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어른이 될까
가끔씩 점심을 사주시는 부장님이 계십니다.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아빠랑 연배가 비슷하신 분입니다. 식사를 할 때마다 여러 이야기를 해주신 덕에 부장님의 취미, 하루를 보내는 방법, 가족들의 현황, 심지어 자산 상태에 대한 TMI를 알게 되었어요.
부장님의 두 아들은 미래가 창창합니다. 연애를 안 해서 큰일이라고 하시지만, 사실 별 걱정 없으실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며느리를 보시길 원하는 것 같은데, 아드님의 능력이 워낙 출중해서 그러지 않고는 못 배길 것 같습니다.
사모님과 보내는 하루하루는 평온하고 따뜻해 보입니다. 건강을 위해 아침에는 주로 채소를 드시고 술, 담배도 안 하신대요. 이따금씩 치러 가던 골프도 안 치신대요. 그 돈과 시간을 가족들이랑 시간 보내는 데에 더 쓰시는 거죠. 부장님은 저녁에 사모님과 산책할 생각에 기분이 좋다고 하시네요. 저도 모르게 상상을 하게 됩니다. 은퇴를 앞둔 부부가 두런두런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떤 게 고민이고 어떤 게 행복한지를 이야기 나누는 모습을요.
사실 부장님과의 식사 자리가 마냥 편하진 않아요. 저는 성격상 웃어른과의 대화 자리에서 의무감을 느끼거든요. 다행히 공백이 거의 생기지 않는데, 아주 가끔 2초 정도의 공백이 생기면 뭔가 더 관심을 보여야 하나, 아드님 안부를 좀 더 궁금해해야 하나 머릿속이 복잡해져요.
매번 얻어먹는 것도 죄송하고요. 부장님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으니 밥을 얻어먹는 것을 어려워할 필요 없다고 하시며 제법 비싼 음식을 사주시는데, 그것도 조금 죄송하기도 하고요. 그래도 처음에는 커피까지 기어코 사주시더니, 이번에는 저의 소소한 커피 보답을 받으셨습니다.
회사에서 부러운 사람을 꼽으라면, 배우고 싶은 사람을 꼽으라면, 부장님 같은 분을 꼽겠습니다. 자리는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좋은 삶을 사는 게 중요하죠. 부장님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인생이라는 게 남의 마음에 들려고 아등바등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 가족과 행복하게 살면 그저 된 거 아닌가 싶어요. 그게 선행되어야 자리도 의미가 있어지는 거죠. 근데 돈은 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제 이야기가 아니라서 자세히 말할 순 없지만 부장님은 이미 은퇴 준비가 빵빵하게 되어 있으시거든요. 역시 여유는 통장에서 나오나요? (ㅋㅋㅋ)
회사는 저에게 그런 의미가 있어요. 내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 일이 아니라면 어떤 것을 챙기고 살아야 할지를 생각하게 해 주거든요.
그래서 저는 우리 회사에서 부장님이 제일 부럽습니다.