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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May 02. 2022

누구나 나만의 시계를 돌려야 한다

쳇바퀴가 아니라

회사를 다닌다는 건 다른 사람의 시계를 돌리는 것과 같다. 처음에는 그 시계가 우리의 시계라고 생각했지만 회사를 다닐수록 내가 돌리고 있는 건 우리의 시계가 아니라 쳇바퀴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리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시계의 부품으로 돌고 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소모된다. 그래서 그것과는 별개로 내 시계가 필요했다. 회사의 시계가 따라가는 시간이 내 시간이기도 한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좋은 대로 생각하면 된다. 그러나 나의 시간은 독립적으로 흘러가야 한다.


입사를 하고 내 시간이 소멸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서는 불안했다. 처음 몇 년 동안에는 방법은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내 시계를 못 찾겠다며 징징거렸다. 이대로 살다가는 우울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냥 내가 하기 귀찮고 지금 이 현실이 싫어서 되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시간을 긁어모았다. 하루의 3분의 1이라도 내 시계를 돌리는 데에 힘을 썼더니 마음이 안정되어갔다. 일시정지 상태로 방치되어 있던 내 시계의 초침이 다시 똑딱이기 시작했다.


이직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더 재미난 일을 할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도 딱히 없지만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를 어쩔 수 없이 사랑한다. 그래서 매일같이 출근을 하면서 내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나는 나를 더 사랑한다. 회사는 내가 다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지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회사도 사랑할 이유가 없다. 내가 회사의 일부가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회사가 내 전부가 되는 것은 원치 않는다.


가만히 있는 건 아무것도 안 되거나 퇴보하는 길이라는 게 자명했다. 그래서 출근 전, 퇴근 후에 주식 공부, 부동산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운이 좋아서 출판 계약도 하게 되었다. 내 시간이 차곡차곡 흘러갔고, 그러면서 약간의 성취를 할 수 있었다. 자존감도 차곡차곡 쌓여갔다. 모순적이게도 나만의 시계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회사의 시계를 더 잘 돌릴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생기가 돌았고, 자유로워졌고, 여유가 생겼다. 하루를 예전보다 더 꽉꽉 채워서 쓰는데도 힘들지 않았다. 내가 하고 있는 것, 만나는 사람들에게 감사했다. 다른 일을 해보니 회사라는 울타리가 제법 안정적인 거라는 것, 회사를 통해 배운 것도 꽤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른 일을 해보니 회사만 다니는 나의 시야가 제한되어 있었다는 것도, 세상엔 이렇게 재밌는 일이 많았지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밸런스가 맞아가는 기분이었다.


회사에서 좀 못하면 내 일을 좀 잘하지, 뭐. 내 일을 잘 못하면 회사에서 좀 잘하지, 뭐. 배웠다 생각하지, 뭐. 여기에서 배운 건 저기에, 저기에서 배운 건 여기에 도움이 되겠지, 뭐.


그렇게 돌아가기 시작한 시계는 내 삶을 독립적으로 만들어주었고, 내가 내 일상을 긍정하게 했다. 삐걱댈지라도 나의 독립된 시간이 있어야 내가 존재할 수 있다. 나만의 시계를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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