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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13. 2022

엄마처럼 안 살았으면 좋겠어

그래도 내겐 엄마가 영웅이다

"난 그렇게는 못 살아"

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성정에 맞지 않은 것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싫다'와 '너무 대단해서 그렇게 살 수 없다'라는 뜻이다. 보통은 둘 중 하나의 뜻을 가지겠지만, 두 가지를 다 충족하는 이가 있다. 엄마다.


엄마가 자주 했던 말 중에 하나는, 내가 엄마처럼 안 살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돈에 쫓기거나, 돈에 쫓겨서 나의 소망을 포기한다거나, 그래서 도망치듯 결혼한다거나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엄마는 늘 나 스스로가 잘나야 한다며, '네 공부는 어떻게든 시켜줄 거니까, 걱정 말고 공부만 해'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공부만 해'라고 할 만큼 공부를 잘하진 않았다. 학문의 길을 걷거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가의 길을 가지 않은 나는 한때는 엄마가 지원해준 물심양면의 것들을 누리는 게 참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했다.


딸을 대하는 시대적 태도가 비교적 억압적이었을 때, 엄마는 비상한 머리를 갖고도(내가 보기에 엄마는 비상하다) 원하는 배움과 일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 분위기를 벗어나 도망친 곳이 엄마가 나를 맞이한 가정이었지만, 내가 아는 대로 그것은 녹록지 않았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말라는 말을 듣는 게 좋지는 않았다. 나의 소중한 엄마인데, 엄마의 삶을 연민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엄마에게는 나 말고는 딱히 희망이랄 게 없어 보이긴 했다. 나는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무엇도 되어있지 않고 뭐든 될 수 있다는 이유로 희망적인 존재였다. 나는 많은 것을 누렸다. 어린 시절 배를 곯는 일도 없었고, 남이 버린 것을 주워다가 쓴 적도 없다. 맛있는 걸 먹었고, 좋은 것, 새것을 누렸다. 엄마는 자식이 둘도 아닌 하나인데, 다 해주고 싶다며 좋은 것은 다 내게 줬다. 다만 내가 누리는 것들 뒤에 엄마가 잔뜩 끌어안고 있는 것들이 있었다. 향후 몇 년 간은 안정적으로 나에게 돈을 들여야 하는 것에 비해 불안정한 수입, 전혀 준비되지 않은 엄마, 아빠의 노후가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었고, 나는 오늘을 위해 최선을 다해 살고 있는 엄마가 힘들어 보였다. 그래도 엄마는 늘 온몸으로 사랑해주고 있었다. '너 때문에 힘들게 산다'가 아니라 '네가 잘 살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산다'라고 말해줬다. 나는 그것을 잘 알았다.


엄마한테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돌아가겠느냐고 물어본다. 그냥 막연한 질문이다. 엄마가 10대, 20대 초반이던 때로 돌아갈 수 있으면 하고 싶은 게 있지 않을까? 그런데 엄마는 '아니. 엄마는 다시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 살 거 같아. 그 과정에서 너에게 상처를 준 게 있다면 참 미안한 일이지만, 엄마는 정말 열심히 살았어'라고 하거나 '엄마가 너 어릴 때로 돌아가면 돈 공부를 더 열심히 했을 거 같아. 하루빨리 시작했을 거 같아'라고 한다. 내가 세상에 없었던 때는 전제에 없는 것처럼 그렇게 말한다.


엄마가 살았던 삶을 나에게 살라고 한다면, 나는 그렇게는 못 살 것 같다. 자신이 없다. 내겐 엄마가 영웅이다. 영웅의 삶을 그대로 살 자신은 없지만, 그가 보여준 태도를 본받고 싶은 것처럼, 그런 마음이다. 나는 엄마의 삶에서 내가 엄마의 입장이 된다면 엄마처럼 잘 해낼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내 삶을 살아가는 게 힘들 때 엄마를 떠올리면서 엄마처럼 최선을 다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포기하지 않고 현명하고 지혜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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