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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12. 2021

지방 출신 서울 거주 중인 사회초년생의 자격지심

남의 입을 빌려 01

 저는 유튜버 신사임당님의 채널에 올라오는 영상을 즐겨보는 편입니다. 특히 부동산에 대해 자주 이야기해주시는 너나위님이 등장하는 아는 선배 영상을 즐겨봅니다. 제가 최근에 본 영상은 '목표를 이루고 싶은 20대 청년에게 전하는 5가지 조언'이었습니다.

출처: 유튜브 채널 '신사임당 클립'


 영상을 보면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24세 대학생의 사연이 등장합니다. 사연자는 걱정이 많지만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열심히 꿈꾸고 실천하고 있는 분이었고, 사연은 신사임당님과 너나위님에게 그런 청년이 나아갈 수 있는 로드맵에 대해 가이드를 부탁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여기에 대해 너나위님이 여러 알찬 조언들과 더불어 지방에서 올라왔다고 자격지심을 갖지 말고 당당하게 살라는 말씀을 해주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떠오른 게 있어 이렇게 글을 써보게 되었습니다.


 지방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서울에 가면 성공의 길이 열리는 것 같은, 때로는 서울에 가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성공인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이야기를 듣곤 했을 것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지방 거점 도시의 옆옆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학창시절에 선생님들과 면담을 하면 '말은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서울로 보내라'라는 말이 자주 인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리숙하게도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면 탄탄대로가 펼쳐질 줄 알았습니다.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오히려 그때부터가 시작이었지요. 똑똑한 사람들이 그득그득한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서울에 정착하고,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 집을 사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때부터 걱정도 되고, 이런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예쁘게 빛나는 한강 위를 지나며 왜 저기 서울에는 내 집이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연자분은 희망적으로 사연을 보내주셨지만, 같은 조건을 갖고 절망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종종 만날 수 있습니다. 앞선 글에서도 가끔 이야기했지만, 서울에 부모님 소유의 집이 있는 것만으로도 금수저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를 해낸 거다.

 저는 서울로 온 것이 인생의 성공이라고, 또는 성공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서울이 서열화되어버린 지역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는 도시인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여기에 가보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내 가족과 친구가 있는 익숙한 곳을 떠나기까지 깊이 고민하며 새로운 도전을 하는 과정에서 성장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움직이고 변화하는 것이 머물러 있는 것보다 어렵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어려운 것을 한 번 해본 사람을 제주로 보내진 말이 아닌 우물 밖으로 벗어난 개구리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우물 밖으로 벗어난 개구리가 제주로 보내진 말보다 더 도전적이었을 것입니다. 개구리는 원래 살고 있던 곳에서 다른 곳까지 수동적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벗어났기' 때문에 그 태도를 통해 쌓은 경험치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진득하게 앉아 공부를 하고서 원하는 성적을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성실이라는 재능과 노력이라는 경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 세 명이 걸어가면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내용으로라도 배울 점이 최소 한 가지는 있습니다. 이처럼 서울로 오는 과정에서도 배운 것, 얻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최소한 근성이나 생활력 정도는 있지 않을까요?


 둘째, 시야를 넓힐 수 있다.

 우물 밖으로 벗어난 개구리가 대단한 이유는 좁은 세상도 알고, 더 큰 세상도 알고, 다른 세상도 알기 때문입니다. 내가 속해있던 곳을 집합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곳을 여집합으로 생각한다면, 집합에서 여집합까지 겪어본 개구리는 전체집합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관통하는 흐름을 파악한 개구리는 더 많은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극도로 줌인이 되어 있는 시야를 조금만 조절해서 줌아웃해보면 '아, 맞다! 내가 렌즈를 들이대고 있는 이 세상에서 저만큼은 아무것도 아니었지!'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사실은 저 바깥에는 더 큰 세상이 있기도 하고요.

 

 셋째, 쉬어갈 곳, 새롭게 시작할 곳이 있는 거다.

 서울에 살지 않는 것이 마치 도태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제 글 중 하나에는 '지방에 (집을) 사느니 죽겠다'는 댓글이 달린 적도 있었습니다. 각종 매체에서는 이제 더 이상 서울이 아니면 기회가 없다고 말합니다. 회사에서도 본사는 서울에 있고 지사는 서울을 제외한 곳들에 있으니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하는 본사에 가야, 즉 서울에 가야 내가 인정을 받는 거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세상은 서울에 집착하고 있고 서울에 집착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신 없이 나를 볶아대고 옭아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런 것도 필요 없고 서울이라는 공간과 그것이 상징하는 일상에 지쳐 벗어나고자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한숨 돌리고 쉴 수 있는 곳,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 있는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마음을 놓아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그곳을 꼭 고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서울이나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를 종종 지방으로 묶곤 하는데, 그 지방 중 어딜 가도 상관없을 것 같습니다. 마음만 정해진다면 한 번 다른 곳으로 이동해본 사람이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서울이 우물이 될 수도 있다는 자존감과 의지가 있다면 어디서든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는 아직 그 정도는 못 되었지만요.


 위에서 언급한 이유들로 지금 꿈꾸는 것들을 갖지 못할 테니 자기합리화를 하고 포기하자고 꼬드기는 것은 아닙니다. 용의 꼬리가  바에는 뱀의 머리가 되자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요(저는 고등학교 입시   말을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말을 매우 싫어합니다). 오히려 이 모든 생각에서 자유로워지는 게 가장 좋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너무 힘이  , 내가 앞으로 해낼  있는 것보다 지금까지 가지지 못한 것이  눈에 밟힐  위로 거리 정도는 있으면 좋을  같아서 끄적여봤습니다.  스스로에게 '잘하고 있어,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자'라고 전하는 말이기도 하고요. 뭐든 여유가 있어야  발전할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누구나 성공의 기준이 있고, 그걸로 평생을 살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만,  언제든  기준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용의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와 용이 애타게 찾으러 다니는 여의주가   있을지도요. 제주로  말도 한라봉 알레르기가 나면 고향으로 돌아가서 건강하게 살아야 하고, 우물을 벗어난 개구리도 '애걔   없네!' 싶으면 본인이 정복할  있는, 본인의 자리가 남아 있는 세상으로 돌아갈 선택지 정도는 갖고 있어도 되지 않을까요?


 온전하게 건강한 마음을 온전히 갖추려면 한참 멀었겠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너나위님 말씀처럼 당당하게 살아가겠다고 제 자신과 약속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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