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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Apr 09. 2021

내가 비싼 월세를 충당하려고 하는 행동

"이렇게 열심히 살면 비싼 월세도 과분하지 않은 걸?"


비싼 월세를 내는 대가



 저는 보증금 3000만 원에 월세 73만 원(관리비 포함) 짜리 빌라에 살고 있습니다. 강남에 있는 회사 근처라서 비싸기도 하고, 꽤 넓기도 합니다. 발코니도 있거든요. 비싼 월세를 내는 대가로 회사와 떨어진 좁은 집에서 사는 것보다 삶의 질이 훨씬 높습니다. 걸어서 10분 만에 집과 회사를 오갈 수 있고,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 비롯되는 체력 소모를 줄일 수 있어서 그것만으로도 참 좋지만, 뭔가 제 스스로가 그 정도를 누릴 만하다고 생각할 만한 것을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위치, 분위기, 구조나 면적, 친절한 집주인과 관리인 덕분에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싶은데, 뭔가 거기에서 나오는 시간과 여유를 잘 쓰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다만 꼭 뭔가를 해야겠다는 강박이 들어서 애가 탄다거나, 해내지 못했을 때 속상해지는 마음은 아닙니다. 오히려 즐겁고 건설적인 방향인 것 같습니다.



 돈으로 시간을 샀다



 사실 교통비나 관리비를 따져보면 월세가 싼 곳에 사는 것에 비해 대단히 비싼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절대적인 금액만 계산해보면 싼 곳에 비해 대략적으로 월에 15만 원 정도를 더 낸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왔다 갔다 하루에 한 시간에서 두 시간 정도를 15만 원으로 산 셈이라고 계산합니다. 돈으로 시간을 플렉스 하다니, 왠지 있어 보입니다. 교통비는 대중교통을 조금이라도 이용해야 하는 곳에 비해 5만 원정도 아끼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제외하고 10만 원을 어떻게 알차게 채우고 있는지 생각해봤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게 사는 것은 물론이고 좀 더 계산 가능한 걸로요. 물론 의도적으로 계산을 마친 후에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아닙니다. 확보된 시간과 여유를 이용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거나 이런저런 활동들을 해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을 할 뿐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살면 비싼 월세도 과분하지 않은 걸?"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것들



 가장 쉽고 간단하게 계산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운동입니다. 주변 시세를 보니 체육관에 가면 한 달에 3만 원 정도가 나갈 것 같습니다. 저는 그 대신 홈트를 하고 있습니다. 시국이 시국인지라 어쩔 수 없이 홈트를 하는 것도 있지만 홈트도 강하게 하면 운동 효과가 나타납니다. 저녁에는 아무래도 갑작스러운 야근이나 약속이 생길 확률이 높아 일주일에 세 번 이상 아침 운동을 합니다. 6시 30분에 일어나 한 시간 정도 고강도 타바타 운동을 하거나 미세먼지가 좋음 이상인 날에는 나가서 뛰고 옵니다. 운동을 마친 후에는 샤워를 하고, 아침을 챙겨 먹고 회사에 갑니다. 먹는 것을 포기하지 못해서 살이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건강해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리고 아침에 무언가 해내고 있다는 것만으로 하루의 중심이 잡히고 자아효능감이 올라갑니다. 저에게는 아침에 운동을 하는 것, 아니, 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일이라 이 정도면 3만 원은 채웠다고 생각해도 될 것 같습니다.


 회사에서 지원을 받는 해외 대학 온라인 강의 프로그램도 신청했습니다. 수강료를 결제한 내역을 보니 한화로 25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었습니다. 수강 기간은 4개월가량이지만 월세 2년 치에 나눠 녹인다고 하면 월에 10만 원 정도가 되는 금액입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하루에 3-4시간 정도 강의를 듣습니다. 사실 2시간 정도면 되는데 저는 영어를 못해서 강의 내용을 읽고 듣고, 모르는 것이나 조금이라도 오역의 여지가 있는 것은 번역기를 돌리느라 남들보다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그래도 뭔가 배운다는 것은 항상 의미와 재미가 있는 일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1만 원 권을 받습니다. 저희 팀에서는 업무와 관련된 기사나 포스트를 스크랩해서 팀 카톡방에 공유하고, 일주일치를 모아 익명 투표를 진행하여 가장 많은 표를 받은 사람이 회사 전체에 해당 스크랩을 공유하는 주간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선정된 팀원에게는 스타벅스 기프트카드 1만 원권을 상품으로 줍니다. 다들 좋은 읽을거리, 볼거리를 자주 공유해주기 때문에 보통 돌아가면서 한 번씩은 카드를 받습니다. 그래서 저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1만 원짜리 유가증권을 받고 있습니다. 저는 커피를 잘 마시지 않아서 이것저것 모으니 스타벅스 앱에 등록한 금액이 10만 원쯤 되는데, 간식 먹을 때나 바깥에서 시간을 때울 때, 업무를 진행하면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작게나마 성의를 표할 때 쏠쏠하게 쓰입니다.


 비싼 월세는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월세 내야 하니 돈을 아끼자'는 아닙니다. 전반적인 일상에 만족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통해 결핍에서 비롯되는 보복성 소비를 줄일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는 계획 없이 사고 싶은 것을 다 사면서 씀씀이를 무한정으로 키웠는데, 지금은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체크카드 사용을 늘려서 계획적으로 지출하고, 잔액을 확인해가며 합리적인 선에서 지출을 합니다. 지출 규모를 월평균 20-30만 원은 줄였습니다. 물론 앞으로가 더 중요하지만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정도면 액면 금액은 충분히 채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어떻게 생각해보면 다른 곳에 살면서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 같긴 하지만, 시간과 체력, 컨디션을 확보함으로써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의지를 즐거운 마음으로 발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것들



 좀 더 다른 이야기, 계산할 수 없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곳에 살면서 취미를 몇 개 갖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산책을 좋아하는 편인데, 산책은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인프라를 가장 쉽게 누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생각 없이 산책을 할 때가 많지만 이곳에서는 생각을 하면서 산책을 하는 날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아파트 평균 가격을 상향 견인하고 있는 동네를 돌아다니며 분위기를 살피고 느낍니다. 백문이불여일견이라 했던 말을 실감합니다. 직접 목격하는 순간 경험한 것이 되고, 경험하게 된 것은 나의 관심이 쏠립니다. 신문 기사에 동네의 소식이 나오면 그래도 한 번은 보게 되는 법이니 거기에서 파생되는 다른 기사들도 보게 되고, 사회적, 경제적 이슈에도 관심을 갖게 되니 영상도 찾아보게 되고,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생각을 정리해보는 과정도 거치고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사실 회사 근처에서 살게 됨으로써 얻은 여유와 생산성에 대한 의지, 거기에 오래된 꿈이 한 번에 합쳐진 일이었습니다. 항상 말로만 하고 싶다고 했던 것을 이제는 진짜로 하고 있는데, 시행착오를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즐겁습니다. 퇴근 후에 글을 쓰거나 주말에 글을 쓰면서 '내가 이 집에 오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나는 '주중에 일했으니 쉬어야지, 주중에 일하려면 쉬어야지'라고 합리화하며 하루를 보내고, 주중에는 헛되이 보낸 주말을 후회하고 있겠지'라는 생각을 합니다.



행동하기 나름



 그래서 저는 비싼 월세를 살면서도 월세가 아깝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큰 금액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집주인 분께 월세를 이체할 때마다 '어이구...'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고, 같은 금액을 다른 것에 썼다면 아까웠겠지만 이 집에 쓰는 것은 아깝지 않습니다. 하다 못해 아침에 일어날 때에도 '아... 오늘 오전 반차 쓸까....' 싶지만(아침에 그 생각이 안 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회사에서 이렇게 가까운 데에 살다니 너무 좋다'는 생각이 저절로 따라붙습니다. 그만큼 즐겁고 행복하게 안락하게 잘 살고 있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그런 기분을 제 선에서 좀 더 의미 있는 일들로 가치 있게 풀어내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고 기특해하기도 합니다. 돈을 아끼기 위한 다른 대안도 많겠지만 이렇게 살아보는 것도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뭐든 경험해봐야 깨닫게 되는 법이니까요. 이것도 2년에서 3년 정도밖에 할 수 없는 일일 텐데요. 큰 창으로 해가 깊숙이 들어오는 곳의 평화로움에, 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발코니의 너그러운 존재감에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앞으로 원룸이 아닌 방 두세 개의 아파트나 주택으로 집을 옮겨 나가더라도, 마냥 싼 곳에서 살기보다 내가 원하는 더 좋은 곳에 살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생각해보기도 하고, 가치 있는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어떤 것들이 좋은지, 더 필요한지도 정리해봅니다.


 행동하기 나름입니다. 물론 저렴한 월세를 이용해서 충분히 절약하고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은 더 멋진 일이고, 비싼 월세에 살면서 일상을 기분 좋게 보내거나 아끼는 시간을 나에게 다시 투자하는 것도 좋은 일입니다. 어떤 상황이든 그 안에서 비롯되는 감정과 의미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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