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중독자
숫자 3을 좋아합니다. 전통적으로 복을 상징하는 숫자로 여겨지기도 하고, 단순하면서도 까다로운 매력이 있달까요? 선택권도 3가지인 것이 좋아요. 2가지는 적어 보이고 4가지부터는 인간의 합리성을 제한하거든요. 딱 즐겁게 고민할 수 있는 때가 선택권이 3가지일 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이유를 들먹일 때에도 3가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고, 나만의 노하우를 끄적일 때에도 3가지를 말하는 것을 좋아해요.
글쓰기에도 3의 마법은 유효한데요, 그래서 이번 글에서는 글쓰기의 3단 구성을 제안하려고 합니다.
글을 쓸 때에는 기본적으로 나의 에피소드나 생각이 있어야 합니다. 온전히 관념적이고 논리적인 문장들로 생각만 가득 찬 글을 쓴다거나, 순전히 경험만 나열하는 식의 글을 쓰는 극단적인 경우는 잘 없습니다. 두 가지가 적절히 어울려야 재미난 글이 되는 것 같아요. 다만 두 가지의 비중에 차이가 있을 수는 있어요. 어느 것의 비중이 더 많은지를 따져 3가지 케이스를 나눌 수 있습니다(3 중독은 계속된다).
아래의 예시는 대부분 제가 이미 써둔 글의 요약 버전 글입니다.
에피소드<생각
1) 정-반-합
난 반댈세! 사회적 통념, 편견, 다른 사람의 주장을 먼저 제시한 다음, 나의 반대된 생각을 이야기하고, 최종적인 결론을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글쎄, 미움받을 용기를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마냥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나 자신의 좋은 점을 보고 귀엽게, 잘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주면 되지 않을까?
2) 정-정-합
이번에는 '나도 찬성!'이에요. 원래 있던 주장이나 의견에 보태기를 합니다. 온전히 나만의 새로운 의견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고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반박만 하면서 살 수도 없습니다. 세상에 맞는 말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래서 기존에 존재하던 이야기들에 살짝 숟가락을 얹어봅니다.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가 떠올랐다면 그걸 더해도 되고요, 내 에피소드를 보태도 됩니다. 그 사람 참 똑똑하더라, 다른 사람들이 말했던 게 무슨 말인지를 나 역시 깨달았다, 그 말처럼 살아야겠다, 하는 글을 쓰는 것이에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인생인데, 하고 싶지 않은 것을 하느라 안 그래도 부족한 시간이 더욱 촉박하다.
나에게 지워둔 의무감에서 조금씩 무게 추를 내려 하고 싶은 것들로 나의 시간들을 채워야지.
3) 정-세-합
'정-반-합'이 '난 반댈세', '정-정-합'이 '나도 찬성!'의 포지션이라면, '정-세-합'은 '맞는 말인데, 세부 조건을 좀 깔자'입니다. 위의 '정-정-합'의 예시와 같은 첫 문장으로 예를 들어볼게요.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걸 하기까지는 하기 싫은 걸 하면서 '존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몇 년 후에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데에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그래서 오늘도 스스로를 다독이며, 꿈을 꾸며, 열심히 살아간다.
에피소드=생각
에피소드-나의 생각/행동-관념화/일반화
이건 제가 가장 자주 쓰는 형식 중 하나예요. 최근에 무슨 일이 있었고, 그때 나의 생각이나 행동, 대처방식은 어땠는지, 그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고 싶은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메시지를 공유하고 싶은지를 적는 것입니다. 이 유형으로 글을 쓰다 보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글쓰기를 위한 관찰 대상, 인지 대상이 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글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에피소드로 적당한 생동감을 주면서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담기에도 좋은 방식이에요. 다른 유형들은 비교적 사색을 깊이 해야 해요. 논리적인 구색을 맞추려고, 또는 오래전 일을 더듬어보려고 꽤 긴 시간 생각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반면 이 방식은 다른 유형보다는 가볍게, 재밌게 할 수 있어 글쓰기 습관을 붙이기에 그만인 방법입니다.
회사에서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 그래서 홧김에 평소에 들을까 말까 고민하던 30만 원짜리 온라인 강의를 결제해버렸다.
기분 나쁜 날 사람들은 보통 술을 마시거나 쇼핑을 거하게 하는 데에 돈을 탕진해버린다. 잠시 나쁜 감정이 해소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나는 자기 계발에 돈을 태우는 걸로 방법을 바꿨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 때일수록 돈을 신경 써서 써야 한다.
"와, 또라이네?" 아직까지 여자 혼자 배낭여행을 가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던 시절, 혼자 해외여행을 간다는 친구에게 내가 던진 말이었다.
사실 또라이라는 말은 칭찬이었다. 엄청나게 부러웠다. 그 친구의 자유로움이. 재밌어 보였다. 그 자유로움이.
가끔은 또라이로 살 필요도 있지 않을까?
에피소드>생각
저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글을 쓸 때에는 최근의 에피소드뿐만 아니라 과거의 에피소드를 빌려오곤 합니다. 오늘 내가 하는 행동이 사실은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교훈 때문이라든지, 오늘날 갖고 있는 상처가 사실은 과거의 사건에서 왔다든지, 제가 갖추려고 하는 좋은 모습이 과거의 어느 인상적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든지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러면 아래의 구성을 취합니다.
현재(현상, 인지)-과거(원인, 성찰)-미래(해결책, 다짐)
예를 들어서 이런 거예요.
억지로 지출을 통제하려고 하지 않는다.
예전에 '돈을 쓰지 마!' 하고 과하게 절약을 하려다가 망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절약 규칙을 세워두고 스스로를 통제의 늪에 빠지지 않게 하는 선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목표를 위해서 노력해야지!
마지막의 해결책이나 다짐의 경우 나와 비슷한 곤란한 상황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에게 제안을 하는 형태로 쓸 수도 있겠죠.
만약 나처럼 과하게 절약을 하려고 하다가 지출 요요 현상을 겪은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최소한의 절약 규칙을 세워두기를 추천한다.
느끼셨을 수도 있겠지만 글쓰기 과정은 사고의 과정, 흐름과 거의 비슷한 모양을 띠게 됩니다. 글을 쓰기가 어려웠던 때를 생각해보면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이 복잡하고 두서없는 생각을 어떤 순서와 구조로 정리해야 할지 감이 안 와서 그런 거더라고요. 그러니 혹시 이런저런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서 답답할 때에는 위의 구조에 맞춰서 다시금 생각을 재배치해보고 그것을 글로 옮기시는 것도 괜찮을 거예요!
이것 외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고, 정해진 답은 없지만, 미약하게나마 제가 그동안 발견했던 방법을 전해드려 봤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글쓰기 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