노래로
불타는 별은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늘의 불완전한 문장,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이름이다.
팔레스타인은
폐허 위에 지어진 말이며,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의
끝없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 불멸을 쓴다.
돌에, 피에, 언어에
그리고 기억에.
하여 자유는,
언젠가 지도를 갖게 되리라.
그러나 지금은,
이 불완전한 밤을 찢고
노래하리라.
“우리는 여기 있다.
울지 않고 뛰는 심장으로,
끝내 사랑하는 인간으로,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에필로그: 우리 아직 여기에 있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이름을 부르고
태어난 자들의 이름을 새긴다.
우리는
돌을 든다—
복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존재를 위해.
우리는
깃발을 든다—
국경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을 위해.
우리는
기억하고,
말하고,
기다린다.
그리고
끝내, 오게 하리라.
그날엔
울음이 언어가 아니고
사랑이 통제되지 않으며
자유가
허가받지 않아도 되는
하루를.
#眞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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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로 시를 마무리 짓는다.
함께 기억하기 위해 썼다.
기억은 고통을 마주하는 예의이며,
가장 쉬운 윤리의 실천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