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잘 사는 진리 Dec 09. 2023

한 달 동안 야근 15일 하고 느낀 점

야근이 합당했는가?

 나는 매일 할 일과 한 일을 기록하는 편이다. 야근을 하는 날, 회식을 하는 날은 별도로 표기를 해둔다. 내가 이날 계획한 일을 다 못했던 건 외부적 이유가 있었다고 핑계를 대기 위해서다. 11월에 야근을 얼마나 했는지 세어보니 열다섯 번을 했다.


 

한 달이 삭제됐다. 부담스러운 업무와 도합 세 시간이 걸리는 출퇴근시간, 보고가 가까워지고 야근이 반복될수록 누적되는 커뮤니케이션 상의 피로감 등이 켜켜이 쌓였다.


사소한 듯 소중한 루틴은 반쯤 포기하게 되었다. 제대로 된 운동을 하는 것도 포기, 아침에 각 잡고 책상 앞에 앉아 책을 읽는 것도 포기,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하는 것도 포기했다. 글을 쓰거나 유튜브 영상을 찍는 것도 포기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글을 올리던 애가 하도 글을 안 쓰니 브런치에서 글을 쓰라고 알림까지 보내줬는데, 마음이 삐딱해진 나는 그 메시지마저 달갑지 않았다.

나도 쓰고 싶다공! 미웡!


주말에는 겨우 몸을 일으켜 결혼식을 가거나 침대 안에만 들어 있었다. 스스로의 존엄을 위해 한 두 번은 나가서 산책을 하고 먼지가 뽀얗게 쌓여가는 덤벨을 들고 운동을 했지만, 그러는 동안 흘러가는 생각이 건강하지는 않았다.


야근이 합당했는가?


 야근이 합당했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걸 생각하면 회사에 일을 하러 온 나의 가치가 진단될 테고, 그 결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를 마주하고 있는 나에게 옳은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았다.


또한 모든 일은 시키는 사람 입장에서는 합당하며,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합리적인 아름다운 씬(Scene)은 탄생하기가 어렵다. 심지어는 그런 일이 있더라도 양자 간의 기적적인 합의가 궁극적으로 옳고 그른지는 알기가 어려우니, 결국 원점으로 돌아가 회사 또는 회사가 대표로 내세운 의사결정권자의 말이 옳다는 전제 하에 일을 할 수밖에 없다. 그것을, 회사에 들어온 지 5년이 지난 시점에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응, 그것이 내가 현재 시점에서 선택한 관념이었다.


순응하는 것이 옳은가?


나를 아는 선배들은 슬픈 일이라고 했다. 날 것이던 모습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고 했다. 그 말을 믿지 않는다. 불신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사람은 결국 제 갈 길을 가야 하는 것이다. 이분들이 내 걱정을 해준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없는 시간 쪼개어 위로의 말을 건네주시는 게 인간적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고 보면 5년 동안 지당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것도 멍청한 일 아닌가?


나의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나의 행복은 희망과 행동에서 온다. 미래와 미래를 결정짓는 단초에서 온다. 현재에는 없다. ‘일’ 칸에는 없고, 다른 칸에는 있다. 다른 칸에 있어서 다행이지. 이 또한 지나가고 나면, 지금이 그랬기에 더욱더 보람찬 시간이 오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결혼식과 연말 모임 사이 뜬 시간, 먹지도 않는 커피를 시켜두고 스타벅스에 앉아 겨우겨우 글을 한 편 써낸 나에게 미안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글 썼으니까 봐줘요.




매거진의 이전글 회사만 다니는데 번아웃이 말이 되냐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