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난 기질이 지랄 맞음
파트너사와의 미팅을 기다리느라 시간을 때울 곳을 찾다가 시원한 서점에 들어섰다. 책꽂이와 가판대에는 공감 에세이 또는 위로의 글을 담은 에세이가 즐비하다. 그게 아니라면 주식, 부동산, 자기 계발 정도? 요즘 책들은 디자인이 참 이쁘고 감성적이다. 아무 생각 없이 펼쳐본 감성 에세이는 가볍게 읽기에도 좋고, 의외의 위안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책들을 즐겨보지도 않고, 구매한 적도 없고, 빌려 읽은 적도 없다. 나에게 그런 책들은 무더위를 해결하기 위해 먹는 아이스크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스크림은 아주 차갑고 달콤하지만 나는 곧 다시 타는 듯한 더위를 느낀다. 머릿속 계절은 여전히 뙤약볕 아래다. 생각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될 뿐이다.
이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하나는 주어진 상황에서 지금 당장의 내 모습이 나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어요'라는 글을 보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아요. 아, 이렇게 의심하는 것 자체가 잘하고 있는 건가요?'라는 생각이 든다. 자존감이 높은 건지 자존심이 센 건지 둘 다인 건지 모르겠다.
다른 하나의 이유는 스스로에게 당근보다는 채찍을 가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누군가가 나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것을 필요로 할 때가 있고, 거기에 상당한 위안을 받는다. 하지만 그 말을 듣고 마음에 켜켜이 쌓여있던 눈물을 쏟아내고 나면, 다시 냉정 모드가 된다. '그래서, 이걸로 나는 나에게 만족하나? 다른 사람들이 괜찮다고 해서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욕심을 내려놓으면 편하다는 것도 알고, 현재 내 상태에 만족하려면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을 뽀개고 '진짜? 진짜로 이대로 만족할 거야?'라는 생각이 머리를 들이미는데, 그걸 막을 재간이 없다. 타고난 기질이 그런 것 같다.
자꾸 반격을 준비하는 마음을 지켜보며 생각했다. '난 참 지랄맞구나'. 남의 말보다는 나의 마음을 수용하는 편이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억지로 위로를 받은 척하지 않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 이 욕심쟁이야. 어디까지 욕심 낼 건데? 그런 거에 비해서 얼마나 게으른 상태로 살아갈 건데? 그래서 어쩔 건데에에에에엑!' 어떤 날은 '그래도 잘하고 있지, 이만하면 지금 내 길에서는 기특한 수준이지'라고 토닥토닥하다가도, 조금만 오글거리면 학을 떼고, 팩트 폭행을 일삼아도 괜찮은 절친한 자매나 친구처럼, 나와 나는 서로 투닥거리는 게 일상인 것이다.
아침에 벌떡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주말에는 맛있는 거라도 직접 요리를 해서 잘 챙겨 먹이고, 어디에 어떻게 쓰일지 모를 강의도 듣고, 재테크 공부도 하고, 매일매일 '오늘은 뭘로 나 자신을 기분 좋게 해 준담' 생각하고, '나는 도대체 누구일까, 뭘 잘할까, 이 추상적인 것을 어떻게 실체화할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다. 언제 이것이 생산적인 무언가로 나타날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더위에 먹는 아이스크림은 맛있다. 더워 죽겠는데 어차피 곧 다시 더워질 테니 아이스크림을 안 먹겠다고 똥고집을 부리는 것은 멍청한 행동이다. 종종 좋은 글을 보고 위안과 깨달음을 얻는다. 꽤 시간이 지났지만 좋아하는 가수 에일리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글이 나는 좋았다. 누구나 자기만의 시간이 있다는 말, 그 말은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문제였던 조급함을 덜어줬다. 아니, 그 글을 읽고서야 나에게 있는 조급함이 문제라는 걸 인지하게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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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릿속은 언제까지 이렇게 덥기만 할까?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생각보다는 빨리 와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