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쿠킹클래스 후기: 똠얌꿍이 가르쳐준 삶의 교훈

방콕 쿠킹클래스에서 인생 똠얌꿍을 만나다

by 잘 사는 진리

똠얌꿍 좋아하시나요? 저는 싫어했습니다. 근데 지금은 좋아해요. 사연이 많은 음식입니다.


내 인생 첫 똠얌꿍


제가 똠얌꿍을 접해보기 전까지 똠얌꿍에 대한 흉흉한 소문이 많았어요. 사람 먹을 게 못 되더라, 왜 먹는지 모르겠더라, 토 맛이 나더라,... 도대체 어떻길래 그런 이야기가 도는지 궁금했죠!


처음으로 시도한 건 사당역에 있던 아시안 퀴진 프랜차이즈인 S 모 식당에서였어요. 기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혹시나 나에게는 꼭 맞지 않을까?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사람이 있잖아요. 그게 저이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저는 통계적 확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거예요. 똠얌꿍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나온 데에는 많은 사람들의 경험이 한몫했고, 저는 그들처럼 보편적인 입맛을 가진 한 사람일 확률이 높은데 말이죠. 시큼하고, 향이 너무 강하고,... ‘이게 무슨 맛이람?’ 하며 다음부터는 절대 똠얌꿍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해 버렸습니다. 물론 이후 먹게 된 모든 음식에서 고수를 배제했고 말이죠.


강남의 모 마라탕 맛집에서 고수를 넣어 먹는 친한 언니가 낯설게 느껴졌고, 샤로수길의 태국 음식점에서 고수를 좋아한다는 동아리 선배를 보며 역시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어요. 베트남 여행을 가기 전에도 고수를 빼달라는 표현을 확실하게 익혀갔습니다. 혹시나 하고 그 말을 이미지로 캡처도 했고요.


시간이 지나 저도 직장인이 되고, 하루를 버티게 하는 재미라고는 새로운 식당에 가보는 것밖에 없는 날이 찾아왔습니다. 동기들 사이에서 맛집 리스트를 공유하는데, 태국 음식점이 두 개 정도 있더라고요. 심지어 그중 하나는 똠얌꿍 맛집이래요! 똠얌꿍이라는 음식의 맛은 정확히 기억이 안 나도, 맛이 정말 별로였다는 감상은 정확히 기억하기 때문에 굳이 먹고 싶지 않았는데요. 또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 먹어보면 또 다르지 않을까?’

그렇게 저는 또다시 도전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웬 걸, 너무 맛있는 거죠! 묘한 중독성까지 느껴졌습니다. 그간 똠얌꿍이 맛있다고 한 사람들을 보며 내심 입맛이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반성했어요. 똠얌꿍이 맛있어졌고 가끔은 생각나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서 고수는 빠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진또배기를 정복하기까지는 아주 큰 한 걸음이 남은 듯했습니다.



고수가 들어간 다른 음식도 있는 걸?


그러던 어느 날, 회사 상무님이랑 둘이서 점심 식사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호주식 브런치를 파는 B 레스토랑이었어요. 상무님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나 하고 얼 타는 사이에 제가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를 주문했더라고요. 근데 받아 보니 그 메뉴는 잘 구운 빵, 아보카도, 고수가 다인 메뉴였습니다. 이런!


제가 고지식한 면이 있거든요. 왠지 상무님 계신데 편식을 하면 안 될 거 같은 거예요. 제가 고른 메뉴인데 말이에요. 그래서 눈 딱 감고 고수를 먹어 보기로 합니다. 상무님 몰래 마음의 눈을 질끈 감고 빵과 아보카도에 고수를 곁들여서 딱 입에 넣었는데!


세상에 왜 이렇게 맛있는 거죠? 국물 요리에 넣어 먹을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더라고요. 아주 맛있었습니다. 고수를 시금치 무침처럼 먹는 사람을 보며 지나치게 놀랐던 것을 반성했어요. 그렇게 조금씩 고수에 가까워졌습니다.



방콕 여행에서 만난 고수 가득 찐 똠얌꿍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태국 방콕 여행을 다녀왔어요. 저는 현지에서 똠얌꿍을 꼭 먹어보고 싶었습니다. 어느샌가 저에게 도전의 상징이 되어 버린 고수를 넣은 똠얌꿍.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어요. 현지의 맛은 또 다를 테니까요. 그런데 같이 간 친구가 똠얌꿍을 먹고 싶지가 않다고 하는 거예요! 혼자 시키기엔 또 남기게 될까 봐 걱정이고 말이죠. 그래서 포기해야 하나 아쉬운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친구와 제가 하루쯤은 따로 다니기로 결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꼭 해보고 싶었던 쿠킹 클래스를 예약했어요! 새벽 2시에 당일 참여 가능한 곳을 찾으려니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눈이 빨개진 게 감각으로 느껴질 정도에 찾아내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7시간 뒤 저는 방콕의 어느 시장에서 선생님을 따라 재료들을 쇼핑하게 되었습니다.



쿠킹 클래스는 네 가지 음식을 만드는 수업이었어요. 팟타이, 레드커리, 망고 스티키 라이스, 그리고, 당연히, 똠얌꿍이 있었어요!


과연 태국에서 먹는 똠얌꿍이 내 입맛에 맞을까? 혹시 안 맞으면 좀 속상할지도 몰라, 하며 두근두근하는 마음으로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는 대로 열심히 따라갔습니다.



레몬 그라스, 태국식 생강, 고수, 고수보다 더 세다는 향 채소까지 어느 것 하나 정통의 것을 따르지 않은 것이 없는 똠얌꿍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고수를 소심하게 넣으려는 저를 기대찬 눈빛으로 보는 선생님의 눈빛... 아, 알겠다구요! ‘고수를 조금만 넣고는 똠얌꿍을 만들어 먹었다고 할 테야?’ 하는 것 같은 그 애처로운 눈빛...! 고수를 왕창 넣어버리고 말았어요.


식사를 하기 위해 식탁에 앉았습니다.



와, 댕맛있다!


이게 무슨 일이죠? 너무 맛있었어요. 태국에서 먹은 음식 중 이 클래스에서 만들어 먹은 것들이 가장 맛있었다는 후기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정말 정말 맛있었습니다. 밥도 없이 꿀떡꿀떡 라면 국물 흡입하듯 그릇째 들고 마셔 버렸어요. 선생님이 각자의 그릇을 싹 비워버린 수강생들을 보고 건치 미소를 보여주셨습니다.


똠얌꿍이 가르쳐준 교훈


솔직히, 한 번 맛이 없다고 생각했던 음식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음식은 잘도 제쳐버리면서 똠얌꿍에는 미련을 못 놓았던 저를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워요. 이미 검증된 다른 맛있는 음식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어쩌면 똠얌꿍과 관련된 일련의 일들은 노력을 통해 성취를 이룬 사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세상엔 그런 일들이 있잖아요. 그럴 필요 없는데 나의 애정과 열정만으로 끊임없이 부딪히는 거요. 누군가는 저에게,

“굳이?”

라고 반문을 할 만한 것임에도 내 마음만으로 결국 해내는 거요. 똠얌꿍은 이제 굳이 새로운 것을 시도할 필요도, 애써 받아들일 필요도 없는 저에게 아주 가볍고도 상징적인 도전 같은 것이었습니다.


언젠가 저에게 똠얌꿍같이 마음이 꽂혀버리는, 내가 원래 잘하던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해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다른 과제들이 생긴다면, 저는 그것들을 똠얌꿍 대하듯 대할 생각입니다. 조금씩 천천히 그러나 끝내 확실하게 정복할 거예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먹는 영역에서, 그토록 싫어하던 음식도 즐기게 되었는데, 다른 감각이라고, 다른 메뉴라고 못할 게 있겠어요?


과도한 의미 부여의 끝은 늘 허무한 법입니다만, 고수가 가득 든, 심지어 내가 만든 똠얌꿍을 맛나게 먹으며 환희에 찼던 순간을 기억하며, 똠얌피-스


p.s. 기념품으로 사 온 똠얌 페이스트 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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