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생각한다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이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직장생활 3년 차의 병일지도 모르겠지만, 업무를 잘하고 있느냐고 물어보는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내 삶을 경영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 건지, 내 자신에게 떳떳할 만큼 잘하고 있는 건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잘한다는 건 뭘까?
세상은 사람이든 상황이든 그것을 수치화하고 서열화하는 것을 좋아한다. 잘한다는 것 역시 그렇다. 그 숫자의 꼭대기에 있을 때 그것을 잘한 것으로 보노라고 나와 타인은 합의를 해왔다. 나는 그렇게 등수를 매기고, 성적을 매기던 '학교'라는 공간의 관성에서 이제야 조금 벗어난 것 같다. 회사에는 연말 평가가 있으니 성적을 매기는 제도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왠지 성적에 대한 감흥이 예전 같지는 않다. 뭐든 대충 하는 걸 싫어하고 웬만하면 최선을 다해 최고의 성과를 내고 싶어 하는 기질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할 뿐, 회사에서 받을 성적에 예민해서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남이 주는 성적이 인생에서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는 비로소 삶을 조금 멀리서 볼 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착각일지도 모른다. 라고 한 발 빼본다. 오늘 나의 무드는 혼란과 불확실함이다.
태도
사실 성적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성적이 나쁜 사람이 되려 틀에 박힌 생각에서 벗어나 멋진 도전을 해낼 수 있기 때문에 맞는 말이기도 하고, 성적을 잘 받아본 사람은 어떤 경지에 이르기까지 엄청난 노력을 했다는 뜻이고, 그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 꽤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맞지 않는 말이기도 하다. 천재는 논의에서 제외한다. 샘나니까.
숫자나 알파벳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없다. 남의 시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본 사람과 노력해보고 성취해본 사람이 있을 뿐이다. 내가 가진 생각과 태도가 중요할 따름이다.
그렇다면 '나는 잘하고 있는 걸까?'
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는 나는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가졌을까. 적어도 내 삶에 무책임하지는 않지 않을까? 아직까지는 형태가 바뀌지 못한 열등감과 위기의식이 언제나와 같은 성실함, 차오르는 결단력과 만나 불꽃같은 무언가로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사춘기
나는 스물여덟인데, 열여덟 때도 모르고 지나갔던 사춘기가 제대로 각을 잡고 온 것 같다. 사춘기는 왜 사춘기이지? 봄을 생각하는 시기구나. 응, 나는 다가올 봄을 생각하고 있는 거구나. 조금 느리더라도 봄이 오고 있구나. 오고야 말도록 만들어야겠구나.
고민 한 건 해결했으니 꿀잠을 자야겠다.
이미지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