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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Jun 27. 2022

돈이 없다고 몸이 힘든 일은 하지 마라

포시랍게 자랐습니다

경상도 방언 중에 '포시랍다'라는 말이 있다. '포시랍게 자랐다'는 표현으로 자주 쓰인다. 호강스럽다는 말의 사투리다. 나는 힘든 살림에도 나에게 좋은 것을 먹이고 보여주고 하게 해주려는 엄마 덕에 포시랍게 자랐다.


엄마는 내가 성인이 되어서 노동시장으로 뛰어들 때에도 말했다.

"돈이 없다고 몸이 힘든 일을 하지는 마. 안 힘들 수 있으면 안 힘든 걸 해."

나를 사랑하고 아껴서 한 말이기도 하지만, 그게 더 경제적으로도 맞는 선택이라고 했다. 물론 내가 할 수 있는 일 중에 몸이 망가질 정도의 일이 뭐 얼마나 있겠느냐마는, 한 번 망가진 몸은 회복하기도 힘들고 힘들게 번 돈을 병원비로 다 날릴 수도 있다며 반드시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라고 했다. 건강이 전제되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소용이 없기에 몸이 힘든 일을 할 바에얀 아껴 쓰라고 했고, 몸값을 올리기 위해 노력하라고 했다. 엄마가 나를 공부시키려고 한 것도 결국에는 건강을 담보로 무언가를 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엄마 스스로도 몸이 힘든 일은 거의 하지 않았다. 상황이 여의치 않아 결국 엄마가 일선에 뛰어들었을 때에도 경력 없는 40대 주부가 할 수 있는 일 중에는 그나마 체력이 많이 들지 않는 일을 했다. 당연히 엄마가 아닌 내가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운 부분이지만 상대적으로, 현실적으로 생각해보면 40대 이상의 주부가 할 수 있는 일 하면 떠오르는 다른 일보다는 덜 힘든 일이었던 게 사실이다.


내가 대학생일 때에는 상황이 더 안 좋아져서 엄마가 잠시 몸이 고된 일까지 병행했던 적도 있다. 그때의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엄마가 힘들었던 그 시기는 나에게도 인생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많았던 때라서 글을 적어나가는 이 순간에도 복잡한 마음에 손짓을 이따금씩 멈추게 된다. 그렇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엄마가 일을 해보고 몸이 힘들어서 못하겠다며 오랜 기간을 끌지 않고 그만뒀다는 것이었다. 엄마가 더 힘든 일을 꾹꾹 참아가며 했다면, 나는 아마 내가 했던 자유로운 대학생활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대학생활 동안 할 수 있는 것들, 나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해야 하는 경험들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외면하려 했던 엄마의 고생이 임계치를 초과하려고 하고 있었으니까.


엄마 말처럼 나는 몸이 힘든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대학교를 다니는 내내 과외 수업으로 생활비를 마련했다. 남을 가르치고 공부에 관심을 두게 하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껴서 스트레스를 받긴 했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에 비할 바 없이 쉬운 일이었고 효율이 높은 일이었다. 3개월 정도 교내 기숙사 편의점에서 주말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있지만 몸이 힘들지는 않았다. 그리고 열심히 스펙을 쌓아서 평범한 일반직 회사원으로 입사를 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몸이 힘들었다. 포시랍게 가꿔온 나의 온실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다음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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