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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잘 사는 진리 Oct 10. 2022

수지가 너무 예뻐서 공부한 케이스: 선택과 집중

선택과 집중 이후의 부작용

중고등학교 때 나와 동갑인 여자 아이돌이 데뷔를 많이 했다. 그중 한 명이 수지였다(수지님은 내 친구는 아니지만 보통 연예인이나 유명인을 칭할 때는 별도의 호칭 없이 이름만 언급하므로 이 글에서도 당시의 내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동일하게 이야기하겠다).


Bad girl good girl로 데뷔한 수지는, 예뻐도 너무 예뻤다. 친구들끼리 모여서 하는 대화 중 아이돌 이야기가 90%이던 학창 시절, 지겹도록 들은 말 중 하나가 '수지는 좋겠다, 예뻐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나도 동조했다. 외모가 중요한 게 아니라지만, 그건 아마도 외모가 빼어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위로의 말 같은 게 아닐까? 예쁘고 잘생긴 게 전부는 아니기 때문에 다른 것도 갖춰야 하지만 박사급의 지식수준 또는 대천사급의 인성 수준이 아니라면 사람들의 수준은 비슷비슷하며, 비현실적으로 외모가 뛰어난 사람들은 조금씩 모자란 부분이 인간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사실 수지가 예쁜 것, 누가 봐도 성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중요한’ 사실은 아니다. 그냥 사실이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그래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해답이었다. 그렇다. 나는 수지를 보면서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가졌다. 여기에서 두 가지 선택권이 생긴다. 예뻐지려고 노력하거나 다른 강점을 찾거나. 나는 수지를 보면서 단박에 생각했다. 공부나 해야겠다고. 나는 외모는 애초에 내 경쟁력이 아니라고 생각한 터였건만, 수지를 보니 더욱더 확실해졌다. 나름대로 냉정한 상황판단을 한 것이었다. 약점을 채우는 것보다 강점을 살리자고.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고, 실력보다는 운이 좋아서 서울대학교에 진학했다.


여기까지만 하면 내가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에 확실하게 선택과 집중을 잘한 이야기 같지만 다른 이야기가 좀 더 있다.


시간이 흘러 두 가지 문제가 생겼다. 하나는 선택과 집중을 한 ‘성적 잘 내기’를 통해 잘 살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무너진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선택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간과했던 것이었다. 진짜 공부가 아닌 성적으로 얻어낸 명문대 졸업장이 나를 잘 살게 해주는 것은 아님을 졸업 이후에야 깨달았고, 공부 말고 다른 데에는 너무 관심을 두지 않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다. 예상치 못하게 선택과 집중에 따른 부작용이 생겼던 지점이다.


한때는 성적을 잘 받기로 한 나의 선택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성적을 잘 받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것 중 가장 확실한 성공의 원인 변수라 믿고 살아왔지만, 그리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는 것을 사회로 나와서야 깨달았다. 한동안 과거의 나를 원망하기만 했다. 현재의 나를 더 낫게 만들고 싶은데 방법을 몰라 답답했다. 나는 성적을 위한 공부를 하면서 세상의 많은 것에 관심을 꺼두고 있었다. 과거의 나를 질책해봤자 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오랜 시간 믿어온 성공 방정식이 깨졌을 때의 그 기분은 참, 공허했다. 어쩌면 좋은 대학교를 나오는 것이 성공으로 반드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어느 순간부터 어렴풋이 알고 있으면서도 그 믿음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러 활동을 통해 나를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애가 탔던 것일지도.


선택과 집중의 결과가 항상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글쎄. 선택과 집중은 누구나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결정이다. 시간을 비롯한 자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결과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게 문제고, 나는 결과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다. 그래서 실망했다. 하나를 깊이 파든 여러 가지를 얕게 섭렵하든, 나에게는 경험이 쌓였고, 깨달음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실망할 이유가 없었을 텐데, 그때는 내가 가진 것들이 초라해 보여서 그런 사실들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나는 몸만 큰, 생떼를 부리는 어린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가 변화가 찾아온 것은 한순간이었다. 내가 가졌다고 생각하는 태도는 챙기고,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성과는 내려놓고, 아무것도 몰랐던 것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실제로도 모르는 게 대부분이기도 했고. 글을 쓰고서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씩 바뀌었다. 먼 미래의 성공을 노리는 것은 어려웠지만 당장 오늘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은 쉬웠다. 그 확신을 받는 게 좋아서 대체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을 기울였다.


중요한 것은 선택과 집중은 과거가 되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내 어린 날들이 아까웠지만 어쩌겠어, 그 시간이 있었으니 이제라도 그럴듯한 생각을 하는 것도 사실이겠지, 생각하며 내가 선택하고 집중한 시간들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 좋은 점이 있었던 것을 인지하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었던 건지,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 하는 회고와 성찰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었다. 그냥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


수지 이야기로 시작했으나 사실 수지 때문에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은 아니다. 나는 수지가 데뷔하기 훨씬 전부터 다른 길은 없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했고, 수지는 그 생각을 강화해줬을 따름이다. 또한, 수지는 실력도 좋고 인성도 좋은데 노력까지 한다. 공부로 따지자면 초 슈퍼 엘리트 박사 코스를 밟은 교수 겸 인기 유튜버와 필적할 만하다. 운이 좋아서 명문대 졸업생 명단에 이름만 올린 나는 거기에 비할 바가 못된다. 다만 나는 나의 길을 가는 것뿐이며 그 과정에서 겪게 되는 선택과 집중이 언제나 내가 원하는 결과를 갖고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얻게 되는 것이 있고, 행복을 찾는 법 역시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수지는 예쁘다. 나는 잘 살고 있고.


이미지 출처: 여성 조선


p.s. 아니 소름 돋게 이 글 발행하는 10/10 오늘 수지님 생일이네요 사진 찾으려고 ‘수지’ 검색했다가 진짜 깜짝 놀랐어요 생일 축하드립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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