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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15. 2022

돈이 왜 안 중요한데?

엄마의 경제교육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집에서 배우는 것 사이에 괴리가 생기는 게 하나 있었다. 돈에 관한 것이었다.


학교에서 돈이 중요하다고 알려주는 선생님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돈을 밝히면 안 된다'라든지, '세상에는 돈보다 고귀한 가치가 많다'라든지, '돈은 중요한 게 아니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세뇌당했다. 특히 아예 하나의 과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도덕'에서는 애초에 돈과 도덕을 서로 배치되는 것으로 전제하고 있었다. 도덕 교과서에 나오는 위인들은 자신의 신념을 갖고 행동했으며, 그 신념은 꼭 '돈을 마다해야만' 이룰 수 있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이 얼마나 중요했으면 그런 한 마디 한 마디에 '돈'이 비교 대상이 되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 돈은 다소 아련하게(?) 번 돈이어야 하는 듯했다. 힘을 들여서, 하기 싫은 걸 해서, 몸을 써서, 그걸 쳇바퀴처럼 반복해서 벌어야 하는 것이다. 노동의 끝에 와인보다는 소주를 마셔야 하는 것 같달까? 예를 들자면 로또를 구매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확률이 낮아서 배팅할 만한 게 못된다'라기보다는 '노동 없는 소득을 원하는 것은 벌 받을 일이다'라는 뉘앙스로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학교에서의 교육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돈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이 왜 안 중요하냐고 했다(당연한 이야기지만 부당하게 벌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너를 공부시키기 위해서도 돈이 필요하다 했다. 그리고 그 말이 맞았다. 나는 돈 먹는 하마였다. 먹여야 하지, 입혀야 하지, 학교에 보내야 하지, 학원에 보내야 하지,... 내가 공부해야 하는 이유 역시 잘 먹고 잘 살기 위함이며, 그러려면 돈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는 돈이 없으면 비굴해진다고 했다. 잘 살기 위해서는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알아야 하고, 돈을 터부시 하지 않고 잘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의 투자성향은 굉장히 보수적이었고, 주 활동무대(?)가 광역시 미만의 중소도시인 게 아쉽긴 하지만, 엄마는 감당할 만하다 생각하는 정도의 대출을 일으켜 집을 샀다. 2천만 원 안팎의 빌라를 사서 세를 받거나 직접 살았다. 그때는 아빠가 다른 직장보다 오랜 기간 재직하고 있을 때여서 도움이 된 부분이 있었겠지만 어쨌든 나는 엄마가 쉽지 않은 살림에 집을 사서 세를 받고 있다는 게 내심 자랑스럽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엄마는 돈이 중요하다는 관념을 그저 머릿속에만 갖고 있지 않았다. 공부를 했고, 실행으로 옮겼다. 나는 스물다섯에 첫 집을 샀고(6천만 원대이지만), 그건 누가 뭐래도 엄마의 덕이 컸는데, 엄마는 나처럼 엄마의 엄마(외할머니)가 그런 이야기를 해준 것도 아니었고, 가족들은 되려 집을 사면 큰일 난다고 만류하던 상황에서 주변에 부동산으로 성공한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오로지 책과 블로그로 공부를 해서 내 집 마련을 했다. 어떻게 그렇게 했냐고 물어보면, 항상 똑같은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계산기 두드려보면 답 나오는 거였는데?"


그 후 엄마는 나에게 지속적으로 우리집의 자산 현황을 알려주며 네 집 하나는 꼭 가져야 한다고 세뇌를 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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