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감이다
나는 모범생이었다. 모범생이라는 단어로 불렸다. 그 단어를 붙여준 이는 나 자신도, 또래도 아닌, 어른들이었다. 나중에는 나조차도 그런가보다, 내가 모범생인가보다, 생각했다. 나는 왜, 어떤 모습 때문에 어른들에게 모범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을까?
어른들이 원하는 모습대로 살았기 때문이다. 귀밑 5센티미터로 머리를 자르라고 하면 자르고, 교복을 줄이지 말라고 해서 안 줄이고, 가만히 앉아서 자습을 하라고 하면 하고,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해서 열심히 하고. 아마 내 또래는 누구도 내가 부럽지 않았을 걸. 어릴 때에는 내가 모범생이라고 칭해지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했다. 좋은 뜻이니까! 다들 입을 모아 가라고, 가야 한다고 말했던 서울대학교에 겨우겨우 들어갔다. 나에게 더 넓은 세상, 더 멋진 기회가 온 거라며 또 열심히 살았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취업을 했다.
취업을 하고 한 해가 채 지나지 않아 지독한 사춘기가 왔다. 가정 과목에서 배웠던 것처럼 자아 정체성에 대해 뒤늦은 고민이 시작되었으니 사춘기라고 할 만했다. 이전에는 사춘기라고 할 만한 때가 없었다. 즉, 나에게는 자아 정체성이 없었다.
내가 살아온 모습을 되짚어봤다. 그리고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사실,
'아... 내가 멍청한 거였구나? 내가 원하는 것을 알지 못하고 어른들이 좋다고 하는 게 좋은 건가 보다 하고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살아왔구나?'
심장이 기분 나쁘게 뛰었다.
그러고 보니, 부모님도 선생님들도 알 리가 없었다. 모범생이던 내가 어떤 모습이 될지. 생각해보면 나도 참 무책임하고도 순진하지. 내 인생임에도 깊이 고민해본 적 없고, 어른이면 다 알 거라고 생각했다. 그분들이 예언가도 아닌데. 나는 뭔진 몰라도 하여튼 멋진 어른이 되길 원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사실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은 것이었다. 내가 스스로 무언가를 원해서 달성한 적이 없었다. 물론, 칭찬과 인정을 원했고, 최고의 성취를 원했다. 그런데 '무엇을' 원하느냐를 생각해봤을 때, 그 무엇이 스스로의 마음에서 비롯된 적이 없었다. 늘 주어진 길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한 번도 그 길을 내가 직접 닦아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나를 잘 수식해주고 있던 모범생이라는 단어가 아주 촌스럽게 느껴졌다. 꼬리표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잡아 뜯어버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침통했다.
2년 정도는 헤맸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막연한 표현이 싫지만 정말 어느 날이다), 부정해왔던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망할, 이제부터 시작이구나. 독립해야겠구나. 다시 한번 해보자.
그렇게 어느 모범생의 독립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